기다렸던 심포지엄

  설레임을 안고 기다렸던 GS&J인스티튜트가 창립 1주년을 맞아 개최한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는 있는가’ 라는 심포지엄이 지난 10월 10일에 열렸었다.  그 이후로도 여기저기서 농업-농촌관련 세미나와 행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한미 FTA협상이라는 난제를 앞에 두고 농업·농촌의 미래는 낙관적일 수 있다는 전제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 세미나가 하나의 핵심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데 반해 이 심포지엄은 농업농촌 전반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청중들의 계층도 다양했고 열띤 토론으로 그동안 참석했던 어떤 심포지엄보다도 시종일관 진지하고 뜨거웠다. 또한 참석자들의 면면 또한 이 심포지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나도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심포지엄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며 경청했다.

무엇을 느꼈나?

  해체가 가속화되는 농촌사회를 건강하게 재건할 방법은 무엇이며, 농업대국의 무차별적인 저가농산물 공세에 국내농산물은 어떻게 그 명맥을 유지할 것인가, 그 본질을 ‘생명’이라는 매우 근원적인 차원에서 바라봐야하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인가라는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활발한 토론은 유쾌하고 감명 깊었다.

  그런데 젖소를 기르며 농촌에 사는 나는 진정 무엇을 느꼈을까. 열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초름하다.

  모든 분야의 연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망에서 비롯되므로 어차피 일정부분 가설(假說)에서 출발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연구가 현실에만 천착해서는 멀리 크게 볼 수가 없다지만,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만 하는 것이 또한 연구의 출발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는 현실과 이상사이를 연결해 주는 훌륭한 다리를 설계하는 일이라 함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연구나 정책이 몇몇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되는 어떤 “쏠림현상”이 있지 않나 하는 일종의 불안감 같은 것을 지울 수가 없다. 건강한 농촌, 공동체의식이 어느 곳보다 중요한 농촌사회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나아가며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 할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물론 구성원이 모두 보호받는 정책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가 힘들게다. 이 심포지엄에서 다루었듯이 어떻게 하여 농촌마을이 지닌 사회공익적인 가치를 경제적인 가치로 거두어 농민소득과 연결할 것인가, 브랜드화와 유통의 효율성을 통해 농산물의 가치를 드높일 것인가 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누가 그 생산물을 생산해 낼 것인가, 누가 자신의 마을을 수익이 창출되는 마을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Who(누구)’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적절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줄곧 지속되는 생각들이다.

그라민은행에서 배우는 ‘마음’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총재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미국 경제학박사학위를 지닌 그가 느꼈던 서양경제학에는 ‘마음이 없다’라는 절망감에 대해서이다.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길을 과감히 버리고 여성 대상의 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이라는 빈민구제시스템을 통해 자립을 돕게 된 동기는, 진정으로 빈민들을 자립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 된 27달러의 종자돈이었다고 한다. 빈민구제 사업이 기부나 보조금이 아닌 합당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대출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각 개인이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옳다고 보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그 ‘마음’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그의 업적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있는 경제학’은 많은 방글라데시의 빈곤층 여성들에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존엄성을 지니며 근면한 자기계발을 통해 자립을 가능케 했다.

  마음은 따뜻함이 있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뭔가 좀 아쉬웠던 것이 바로 이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

중언부언

  누가 뭐래도 농촌에는 뼛심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근면한 노동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건강한 농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늙어만 가는 농촌에서 이제 누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본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얼핏 우리 모두가 유통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경영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 앞에 서면 그저 심란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이에 대한 무성한 연구와 논의는 어디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 또한 분명 명쾌한 답이 있는 것 같은데도 왜 그게 정책으로 현장에서 접목되지 못하고 표류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도리도 없다. 이미 의타심이 중증이 되어버린 일부 농업인들에 대한 강력한 자립의지를 되살릴 연구는 무엇일까.

  농업·농촌연구의 시각이 좀 더 가슴(마음)으로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그 연구업적들이 민첩하게 정책에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발표결과에 대한 이런 저런 중언부언으로 이어졌으나 이 세상에서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사람, 자연과 격리되어서는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실마리는 의외로 쉽게 찾아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 저녁시간에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느낀 것은 우리 농업인들 스스로가 나서서 연구자와 정책결정자 및 도시민들과 여러 경로를 통하여 진솔한 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우리는 그들이 농촌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비난하고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농업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 단순히 학문적이거나, 정책적이거나,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닌 ‘사람 사는 이치’와 ‘마음’으로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내년을 기다리며

  벌써부터 내년에 있을 2주년 심포지엄이 기다려진다. 과연 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발제자들의 확신에 찬 연구발표와 지정토론자들의 날카롭지만 경쾌하고 애정 어린 찬반 이론들, 경험을 토대로 한 다양한 청중토론자들의 열기가 벌써부터 그립다.

  좋은 심포지엄을 기획하고 진행하신 이정환 이사장님과 김병욱 연구원, 그리고 어여쁜 박혜진 연구원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혹여 이런 단편적인 사고의 편린들이 GS&J인스티튜트의 연구업적에 누(累)가 되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GS&J에 대한 애정과 재단을 이끄시는 분들의 열정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깊은 이해를 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