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비엘리치카 암염(巖鹽)광산

  비엘리치카 암염광산으로 가는 길에 본 크라카우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폴란드에서 가장 긴 667마일의 비스와(또는 비스툴라)강변 언덕에 세워진 옛 왕궁 바벨성이며 오래된 성당과 건축물이 인상적이었다.   

 크라카우 근교에 있는 암염광산은 13세기부터 7백여 년 동안 소금을 채굴한 광산이었다. 채굴한 소금의 양이 2,600㎦ 라 하니 과연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바닥 면적이 사방 50km이고 높이가 1,040m인 거대한 직육면체 빌딩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소금을 캐던 갱도는 아홉 개 층으로 되어있고 깊이는 300m, 갱도의 총길이는 300km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지하 64m에서 100여m 깊이까지의 갱도 약 2km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폴란드는 북쪽에 발트해를 끼고 있으나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체코 등 중부유럽에는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들이 많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과거에 소금은 귀한 재화였다. 그런 의미에서 소금광산은 참으로 중요한 부존자원이었으리라. 헝가리 벨라4세 왕의 딸 킹가 공주가 폴란드의 왕 브로츠와프와 결혼 할 때, 그녀는 부왕에게 요청하여 결혼 지참금으로 헝가리의 한 소금광산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지만 결혼반지를 그 소금광산에 던져 넣고 폴란드로 오는 도중에 이 지점에 이르러 땅을 파보도록 하였는데 거기서 소금이 나왔고 그 소금 속에서 공주의 반지가 나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소금의 귀함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 느껴진다.

  1978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 광산은 광산기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지하 박물관이며 한편으로는 당시 광부들이 남겨놓은 여러 가지 소재의 소금조각품으로 유명한 지하미술관이다. 총 378개의 계단을 따라 갱도로 내려가는 벽면은 나무판으로 덮여 있는데 벽이 시꺼멓도록 적혀있는 낙서가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사람이름과 방문 날짜들로 한글 낙서도 적지 않았는데 이렇게라도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일까.   

노동자들의 예술혼으로 피어난 소금궁전

  갱도에 이르면 광부들이 작업하는 모습, 작업도구들, 가스와 물을 빼내기 위한 시설들이 여기 저기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나라출신 코페르니쿠스의 상, 전설 같은 킹가 공주의 이야기를 재연한 조각, 괴테의 상뿐만 아니라 폴란드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의 상이 거의 실물크기로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암염(巖鹽)으로 만들어진 소금조각이다. 한참 이런 것들을 구경하면서 갱도를 따라 가면 관광코스의 마지막 절정인 지하 100m지점에 마련된 교회에 이른다.

  2만 2천 톤의 소금을 채굴해낸 공간, 가로 17m 세로 54m 그리고 높이 12m의 공간을 교회로 만든 것이다. 벽에는 소금조각으로 된 ‘최후의 만찬’을 비롯한 여러 부조들이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조명을 받고 있고 천정에는 역시 소금바위를 깎아서 만든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웬만한 교회나 성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 크기요 장식이다. 이곳의 수호신처럼 받들어지는 킹가 공주의 이름을 따서 킹가공주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네 명의 광부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1895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소금을 캐는 광산노동자들이 지하 300m까지 파들어 가는 광산노동은 위험해 수많은 사고도 있었을 것이며 근로 조건도 열악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만들어진 이런 아름다운 조각품들은 누구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신앙심 깊은 폴란드 광부들의 힘들고 고달픈 중노동을 잊기 위한 탈출구였을까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들었다.

지하 100m의 이 성당은 단지 하나의 관광 상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올리기도 하고 때때로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지하 교회 옆에는 기념품 판매소와 스낵바도 있다. 지하 210m쯤 되는 곳에는 허약자나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도 있다는데 관광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투박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에는 지하관광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광부 조각가들이 만들어 낸 이 광산은 현재 1인당 입장료 20유로를 받는 소중한 관광자원이 되었고 갱도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1개당 3유로씩을 별도로 내야한다. 매년 세계 각지로부터 수백만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우리나라 석탄 광산을 생각해 본다. 그 갱도를 이곳처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까? 관광자원이라는 것도 저절로 주어지거나 전해 내려오는 것도 있지만 이미 주어진 것 또는 있는 것을 가꾸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하는 노력을 통해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느껴졌다.  

크라카우 대광장과 트럼펫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 우리는 크라카우의 구 시가지를 걸어 유명한 대광장(Grand Square 또는 Main Market)에 이르렀다. 어떤 이는 유럽의 문화를 광장문화라고도 하는데 이 광장은 13세기 이후 이 도시의 핵심역할을 해 왔다. 사방 200m의 이 광장 면적은 약 1만 2천 평 정도인데 중세 유럽의 광장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광장 한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는 2층 건물인 직물회관(Cloth Hall)이 서 있다. 14세기에 세워진 이 건물에서 직물 거래가 활발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1층은 관광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2층은 크라카우국립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직물회관 바로 옆에는 시청사탑(Town Hall Tower)이 고풍스런 모습을 보이고 기우뚱하게 서 있다. 이 70m높이의 탑은 정확하게 맨 꼭대기에서 수직선으로부터 55cm가 기울어 있어 마치 이태리에 있는 피사의 사탑을 연상시킨다. 당초 14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이 탑은 석재와 벽돌로 건축된 것인데 1703년의 강풍으로 이렇게 기울어진 채로 관광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1524년에 맨 처음 시계를 달아 시계탑으로도 활용되었고 한때는 시청 청사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1820년에 청사는 헐어내고 시계탑만 남아 있다.

이 탑의 지하에는 넓은 지하실이 있는데 과거에는 지하 감옥, 고문실, 인기 있는 맥주홀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카페와 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며, 관광객들은 탑 안에 있는 100개의 계단을 따라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올라 갈 시간이 없었다.

  광장의 또 다른 쪽에는 역시 1365년에 당초의 로마네스크양식을 대체한 고딕양식의 성모마리아 성당(Basilica of the Virgin Mary's)이 그 아름다움을 다소곳하게 간직하고 있다. 높이 81m와 69m의 첨탑 두 개가 저녁노을을 받아 더욱 고풍스러워 보였다. 이들 두 첨탑 중 높은 첨탑 꼭대기의 조금 아래 65.5m높이에는 여러 개의 작은 첨탑들이 둥그렇게 장식되어 있는데 이들은 중앙의 첨탑과 어우러져 완벽한 왕관모양을 하고 있고 황금색을 띄고 있어서 그 자체를 금관이라고 부른다.

 그 금관의 바로 아래층, 서쪽 창문에는 매 시 정각에 금빛 트럼펫이 나타나 모든 폴란드 국민에게 익숙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처음 서쪽 구 시가지를 향하던 트럼펫은 다음에는 동쪽을 향해서 그리고 남쪽과 북쪽을 향해서 연주된다. 정오에는 이 트럼펫 멜로디(Hejnal Mariacki)가 폴란드의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퍼져간다. 중세에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각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된 이 트럼펫 연주는 오늘날까지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데 우리는 그 유명한 트럼펫연주를 듣지 못하고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