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아우슈비츠는 정녕 인간의 땅인가

  크라카우의 호텔에서 하루 밤을 지낸 우리는 이튿날 아침 오슈비엥침으로 향했다. 오슈비엥침은 크라카우에서 약 50km쯤 떨어진 조그만 마을로 나치 점령군이 아우슈비츠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수 십동의 붉은 색 벽돌로 된 2층 건물들이 마치 공장 건물들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 수용소를 당시 나치가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지만 영문 자료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concentration camp)로 부르는데 죽음수용소(death camp) 또는 박멸수용소(extermination camp)로 불리기도 한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수많은 억울한 혼령들이 떠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수용소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의 수용소 건물을 복원하여 일부를 박물관으로 관광객에게 공개하는 건물 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끔찍한 인간의 부끄러운 만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유럽 각지에서 화물처럼 기차에 실려와 이곳에 도착한 후 기차에서 내린 유태인의 긴 행렬은 흡사 6.25때의 피난민 행렬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노동은 자유롭게 한다.’ 또는 ‘일하면 자유스러워진다.’는 뜻으로 번역되는 ‘Arbeit Macht Frei’라는 간판이 달린 정문 밑을 지나 수용소에 도착한다. 이 문은 죽음으로 들어가는 문이었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들의 운명은 악명 높은 의사 엥겔레박사의 손가락에 맡겨진다.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로 불리는 그의 손가락은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린이나 노약자 또는 어린이가 딸린 여성들에 대해서는 왼쪽을 가리킨다. 젊고 건강하여 노동력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 또는 쌍둥이나 귀머거리 등 생체실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손가락이 오른쪽을 가리킨다.

손가락의 방향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순간적으로 생과 사가 갈린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들이 그 손가락 방향에 따라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손가락이 왼쪽방향이면 곧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으로 안내한다고 옷을 벗게 하고 곧바로 샤워장처럼 꾸며진 가스실로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경비병들은 소리친다. “샤워 후 옷을 찾기 쉽도록 옷걸이 번호를 기억해 둬라.” 샤워장으로 속여진 가스실 문이 닫히면 천정에 있는 구멍으로 1Kg이면 200명을 살해할 수 있는 지클론B(Zyklon B)라는 당초 이 잡는데 쓰던 살충제를 집어넣는다. 샤워장으로 들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독가스를 마시고 극심한 고통으로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으며 참혹하게 죽어가는 아비규환의 길고도 긴 20여분! 그리고 샤워장은 벌거벗은 시신들로 가득 찬 지옥이 된다. 시신들은 컨베이어 벨트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소각장으로 운반되는데 그 과정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금이빨까지 수거된 후 소각로에 차곡차곡 쌓여지고 결국은 뼈 부스러기만 남고 모든 것은 끝난다. 장례도 비문도 묘지도 없이, 높이 솟은 소각장 굴뚝을 통해 퍼져나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간 것이다. 실내 소각장은 용량이 부족해 야외 소각장이 여럿 가동되기도 하였다 한다.

 소각로에 남은 뼛조각은 골분비료의 원료로 썼고, 잘려진 머리카락은 독일에 보내져서 양탄자 원료로 쓰였으며 금이빨 등 금붙이는 금괴로 만들어 독일 나치 상부로 보내졌다. 이 금괴들은 아마도 또 다른 형태의 살육을 위한 비용 즉 전쟁비용으로 쓰였을 것이며 샤워장 앞에 벗어놓은 피복들도 수거되어 전시 물자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이곳에 끌려온 그 많은 사람들의 3/4가량이 이처럼 도착 후 몇 시간 안에 인간도살장을 거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각장안의 그을음을 보며 영문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연기로 산화한 이름 모를 이방의 넋들을 생각하며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심경으로 인간과 야수의 경계는 어디쯤인가를 헤아려보았다. 유골도 묘지도 제삿날도 없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원혼은 지금쯤 어디를 떠돌고 있으며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을까?

 손가락이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면 일단 삶을 의미한다. 우선 죽음을 면한 그들은 수감자들 중에서 선발된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발을 맞추어 인근의 건설현장, 농장, 광산, 공장 등에 끌려 나가 중노동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질병을 얻어 사망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총살이나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엥겔레박사의 지휘 아래 행해지는 각종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실로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다. 탈출을 시도하는 수용자가 발생하면 그 방에 있는 사람 열 명을 임의로 선정하여 모든 수용자들이 보는 가운데 사형에 처하는 규칙을 적용하는가 하면 어떤 임산부의 경우 신생아가 젖을 먹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가를 실험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감옥 안의 감옥(prison within prison)’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수용소의 규칙위반자를 가두었다. 낮에는 중노동을 시키고 밤에는 사방 1.5m의 ‘기립실(standing-cells)’이라는 곳에 네 명을 집어넣어 밤새도록 서 있도록 하기도 했다. 지하에서 하루 종일 빛이 없이 아주 조그만 창문으로 산소가 조금씩 들어가게 함으로써 산소부족으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했다는 ‘암흑실(dark cells)’, 죽을 때까지 먹을 것 마실 것을 전혀 주지 않는 ‘아사실(starvation cells)’도 있었다 한다. 이 아사실(餓死室)은 인간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얼마나 생명을 유지하는가를 알아보는 생체실험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정녕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그들의 정신 상태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이 수용소를 만들어 운영한 나치 친위대(SS) 지휘자들은 정말 사람, 정상적인 사람이었을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런 명령을 내리고 이를 실행하도록 만들었을까? 복수심일까 아니면 사명감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그 끔찍하고도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았다. 굶주려서 도무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뼈만 남아있는 네 명의 벌거벗은 사진은 재소자 가운데 체중 35Kg이 넘는 사람이 없었다는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끼치게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 각지에서 짐짝처럼 기차를 타고 와서 내리는 사진, 그들이 가져온 여행용 가방들과 거기 쓰여 있는 이름들, 그들이 쓰던 수많은 목발과 의족들, 안경과 안경테들, 양탄자 원료로 쓰려고 잘라놓은 시신들의 머리털은 독가스에 의해 탈색되어 한결같이 누리끼리하게 바란 색이었다. 곰팡이가 슨 가죽구두와 신발들, 밥그릇 주전자 등 주방기구 들이 각각 산더미처럼 여러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는가 하면 아기 젖병과 턱받이와 털모자 같은 아기용품들이 따로 전시되어있어 가슴에 또 다른 애처로움으로 다가왔다.

  수치스럽고 소름끼치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느낌과 그 잔인한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야릇한 호기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교수대, 총살장, 철조망 등을 둘러보았다. 유네스코는 이 수용소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교훈이 되도록 하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심어 주고자 함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는 유사한 일들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가.

 세계 이곳저곳에서 때로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종교적인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인질로 잡히고, 테러 또는 학살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르비아, 캄보디아, 중동, 9·11 등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이란 진정 무엇인가. 홀로코스트의 아우슈비츠여, 너는 정녕 인간의 땅일 수 있는가!

아우슈비츠는 도대체 몇 개인가  

  우리가 오늘날 아우슈비츠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세 곳에 있는 세 개의 수용소를 통칭하기도하고 때로는 제2수용소를 말하기도 한다. 제1수용소(Auschwitz Ⅰ)는 1940년 5월에 문을 열었고, 그해 6월 제일 먼저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728명의 폴란드 정치범들이었다. 당초 제1수용소는 폴란드의 지식인들과 저항운동을 하는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의 수용소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소련의 전쟁포로, 독일의 동성연애자들, 집시들도 수감되었다. 제1수용소의 수용자수는 통상 만 오천 명 내외였으나 1942년에는 이만 명 수준에 이르렀다. 지클론B 가스에 의한 살상실험은 제1수용소가 세워진 이듬해인 1941년 9월 850명의 폴란드인과 소련인을 대상으로 행해졌고 이때부터 1942년까지 총 육만여 명이 독가스의 제물이 되었다. 제1수용소의 희생자 수는 전체적으로 칠만 명이었고 그 대부분이 폴란드인과 소련 전쟁포로였다. 우리가 와 있는 곳은 바로 이 제1수용소다. 제2수용소(Auschwitz Ⅱ)는 인근 지역 비르케나우(Birkenau)에 1942년 11월 세워졌으며 제1수용소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가스실이 3개나 되었다. 하루에 2만 명을 독살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곳 제2수용소가 반드시 유태인들만 대상으로 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이곳에서 독가스에 의해 희생되었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이곳을 점령하기까지 이곳 제2수용소에서는 최소한 110만 명의 유태인이 폴란드인 칠만 오천 명과 집시 만 구천명과 함께 희생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 아우슈비츠라는 말이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흔히 이 제2수용소를 가리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년 2개월 그러니까 26개월 동안에 1백20만 명 가량이 가스실의 제물이 되었다니 평일 공휴일 구분 없이 하루에 천오백 명이상이 이곳 제2수용소에서만 목숨을 잃었다는 계산이다.

 거대한 살인 공장, 과학화되고 조직화되고 규모화 된 인간 살육장이 바로 제2수용소였다. 1944년 11월 나치 독일의 친위대는 이곳의 가스실을 스스로 폭파해 버렸다. 이는 전황이 기울어감에 따라 자신들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잔혹행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3수용소(Auschwitz Ⅲ)는 역시 인근 지역인 모노비스(Monowice)라는 곳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세워진 약 40여개의 크고 작은 수용소 분소(subcamps)들을 가리킨다. 이곳의 수감자는 강제노동자로 노예생활을 하였는데 1940년부터 45년까지 약40만 5천명이 이 부류에 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중 34만 명이 처형되거나 구타와 굶주림 질병 등으로 생명을 잃었다. 쉰들러 리스트에 올라 생명을 보전했던 천 백 명의 폴란드 출신 유태인들도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는 것이 너무나 많은 우리의 현지가이드는 끊임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인간이 어떻게 이처럼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이제 살인 박물관으로 변신해 있는 이곳에는 매년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오는데 독일 사람들도 많고 독일 학생들의 수학여행단도 많이 온다고 하는데 그들은 여기서 무엇을 느낄까. 동서독 통일에 큰 역할을 했던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이 이곳을 방문해 통곡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