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지옥의 체험과 사색, 빅터 프랭클

  아우슈비츠,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3년 동안 버티다가 살아난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이 생각났다. 그는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태어났고 비엔나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신경정신과 의사였다. 37세 때인 1942년 나치에 체포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 동안 수용소생활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굶어죽었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수용소로 끌려 다니며 수감생활을 하다가 종전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인간의 의미 추구(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출판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된 바 있는 이 책은 전 세계 19개 국어로 출판되었고 영어판만 73판, 5백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프랭클 박사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아우슈비츠 도착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실려 며칠 밤과 낮을 계속해서 달렸다.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소지품을 담은 짐 꾸러미 위에 누워 있었다. 열차 안이 너무나 꽉 차서 창문 위쪽으로 겨우 잿빛 새벽의 기운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모두 이 기차가 군수공장으로 가는 것이기를 바랬다. 그곳에서는 강제노역이나마 일을 하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차가 지금 쯤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겁먹은 듯한 기적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마치 파멸에 빠질 운명에 처해 있는 이 불행한 짐 꾸러미들을 불쌍히 여겨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기차가 덜컹거리며 옆 선로로 들어섰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구해 내고 싶다는 듯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33-34쪽)

  이처럼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과 함께 도착한 수용소에서 그들은 한사람의 손가락 방향에 의해 결정된 삶과 죽음의 첫 번째 판결, 즉 일행의 90%가 기차역에서 곧장 가스실로 직행하는 그 선별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2백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천 5백 명이 가축처럼 집어넣어지면서 본격적인 수용소 생활을 시작한다.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바닥에 드러눕기는커녕 쭈그려 앉아 있을 만한 자리조차 없었다. 나흘 동안 우리가 받은 양식이라고는 5온스(약140g)짜리 빵 한 개가 전부였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의 중노동, 사람의 이름이 박탈되고 오직 번호만으로 인격이 말해지며, 조금만 약하게 보이거나 감독의 눈에 거슬리면 가스실행이라는 무서운 압박감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은 1단계 심장이 멎는 충격에서 2단계인 무감각의 상태로 변해간다.

  무감각의 상태란 어떤 것인가. 한 사람이 숨을 거두자 나머지 사람들이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시신 곁으로 다가가 죽은 사람이 먹다 남긴 감자를 낚아채 간다. 어떤 이는 시신이 입고 있던 겉옷이나 신발 또는 신발 끈을 차지하며 좋아 한다. 그리고 시신은 발목을 잡혀 질질 끌려 나간다. 두 시간 전에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그 사람, 이제 시체가 되어 동태 같은 눈으로 동료 친구를 바라본다. 그러나 친구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먹다 남은 수프를 마저 먹는다. 그들은 정말로 어떤 일을 당하건 무엇을 보든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자극에도 심리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이게 바로 무감각의 단계이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이며 철학박사인 빅터 프랭클은 그냥 평범한 보통 수감자의 한사람으로 수용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과 자신의 체험 그리고 동료 수감자들의 심리변화를 관찰한다. 사람이 절망하고 포기하는 과정은 어떠한지, 언젠가 살아 나갈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극심한 추위 속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떤지 관찰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수용소 생활 중 얻는 작은 행복들 즉, 한 조각의 빵이나 한 순간의 휴식 또는 멀건 수프 속에 들어 있는 몇 알의 콩 그리고 잠자기 전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 막사 안에서 옷을 벗어 이를 잡도록 허락된 시간(이를 잡지 않고 잠자리에 들면 뜬 눈으로 날을 새는 것과 같다)을 얻었을 때의 심리 변화도 묘사한다.  

  뿐만 아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 정문위에 하얀 깃발이 펄럭이며, 수감자들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는 순간의 체험과 심리상태도 이 책은 자세히 그리고 있다. ‘우리가 미친 듯이 기뻐했으리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갔다. 조금씩 사방을 둘러보고, 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위 책 156쪽)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프랭클은 들꽃이 만발한 들판으로 난 시골길을 걷다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대지를 둘러본다. 그리고 문득 무릎을 꿇고 앉는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의미를 찾는 의지로 사람은 산다   

  프랭클은 또 수용소의 감시병이나 감독들이 수감자 가운데서 선발된 사람들이었음을 지적함으로써 유대인들도 그 가운데 섞여 있었을 것임을 암시한다. 수감자들에게 그토록 잔인한 폭언과 구타와 살상을 일삼는 감시병들도 어느 순간에 다시 수감자의 일원으로 전락하고 결국 가스실로 가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또 감시병 중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그가 풀려났던 마지막 수용소 소장이 그 한 예이다. 그는 나치 친위대원이면서도 수감자들에게 줄 약을 사기 위해 자기 호주머니를 털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소장은 수감자들에게 손 한 번 댄 적이 없었다. 뒤에 미군이 들어와 수용소를 해방시켰을 때 수감자들이 그를 숨겨 주었고 이야기에 감동한 미군 책임자가 그를 복직시켜 수감자들에게 줄 옷을 구하는 일을 맡겼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수용소에 처음 들어올 때 곧바로 가스실로 직행했던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자기 자신이 수감자의 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감시병이나 관리인의 직책을 맡는 순간 그 어떤 나치대원보다 더 지독하게 수감자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프랭클은 강조한다. 누가 수감자였고 누가 감시병이었는가라는 단순한 정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집단과 집단사이의 경계선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사람들은 모두 천사, 저 사람들은 모두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찰과 사색을 통해 프랭클은 ‘인간은 의미를 찾는 의지’로 살아간다고 확신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프랭클 자신도 아우슈비츠에 처음 잡혀 갔을 때 자기가 저술하던 책의 원고를 압수당하고 난 뒤 이 원고를 새로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과 이를 위해 작은 종이조각에 수많은 메모를 하는 작업이 바로 자신이 죽음의 위험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더 잘 살아 남았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고, 수용소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록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북한 그리고 북베트남(월맹)의 포로수용소에서 실시된 정신치료 연구조사도 꼭 같은 결론은 내리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