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프라하와 바르샤바, 지혜로운 항복과 용감한 저항

 우리는 프라하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영화 아마데우스가 촬영되었다는 자리에서 사진도 찍었다. 건물마다 정원마다 이야깃거리가 주저리주저리 얽혀 있었고 우리를 안내한 한국인 현지 가이드는 그 많은 이야기를 언제 다 공부했으랴 싶게 열심히 설명하였다. 궁정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들어간 성비투스 성당 안에서도 가이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이를 머릿속에 담아두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역사나 미술이나 종교적인 소양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우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장식품과 보물들과 무덤들을 둘러보고, 굽이굽이 원형의 좁은 계단을 따라 성당의 종탑에 올라갔다.

  종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성당의 지붕은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고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프라하 시가지, 연한 붉은 색 지붕들과 블타바(몰타우)강의 경치 또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바로 이 아름다움이 매년 1억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리라. 바로 이 아름다움, 성냥갑 같은 고층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고 푸른 숲과 푸른 하늘 그리고 푸른 강물, 고만 고만한 높이의 은은하면서도 꼭 같지 않은 붉은 색 기와지붕들이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중세의 역사이야기들이 유네스코로 하여금 프라하 구시가지 전역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게 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친 다리를 끌고 ‘황금소로’를 걸어 내려 왔다. 당초 프라하 성의 경비원 숙소로 이용되었고 나중에는 연금술사들과 금은 세공사들이 살았었다는, 그래서 이름도 ‘황금소로(golden lane)’로 붙여졌다는 스물 네 채의 조그만 집들이 늘어서 있는 이 좁은 골목길에는 카프카가 작품 활동을 했다는 집이 있었다. 푸른 벽에 검은 글씨로‘22’라고 선명하게 써진 곳이 그의 집이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주변의 눈치를 보며 기를 펴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폐결핵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변신(變身)’‘성(城)’ 등의 걸작을 남기고 4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실존주의자 카프카가 글을 쓰던 그 조그만 집은 서점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그 조그만 책방을 들여다보고 문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카프카가 고개를 숙이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골목길을 올라와 이 집으로 들어가 글을 쓰던 모습을 상상하였다.

 여기저기를 돌다 보니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쳤으면서도 이처럼 중세의 도시가 온전할 정도로 남아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폴란드의 크라카우에서도 비슷한 의문을 가졌었는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 쳐들어오자 완강하게 저항하였고 또 끊임없는 레지스탕스 운동이 벌어짐으로서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파괴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크라카우나 프라하는 독일군이 쳐들어오자 재빠르게 백기를 들고 항복함으로써 오랜 문화유산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사실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지만 자존심과 애국심을 지키기 위한 저항, 그리고 그로 인한 처절한 파괴를 감수한 바르샤바와 냉정한 현실 판단을 토대로 비굴한 항복을 통해 오랜 문화유산을 지켜낸 크라카우나 프라하, 과연 어느 쪽이 지혜롭고 현명한 것이며 진정으로 용감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낭만의 다리, 카를교

 우리는 전철을 타고 구시가지로 내려와 카를교로 갔다. 카를교는 프라하성과 함께 이 도시를 대표하는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비 10m 길이 520m의 이 크지 않은 다리는 블타바 강의 홍수로 예전에 세워졌던 다리가 파손되면서 1357년 카를4세의 명에 따라 세워졌다. 16개의 커다란 석조 교각이 바치고 있는 이 다리는 서울의 한강다리들과 비교 할 때 그 규모면에서는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이 석조 다리가 세워진 것이 7세기 전의 일이니 당시로서는 대교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다리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1900년대 초에는 다리 위로 전차가 다녔다 하고 그 전에는 황제와 귀족들이 마차를 타고 다리를 건넜을 터인데 지금은 차량통행이 금지되고 사람들만 건너는 다리가 되었다. 다리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케니로저스의 음색을 닮은 턱수염이 더부룩한 초로의 남자 가수가 부르는 재즈가 석양아래 깔리고 다리 저편 아름다운 지붕들 위에 걸린 노을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누군가 재즈가 영혼의 음악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국에서 듣는 재즈는 엷은 어둠속에서 영혼의 심연을 뒤흔들며 향수를 자극했다. 관광객들이 주변에 둘러서서 여유 있게 생음악을 들으며 박수를 보내고 잔돈을 던지는 모습이 참으로 활기차고 평화롭다.

  이들 거리의 악사들은 국가의 허가를 받고 또 세금을 낸다고 한다. 또 한쪽에서는 거리의 미술사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10유로인가를 주고 폼 잡고 앉아 캐리커처에 가까운 초상화를 그렸는데 워낙 실물이 뛰어난 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실물보다 훨씬 못했다. 돈 주고 그린 걸 깎아 내릴 수 없어 그럴듯하다고 얘기해 주었는데 액자에 넣으면 한결 나아질 것 같다.

  다리 양편으로는 길게 15개씩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다. 성경이나 체코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재로 한 사람의 실물크기보다 약간 큰 것으로 보이는 조각상 때문에 다리 전체가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그 조각상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성 네포무츠키(Jan Nepomucky)의 상이다. 네포무츠키는 14세기 바츨라프 4세 때의 궁중 사제였다. 그는 왕비 소피아로부터 외간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고해성사를 듣는다. 왕비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왕은 사제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털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네포무쯔키 신부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깰 수 없다고 끝내 버티다가 결국 왕에 의해 혀가 뽑히고 블타바 강물에 내 던져진다. 네 다리에 돌이 묶인 채 그가 카를다리 아래로 수장되는 순간 강물위에 다섯 개의 별이 떠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뒤에 카톨릭의 성자로 추대되고 이 조각상은 그의 아름다운 순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체코 어디를 가든 다섯 개의 별이 있는 상(象)은 네포무츠키 신부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조각상의 받침대에는 좌우로 청동 부조가 붙어 있는데 이 부조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하루 종일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서서 이 부조를 만진다. 우리 일행들도 차례를 기다려 반짝 반짝 빛나는 부분을 만지며 사진을 찍었다. 각자의 소원은 각각 다를 테지만 사진 찍는 포즈는 꼭 같았다.

  또 다리 양쪽 끝에는 우리나라 독립문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교탑이 세워져 있고 이 교탑 또한 다양한 조각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교탑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블타바강 양안의 경치와 프라하 성의 경치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는데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리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냥 낭만적인 카를교를 걸으며 아내와 함께 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했다.

  구시가지 쪽에서 다리로 가는 입구에는 이 다리를 세우고, 카를 대학을 만드는 등, 프라하가 ‘북쪽의 로마’로 불릴 만큼 프라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4세의 동상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