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인형극의 나라, 맥주의 나라

 중세의 도시라고 부르는 프라하는 건물들이나 도로가 거의 그 무렵에 지어진 것이라서 늘어나는 교통량에 따라 도로를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일방통행도로가 많고 주차금지 구역이 많아 웬만하면 지정된 주차구역에서 차에서 내려 걸어야하고 다시 지정된 주차구역으로 가서 차를 타야한다.

 우리는 전철을 타고 구 시가지로 내려와 골목골목을 돌아 우리 교포가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길가를 지나며 우리는 체코가 ‘맥주의 나라’, ‘인형극의 나라’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길 양쪽에 늘어선 가게 앞 또는 차량통행 금지구역의 도로까지 차지하며 조그만 의자와 탁자를 놓고 아주 비좁게 앉아서 맥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다양한 모양의 인형들을 가득 진열해 놓은 가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체코에는 참으로 다양한 맥주들이 많은데 역사도 깊고 체코인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도 사실은 체코에서 유래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미숫가루 같은 맥주도 있는데 이를 ‘흐르는 빵’이라고 하며, 체코인들 사이에는 ‘저녁을 먹는다.’는 말 대신 ‘저녁을 마신다.’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이때의 저녁은 사실 맥주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체코의 인형극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미 18세기에 인형극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세기에는 아마추어 인형극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면서 발달한 이 나라의 인형극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된다고 한다. 대학에 인형디자인학과, 무대디자인학과가 있을 정도이고 인형박물관도 있다. 1991년 무대에 올려지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공연되고 있는 인형극 ‘돈조반니’는 지금도 연일 매진을 기록한다고 한다. 

  우리가 가이드를 따라 찾아간 한국인 기념품 가게에는 각종 크리스털 제품들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었고, 세련된 매너의 아리따운 한국인 점원이 친절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가족과 친지들의 명단을 지니고 다니며 무슨 선물을 사야 되는가, 호주머니 사정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입국할 때 세관에서는 별 문제는 없을까, 이런 고민들이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을 능가하던 70년대 80년대의 경험이 떠올랐다. 이제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그런 걱정이 없어진 것은 참 홀가분한 일이다.

 1978년 그 복잡한 수속과 절차를 거쳐 여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손에 넣었을 때의 느낌, 귀국길에 비행기가 김포공항 상공에 접근하면 안보상의 이유라면서 비행기 창문을 모두 내려 밖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 동남아에서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몰려다니던 모습도 떠올랐다. 1985년인가 로마에 갔을 때 일본어로 된 관광안내 책자가 많이 팔리고 있는 걸 보고 언제쯤 한글 관광안내 책자가 이런 세계적인 관광지에 나오게 될 것인지 아쉬워했던 기억도 떠올랐는데, 이제 웬만한 관광지면 한글판 관광 안내책자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프라하의 밤, 쫑파티

  비엔나에서 1박2일, 부다페스트에서 1박2일, 타트라 산맥에서 1박2일, 크라카우에서 1박2일, 브루노에서 1박, 그리고 이제 프라하에서 하룻밤 지나면 서울로 돌아간다. 우리는 프라하의 한국인 음식점으로 안내되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체코의 맥주와 포도주를 곁들인 쫑파티를 열고 그동안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이드를 제외한 총 25명의 일행이 차례로 한마디씩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오고간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아무 사고 없이 일정의 마감을 앞두게 된 데에는 일행 모두가 다 같이 협력한 것에 대한 상호간의 고마움과 신뢰의 표현이 공통적이었다.

일행의 연령층은 40대에서 60대지만 단 한사람도 건강에 이상이 없었고, 여권분실 등의 흔한 해프닝도 없었으며, 언제 어디서든 모이는 시간에 거의 지체되는 일 없이 다 모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 한 것이다. 일행 중 한 분이 치질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상태에서 고통스러움을 참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였노라고, 사실 몸이 불편한 기색을 일행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더 신경을 썼노라고 고백하자 고마움과 격려의 박수가 터지기도 하였다.

 부부동반이 아니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다시 나왔고 농가방문 등 농촌현장에 대한 접근기회가 부족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와 함께 농촌 현장 방문에 따른 시간과 비용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낮에는 일정대로 잘 진행되었으나 야간 일정이 전혀 없었던 점도 지적되었다.

야간 일정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역시 비용문제가 따르고 또 우리가 방문했던 국가들이 대부분 저녁 일찍 음식점이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는 특징이 있음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간 일정은 개인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었으며 실제로 밤에 몇몇이 따로 나가 개별적인 프로그램을 가졌었다는 자백(?)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느꼈다는 것이 공통적이었다. (여행에서 얻은 교훈들은 따로 뒤에 정리해서 적어 두었다) 우리들의 해외여행도 한 나라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음 날에는 다른 나라로 쫓아가서 증명사진 찍기에 바쁜 마치 유격훈련 같은 천편일률적인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음미하고 생각하고 또 휴식도 취하는 그런 품위 있는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일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기약 없는 프라하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공동묘지와 비석 그리고 묘비명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산책길에 나섰는데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뒤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는 빙 둘러 담이 쳐있고 큰 나무들이 무성하여 담하나 사이에 있는 호텔에서 보면 그냥 숲이 우거진 공원이었다. 사람의 키보다 높은 시멘트 담 옆길을 따라 출입문을 찾았다. 공동묘지 주차장에서 묘지로 들어가는 출입구 옆에는 조그만 꽃 가게가 하나있었고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공동묘지에는 봉분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고 우거진 큰 나무들 밑으로 평평한 바닥에 돌로 만든 비석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비석크기는 대략 높이가 50센티에서 150센티 정도였고 너비는 4,5십 센티 정도로 보였는데 비석을 받치는 기단은 크기가 제 각각이었다. 특이한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당시에는 가족들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는 여러 사람의 이름 그리고 그들 각각의 출생일과 사망일이 쓰여 있는 비석도 있었다. 이런 비석은 마치 족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 생전의 고인 사진을 영구적으로 붙여 놓은 비석들도 적지 않았다. 그 후손이나 친지들이 이런 비석 앞에 서면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이 더 절절하지 않을까 느껴졌다.

  비석 앞에는 석관이 묻혀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는 듯했다. 조그만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공동묘지에 안장된 유골의 수가 굉장히 많을 듯하다. 땅덩이도 좁은 우리나라의 장묘문화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시간이 없어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비문에 적힌 알 수 없는 체코 문자와 이방의 묘지들이 주는 느낌은 한층 이국적인 것이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든 사람은 다 묘지로 들어가는 데, 나도 언젠가는 그리 될 텐데, 내 묘지는 어떤 모양을 하게 될까, 내 묘비명은 어떤 것일까. 무어라고 써 달라 할까. 이국의 묘지에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은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걸레스님 중광의 묘비명은 ‘괜히 왔다 간다’고,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나 우물쭈물 하다가 이리 될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적어달라고 했다지. 매월당 김시습은 ‘백년 후 내 무덤에 표를 할 적에는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 주구려’라는 한시를 남겼다하고,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의 묘비명에는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라고 적혀 있고, 아브라함 링컨의 묘비명에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문 구절이 쓰여 있다고 한다.

 최근 유서쓰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묘비명 미리 써 놓는 것도,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 B. Yeats)의 비문에 있는 것처럼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착해지고 경건해지고 살아온 삶을 반성하기 마련일 테니까. 누군가 만약 당신의 삶이 딱 하루, 또는 일주일, 또는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고 적어보라던 충고가 생각났다.

 아무튼 예이츠의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냉철한 눈길을 던지시오. 말을 탄이여 어서 지나가시오(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