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농정전략연구센터 소장  고영곤

동유럽이여 안녕

   7박 8일의 일정은 그렇게 지나가고 다시 튜브고추장이나 팩소주가 아니어도 좋을 한국 땅으로, 그곳에서의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역사와 예술, 연민과 사랑, 증오와 용서가 얽히고설킨 동유럽,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진 우리들 사이의 추억과 우정, 경험과 깨달음을 비행기에 싣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날아갈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가져왔고 무엇을 가져가는지 어제 밤 쫑파티에서 오고 갔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버스는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내려서 짐을 챙겼다.

동유럽이여 안녕, 프라하여 안녕.

다뉴브강이여, 블타바강이여 유유히 흘러라.

타트라 산맥이여 영원하라.

강대국 사이에서, 동서간의 냉전체제에서 서러운 근현대사를 살아온 헝가리 폴란드 체코 백성들이여, 아우슈비츠의 원혼들이여 안녕.

곳곳에서 활발하게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이여 파이팅.

우리나라 농업도 자동차산업, 타이어산업, 전자산업, 건설업에 못지않게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는 날이 오겠지.

프라하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었다.

산도 나무도 빌딩도 보이지 않는 구름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다시금 우주와 인간, 시간과 역사, 한 순간의 점에 불과한 우리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끝-

 

 

동유럽 연수소감 정리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 쫑파티에서 오고 갔던 이번 여행의 소감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국제화 개방화에 대한 시야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벌였으며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관계에 있었던 국가들이 이제 EU로 결합하여 국가와 국가 간의 국경선이 사실상 사라져가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과 물자의 국가간 이동이 국내의 각 도간 이동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면서 우리의 시야를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실감했다.     둘째, 우리나라의 국력 신장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새삼 실감했다. 이곳저곳에 국내 기업의 광고판이 서 있고,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 와서 자동차공장, 타이어공장, 전자제품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웠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그 먼 이역만리에서 동포를 만나도 별로 반갑지 않은 사실도 어쩌면 우리나라 경제력의 상징 아니겠는가. 한편에서는 외화 낭비라는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에 비해 외국인의 국내관광은 보잘 것 없다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력이 커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뿌듯한 긍지를 심어주었다.     셋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또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폴란드나 헝가리 체코 등 2차 대전 후 공산화되었던 나라들이 이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들 국가들은 각각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해 냈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1950년대, 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력이나 생활수준은 이들 국가를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뒤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화 된 후 잃어버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1인당 국민소득이나 생활수준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이들 국가들을 추월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어 있다. 이는 바로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사회에서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개인의 창의와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 아니겠는가. 국유화된 농지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꼭 같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누가 모험심을 발휘하고 땀 흘려 일하겠는가.     넷째, 동구권 국가들의 엄청난 농업부문 잠재력을 깨달았다. 이들 국가들은 1인당 국토면적이나 농지면적도 우리보다 몇 배씩 많고 토질도 좋고 대 평원지역이 많다. 오랜 공산정권의 잔재가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시장경제원리가 작동된다면 이들이 지닌 농산물 특히 축산물 생산 잠재력이 가시적인 증산으로 나타나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한․EU간 자유무역협상이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특히 축산부문의 협상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우리의 경쟁력강화가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다섯째, 경제 강국, 물질적인 풍요는 물론 문화강국, 정신적 풍요 같은 것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가치가 대단히 중요하다. 음악, 미술, 문학, 건축, 조각 등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의 중요성을 이번 여행에서 실감하였다. 문화를 갖추지 못한 경제적 풍요만으로는 지구촌 가족들로부터 그리고 후손들로부터 존경 받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문화가 결국은 경제를 끌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도시의 성냥갑 같은 고층빌딩 숲보다 프라하의 작은 다리 하나가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가. 품위 있는 국민이 만들어가는 품위 있는 도시와 경제적인 바탕, 이제 우리도 이런 것들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여섯째, 사람 즉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재확인 했다는 점이다. 사회의 발전은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행동양식에 의존한다. 과거 절대왕정시절이나 나치 지배시절, 그리고 공산독재 시절에는 군사력이 사회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민주사회, 시장경제, 그리고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역시 사람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체코에서도 농업부문의 교육과 인력양성이 강조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도 바로 근면한 인적자원의 힘이었다면, 농업 농촌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우수한 인적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 모두 우수한 인적자원에 속하는지 스스로 돌이켜 보고, 우수한 인적자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