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나는 벌써 사막이 그립다(1) 

희망제작소 호프메이커스 클럽회원들과 함께 한 중국 실크로드 역사탐방은 9일(2010. 7.25 - 2010. 8.2)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와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 부장 민병훈 박사,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봉은사 진화스님과 권희석 하나투어 대표 등 각계 인사를 포함하여 모두 67명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출발해 투르판, 코를라와 쿠차, 악수를 거쳐 카슈가르까지 6일 동안 2,000km 이상을 버스로 이동한 후에 비행기로 우루무치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신장 지역은 위구르인의 비율이 45%로 가장 많고, 한족 41%를 비롯해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다민족 사회로, 면적은 우리나라(남북한)의 7배 정도가 되고 중국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자치구 중 최대 면적을 가진 곳이다. 신장은 중국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몽골, 러시아, 아프카니스탄과 인도 등 모두 8개국과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곳으로 한대와 당대의 실크로드 개척으로 문명사적인 융성을 누렸던 곳이다.     실크로드는 지금부터 2천 년 전, 중국 시안에서 이태리 로마까지 이어졌던 동서교역로를 지칭하는 말로,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China"라는 책에서 독일어로 자이덴쉬트라세(Seidenstrasse, silk road)로 명명한데서 유래한다. 이 길은 비단과 도자기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와 불교 등 각종 종교와 문화, 사상들이 전해진 동서 문물의 소통로였다. 기원전 1세기부터 이용 된 이 동서 소통로는 하나의 독립된 루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중국에서 로마와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두 종착점과 존재할 뿐 그 사이를 잇는 길은 시대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흔히 실크로드는 북방유라시아의 스텝지역을 횡단하는 ‘초원의 길’과 중국 서북 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사막지대를 경유하여 유럽에 이르는 ‘오아시스 길’, 중국 화남지역과 동남아,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에 도달하는 해양 실크로드인 ‘바닷길’로 나누어진다. 훗날 실크로드 육로는 보다 안전한 바닷길이 교역로로 개발됨에 따라 동서교역로보다 문화교통로로의 기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번 우리의 여행경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속한 오아시스로의 일부를 다녀 온 것이다.

 프롤로그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에 작은 새 무리가 와서 재잘대고, 울창한 잎사귀 뒤에 숨은 매미가 시원스레 목청을 열어젖히는 오후, 목장너머 뒷산이 무성한 게 왠지 낯선 느낌이 든다. 타는 듯 붉은 산, 버스로 종일을 달려도 풀 한포기 없는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 고비사막에 익숙해졌던 시신경이 원점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실크로드가 내 감정의 영역으로 들어 온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뭔가 해결해야 할 일에 자문을 구하고자 광화문 근처에서 퇴근하는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할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찻집에 있기에는 광화문 부근에 드리운 저녁햇살이 너무 싱그러운 초여름 저녁 무렵이었다. 역사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경희궁에서 실크로드 사진전을 한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한 두어 시간 사람을 기다리기에는 그만이다 싶어 찾아 든 사진전은 일본인 작가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북경에서 베니스까지 실크로드 주변을 사는 사람들의 삶은 빈곤하고 소박하지만 알 수 없는 마력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위가 잉크 빛 어둠으로 물들어 갈 때까지 경희궁을 소요하며 실크로드라는 로망을 마음속에 심었고, 그 꿈은 의외로 희망제작소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당겨서 이룰 수 있었다.

 뜨겁고 망망한 사원(砂原)에 형성된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과 무시로 모양을 바꾸는 모래비늘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낙타를 타고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끝나지 않을 고행지를 수도하듯 나아가는 사람들, 타는 목마름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문득 나타나는 야자수 잎이 무성하고 푸른 호수가 있는 구원의 땅 오아시스, 이것은 오랫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사막의 정형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여러 번을 물어야 했다. 고층빌딩에서 휘황찬란한 네온이 쏟아져 나오고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곳, 사막을 달리다 문득 백양나무 가로수가 우거지고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흘러가는 곳, 푸른 포도밭과 옥수수 밭, 해바라기가 탐스러운 밭을 지나며 여기도 오아시스냐고…. 그러면 번번이 거기도 오아시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오아시스는 동화 속 같은 낭만을 지닌 자연발생지가 아니라 인간이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안해 낸 지혜가 축적 된 삶의 터전임을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떠나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 부장인 민병훈 박사(이하 인명 존칭 생략)는 이번 여행에서 ‘오아시스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사막인들이 삶을 위해 개척한 역사적이고 인위적인 산물’이라는 것만 알아도 큰 수확이라는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내 그렇게 질문을 해댔으니 고정관념은 정말 고약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길을 개척해 간 역사는 인류 문명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결국 길의 역사는 문명이 진화해간 역사와 맞물리는 것일 것이다. 외국과의 통신 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오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그 먼 곳의 소식을 알고 자신들의 삶에 이방인들의 삶의 자취를 들여 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그 막막한 사막에 길을 만들며 나아갔던 사람들, 실크로드 기행은 사람의 삶이 거의 불가능했던 사막에서 앞서간 이의 유골을 이정표삼아 나아갔다는 선각자들의 위대한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선각자 중에 혜초스님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도에서 느꼈던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사막에 꽃 핀 문화유적의 자취를 따라가며, 그 어떤 문명도 완전한 독창성을 가지고 홀로 존재 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이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