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나는 벌써 사막이 그립다(2) 

 실크로드 문명의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민병훈 박사와의 만남

  우루무치에서의 첫날 일정은 민병훈 박사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딸(조은하)은 연구소 사정상 9일간의 휴가는 불가능했으나, 이번 실크로드 역사탐방이 가능했던 데는 연구소측에서 민박사가 인솔하는 탐방단이라는 사실을 참작해 주어 어렵게 합류 할 수 있었다. 그런 연고로 은하가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기대를 했던 부분이 이 만남이었으나, 출발당일 공항에서 그와의 수인사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하니 그러냐고 살짝 미소만 지을 뿐 아무것도 묻질 않아, 우리 모녀는 그만 목례만 한 채 지레 주눅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첫 일정인 신장박물관에 당도하니 개관시간이 지났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아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틈을 타 용기를 내어 은하와 함께 포즈를 취해달라고 어렵사리 청하였다. 어색하게 사진을 한 컷 찍고 나서야 은하에게 소속과 하는 일 등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관계는 사이사이 딸애의 노트를 챙기며 메모내용에 대한 멘트를 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장족의 발전(?)을 했으나, 유물 ․ 유적에 관한 것이 아니면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민박사에게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거는 일은 심호흡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동서교역의 십자로, 투르판(吐魯番)으로

 우루무치에 있는 신장박물관은 위구르의 역사와 풍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월요일은 휴관일이었으나 민박사와 절친한 관장의 특별배려로 관람을 할 수가 있었다. 이색적인 것은 미이라 전시실이다. 사막의 건조기후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존 된 1,300년 전의 미녀 미이라는 키가 157cm나 되며 오뚝한 콧날에 엷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경이로운 모습을 하고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누워있었다. 신장박물관을 떠나 투르판으로 가는 차창 밖 풍경은 날도 흐리고 조금은 너저분하고 스산한 분위기였다. 가다가 다반성(達坂城)의 풍력발전소 지대에서 잠시 정차하였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기술을 받아들여 설치한 풍력발전기가 485기인데 우루무치 전력소비의 20% 정도를 감당한다. 넓은 땅이지만 별 쓸모없었던 사막의 바람이 에너지가 되는 개가를 이룩한 것은 과학의 발전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라 부러운 맘이 들었다.

   동서교역의 십자로, 동서문명의 용광로라고 일컬어지는 투르판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흔히 중국의 관문이라 일컫는다. 투르판은 불교유적이 많은 곳으로 우리 일행이 답사한 투르판의 유적만 하더라도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아스타나 고분군과 베제클릭 천불동이 있다. 투르판에서는 5, 6세기부터 석굴축조를 시작하였고, 석굴 안은 종교의 성쇠에 따라 벽화 층이 덧칠해진 흔적도 볼 수 있다. 새로 유입 된 종교는 기존 종교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종교의 장점을 흡수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종교습합(習合)이 일어나 투르판은 불교유적하나만 보더라도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베제클릭 석굴의 경우에는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나 불교가 다른 종교와 어떻게 습합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가 있다고 한다.

 - 신의 시험에 합격한 삶의 모범답안 (카레즈)

 타림 분지 안에 위치한 투르판은 중국내에서 가장 낮은 해발고도(-156m)를 지닌 곳으로 돌궐어로 ‘부유하고 풍부한 지방’이란 뜻을 지닌 곳이다. 바싹 마른 사막기후로 바람이 강한 투르판에는 서유기의 무대가 된 화염산이 있다. 날이 흐렸는데도 풀 한 포기 없는 붉은 화염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막힐 지경이었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아 강수량이 60mm이하인데도 년 증발량은 2,000mm 이상인 투르판이 융성할 수 있는 데는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물을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카레즈가 있어 가능하다. 만년설은 보통 해발 3,500미터 고지에서 형성되며 맑은 날은 멀리 천산산맥의 만년설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카레즈는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 3대 건축물로 불리는 대 역사다. 카레즈는 천산산맥이 이고 있는 만년설로 인해 형성된 지하의 자연 수로를 지표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작은 우물을 카레즈박물관 안을 흐르는 맑은 물 20여m 간격으로 파서 만 든 것으로, 4월이 되면 양이 수 백 마리가 날아 갈 정도로 부는 강한 바람 때문에 끊 임없이 관리보수를 해야 하는 곳이다. 투르 판의 카레즈박물관에는 천산(天山)의 만년 설에서부터 오아시스까지 연결되는 카레즈 모형이 만들어져있고, 우물을 파는 모습을 형상화한 부조물들이 전시된 공간사이로 카 레즈의 맑은 물이 흐른다. 고래로 치수(治 水)의 지혜가 정치의 중요한 요소였음을 다 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강한 바람과 열사의 기후와 물 부족을 지 혜롭게 헤쳐 나가며 불모의 땅을 풍요로운 땅으로 가꾼 사막인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경탄을 금치 못했다. 신은 사막에서도 인간 들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며 만년설 이란 힌트를 주었던 것이다. 이런 자연환경 으로 인해 200여종에 이르는 투르판의 포도는 신장의 3대 과일 중의 하나로, 풍부한 물과 일조량 덕분에 병충해가 거의 없고 당도가 높다. 흙벽돌을 엇갈려 쌓아 네모반듯하게 통풍이 잘 되게 만든 포도건조장은 투르판 어디서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