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사막에 세운 옛 제국의 꿈 

 - 사막에 세운 옛 제국의 꿈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카레즈 박물관을 떠나 교하고성에 가는 길은 큰 볼거리 없이 지루하고 희붐한 민둥산인 천산산맥과, 산맥이 뿌리를 내린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고비사막(자갈밭으로 이루어진 사막의 한 형태)인 타림분지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전신주와 통신선이 지나가는 나무 전봇대가 가끔씩 시야를 방해할 뿐 소금기가 말라붙어 희끗희끗하고 망망한 불모의 땅은 계속되고 있었다. 강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교하고성은 실크로드의 천산남로와 북로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며, 교하국과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수도로 두 개의 강을 사이에 두고 솟은 땅을 파 내려가며 조각하여 만든 도시이다. 교하고성에는 현장법사가 설법을 했다는 불전과 민가터와 궁궐터, 우물의 흔적 등이 남아있다. 2천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교하고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보호를 받는 유적이다.

 실크로드의 여정을 이해하는데 [대당서역기]를 쓴 당대의 고승, 현장법사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현장법사는 흔히 우리에게 서유기의 삼장법사로 알려졌는데, 원래 삼장법사란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臟)에 정통(精通)한 법사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려니와 현장법사의 속칭이라고도 한다. 현장은 만화 서유기를 통해 우리에게 희화된 것처럼 우유부단하면서도 제자들의 코믹한 싸움이나 중재하던 그런 스님은 아니며, 당대 불교를 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고승이라고 한다.

 백양나무가 울창한 성 아래 지역과는 달리 비스듬한 길에 올라서자 토성이 펼쳐져 있는데 제대로 된 사막 열기가 기다리는 쭉 뻗은 중앙로가 나타났다. 그 뜨거운 땅에도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작은 꽃을 피우고 있어 대견하고 안쓰럽기 조차했다.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데 끼쳐오는 열기가 사막에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을 사정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더욱 열기가 후끈거려 투르판(고창)을 화주(火州, 불의 땅), 사주(沙州, 모래의 땅), 풍주(風州, 바람의 땅) 라고 불렀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중앙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이드선생들의 수고로 먹었던 아이스 케키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잔잔한 흰 구름이 아기자기한 레이스처럼 드리워진 푸른 하늘아래 두루뭉술하고 비정형적인 토성의 실루엣은 이국적이었으나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해 보기란 무딘 눈과 감각을 지닌 일개 관광객인 내게는 무리한 일처럼 보였다. 장엄하지만 고독하고 막막한 고성의 유적을 따라 천천히 우측으로 돌아가니 성안과는 달리 하천을 따라 백양나무가 우거지고 포도밭이 있는 땅이 아래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너무 뜨겁고 메마른 땅, 사막으로의 여행은 크게 볼 것은 없겠다는 옅은 실망감과 피곤함이 무거운 다리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성 밑으로 내려오니 타원형의 럭비공처럼 생긴 커다란 수박을 쪼개놓은 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성보다는 수박이 훨씬 반갑고 좋았다. 

 이틀째, 여전히 차장 밖으로는 장장 2,500km에 이른다는 천산산맥을 따라 타 림 분지의 흐리고 지루한 풍경이 흘러가고 있었다. 깊은 잠을 잔 것 같은데도 감당 할 수 없는 피로감으로 한없이 눈이 감겨왔다. 고창 고성에 다다르니 나귀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닐곱 명씩 타는 좁은 마차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고창 고성은 5세기경 한나라 사람 국문태가 고창국을 세워 통치하던 곳으로, 현장법사가 서역으로 구법여행을 가던 중 왕의 간청으로 한 달 간 머물며 설법을 전한 것으로도 유명한 성이다. 

 고창고성은 교하교성 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어 보였고 널찍널찍 했다. 은하의 설명에 의하면, 교하고성은 생토를 파내려간 성이라 작업이 수월치 않아 상대적으로 통로 같은 것이 좁았을 것이고, 고창고성은 흙을 쌓아 올리며 축조한 성이라 더 여 유가 있을 듯 하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장방형 탑의 벽면에는 소불을 모셨던 감실에 머리 부분이 훼손 된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현장법사가 설법을 했다는 곳은 장방형실에 돔형 천정을 씌우기 위해 사각을 줄이기 위한 방식으로 스퀸치 아치(squinch arch)라 불리는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는 설명을 하는 민박 사의 안정감 있고 중후한 음성이 아 치에 반향하여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익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가는 동서교역 상인으로서 맹활약을 펼쳤 던 소그드인(Sogdian)은 당대의 폐쇄 적 국경정책에서도 예외가 되어, 이 들을 통해 동서문명의 교류가 활발 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경주 괘릉의 무인석상 역시 소그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아 그들의 활 동무대는 상당히 넓었을 것으로 추 정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문화가 어떻게 주변국들의 문 화와 교섭했는지, 통일신라의 문화가 당뿐만 아니라 당대를 풍미했던 소그 드인의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인 지, 평생을 중앙아시아 연구에 바친 민박사의 연구는 결국 우리문화의 뿌리를 찾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더러는 비바람에 풍화되고 훼손되어 형체조차 분명치 않은 흙무더기 구조물에 지나지 않 아 보이는 폐허의 유적조차도 민박사의 해설을 통하면 위대 한 인류문화유산으로 거듭나 고 있었다.

 강의는 계속되었다. 소그드인 들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입에 다 꿀을 넣어주고, 손에다는 아교를 발라 주었다고 한다. 꿀처럼 달콤한 감언이설로 사 람들을 현혹해 물건을 팔아 국제상인으로 성공하라는 의미가 담겨있고, 아교는 일단 손에 들어 온 재물은 꽉 움켜쥐라는 의미였다니 대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의 자취를 좇아 경주에 꼭 한 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사막에 버려져 폐허로 변한 유적들의 다감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고 서서히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을 다 둘러보고 내려오니 나귀마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대부분의 나귀들이 몸이 말라있고, 채찍으로 때려도 뛰려 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원초과를 하며 운행하는 듯 했다. 매표소 밖으로 나오니 조잡한 방울을 단 열쇠고리 같은 것을 사라고 열 살 아래로 보이는 어린 소녀들이 떼 지어 몰려든다. 사탕을 몇 개 주니 선물이라며 얼른 검지 손톱만한 방울 하나를 내손에 쥐어주며 웃는 아이 얼굴이 해맑아서 괜스레 미안한 맘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