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는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차관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Point Lobos 의 Ice Plant  

   미국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 중의 하나는 어딜 가나 풀꽃들이 살 수 있는 공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바닷가에 많지요. 우리나라는 산림녹화에 너무 성공을 해서, 그리고 농사를 너무 열심히 지어서 (반만년 동안 쌀이 부족했으니까요) 풀꽃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는 실정입니다. 화전민들이 버리고 간 땅이라고 공터로 유지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산림청이 너무 부지런해서인지 풀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은 곰배령이다, 금대봉이다, 노고단이다 해서 이름이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워낙 있는 게 땅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땅이 풍부해서 그런지 풀들에게 곳곳에 충분한 공간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농지와 숲 밖에 없는 이 상황도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연환경 보전의 일환으로 “풀꽃에게 살 공간을 남겨주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합니다. 일부러 숲을 베어낼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농사를 포기한 한계농지 등을 그냥 풀들에게 돌려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는지요?

 제가 살던 Palo Alto에서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서 바닷가로 가면 Carmel by the Sea와 Monterey가 있습니다. Monterey는 Pebble Beach, Spanish Bay, Spy Glassn Hill 등 유명한 골프장이 몰려 있는 유명한 휴양지이고, 그 남쪽에 붙어 있는 Carmel(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갈멜)은 오래된 카톨릭 포교성당(Mission)이 있는 쇼핑 관광지 입니다. 저는 골프를 좋아하지만 이 비싼 골프장 중에는 Spy Glass에서 한 번 밖에 골프를 치지 못했는데 돈이 아까워서만이 아니라 카멜 성당을 너무 좋아했고 포인트 로보스와 그 아래에 있는 Big Sur의 걷는 길과 야생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Monterey에 가시면 골프만 치지 마시고 수족관을 들려 보십시오. 입장료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싸지만 그 값은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수족관을 보러 일부러 갈 필요는 없어도 여기까지 갔다면 빼놓기는 아까운 정도는 됩니다.

 카멜 성당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Junipero Serra 등이 이끄는 선교단이 El Camino Real (왕의 길, 대체로 지금의 US101에 해당함.)을 따라서 북상하면서 지어 놓은 성당 중에 지금 남아 있는 21개가 캘리포니아에서는 제일 오래된 유적 구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San Diego에서 LA, San Francisco, Sonoma Valley까지 펼쳐져 있는 이 21개의 Mission을 다 가보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결국 다 가보았습니다. 카멜의 Mission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골프를 치러 가시든 쇼핑과 식사를 하러 가시든 이 부근에 가면 이 곳에 꼭 들려 보시라고 권합니다. (기회가 있으면 이 21 missions도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Monterey 나 Carmel이나 다 유명 관광지 값을 하느라고 숙박비가 비싼 편입니다. 저는 카멜의 변두리에 있는 Carmel River Inn에서 잤는데 값도 순한 편이고 안 쪽에 있는 독채형 숙박시설 쪽으로 들어가면 정원이 볼만합니다. 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좋은 선택이었지요. 이곳과 Carmel Mission에서 정원의 꽃들을 보고 포인트 로보스에서 야생화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미국은 어딜 가도 비슷하지만 등산로나 걷는 길에 뭘 사먹을 데는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국립공원 정도는 숙박시설이나 매점이 있지만 그 이하는 주립공원(Point Lobos는 state reserve입니다.)은 물론이고 national monument 급만 되어도 마실 물과 간식이나 샌드위치는 각자 알아서 챙겨야 합니다. 저는 샌드위치와 블루베리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산기슭 어디에나 순두부와 닭도리탕이 있는 우리는 사정이 많이 다르지요.

 포인트 로보스는 바로 카멜의 아래에 있는 바다로 돌출한 반도인데 가로 세로가 1~1.5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가장자리를 도는 트레일은 물론 내륙, 바닷가로 가지 친 길을 다 걸어도 하루면 충분한 곳입니다. 언제나 걸어야 할 목표와 꽃 사진을 찍을 시간이 경합을 하는 저로서는 느긋하게 꽃을 찾아 다닐 수 있는 곳이지요. 바닷가를 따라 수많은 곶(point), 작은 만(cove), 모래 사장(beach)가 구슬처럼 꿰어져 있고, 사암과 역암이 뒤섞인 지질이 기묘한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바다사자들과 가마우지 등 바다 새들이 곳곳에서 놀고 자고 있어서 꽃에 관심이 없어도 그냥 걸어 볼만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쪽의 North Shore Trail에서 시작을 해서 Whaler’s Knoll Trail, Cypress Grove Trail, Sea Lion Trail, South Shore Trail과 Bird Island Trail을 거쳐서 Gibson Beach까지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다녔습니다.  

우선 Carmel Inn의 병솔나무와 노랑매발톱을 보십시오. 병솔나무는 꽃이 정말 병을 씻어 내기 위한 솔처럼 생겼습니다. 매발톱은 흰색부터 붉은색, 푸른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이 있고 우리나라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아주 잘 알려진 야생화이면서 정원에서도 많이 키우는 것인데 노랑색의 매발톱은 저는 여기서 처음 보았습니다.

원래 매발톱은 꽃 뒤에 돌출한 부분이 매발톱처럼 꼬부라져 있는데 이놈은 마술사의 모자처럼 곧게 뻗어 있네요. 포인트 로보스의 경치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마는 보여드릴 꽃도 하도 많아서 Sea Lion Cove에서 찍은 바다사자의 사진과 이곳의 지질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암과 역암이 뒤섞인 모습 두 가지만 첨부하였습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꽃은 역시 Bluff Dudleya와 Ice Plant라고 생각됩니다. Dudleya는 사막에 주로 사는 다육식물의 일종으로 Sea Lettuce라고도 부르는데 절벽의 경사면이나 바위 틈, 모래 사장 등 어디나 살고 있습니다. 특히 절벽의 경사면을 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꽃이 피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여서 아쉽네요. 꽃이 피면 꽃대가 올라와서 작은 꽃들이 조롱조롱 달립니다. Ice Plant 역시 다육식물인 데 붉은 잎에 얼음가루를 연상시키는 흰 돌기를 덮어 쓰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무엇보다 Ice Plant라고 하는 이름을 잘 붙인 것 같습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 잘 사는 꽃으로 Lupine을 빼 놓을 수가 없겠지요. 콩과인 Lupine은 일년생의 풀꽃부터 다년생의 관목까지, 그리고 흰색에서 노랑색, 분홍에서 파랑 색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모두 아름답고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어서 어디에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다년생 하나와 일년생 하나를 보여 드립니다. 다년생은 자세히 보시면 일방적으로 노랑 색이 아니라 한 꽃대에 분홍색과 연노랑 색이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오묘한 색깔입니다. 이 사진에는 ”나는 콩과요” 하고 주장하는 콩깍지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역시 콩과로 갈퀴류를 닮은 Gray Loco Weed라는 놈이 있습니다. 잎은 아카시아 잎처럼 깃털모양 복엽인 것이 갈퀴류와 많이 닮았지요. 꽃도 흰색이긴 해도 모양은 많이 닮았습니다. 제일 특징적인 것은 역시 열매입니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어서 착오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진홍색의 선정적인 색깔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Painted Cup입니다. Indian Paintbrush와 비슷하게 생겼고 샌 프란시스코 주변의 산과 들에 흔히 볼 수 있는 놈들입니다. 전모를 한 번 보시지요.

그렇게 자극적이지는 않아도 가장 친숙한 모습은 역시 Seaside Daisy와 Seaside Morning Glory입니다.

국화와 나팔꽃의 모습 그대로 인데 바위틈과 바닷가 모래에서 사는 강인한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갯메꽃의 봉오리 상태의 모습이 더 마음을 끕니다. Windmill Pink Catchfly도 이름 값을 하는 독특한 모습으로 눈에 잘 띕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참, 이 꽃들을 찍은 시기는 5월 6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