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쿠차의 키질가하 천불동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일곱 시가 다 되어서였다. 장장 여덟 시간을 달려서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거 천년 이상 지속 되었던 구자국의 수도였던 쿠차는 서역북도 오아시스 최고의 도시이며,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10여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키질가하 천불동이 있다.

 키질가하 천불동에 도착해 봉화대를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갈래의 석굴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문화를 꽃 피워낸 인간의 예술에 대한 집념에 머리가 숙여진다. 기실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는 오로지 유적을 통해 그 융성함을 짐작해 볼 수 있으나 그 당시에는 삶이 곧 문화요, 종교이며 정치와 사회 모든 것이 그곳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이런 모든 사회제도나 종교를 가능케 했던 데는 자연환경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별다른 과학기술이 없던 그 옛날 인간이 자연의 악조건을 견뎌내기 위해 고안했던 그 많은 것들이 종교로, 관습으로 굳어진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소를 숭상하는 인도의 관습이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권의 관습 또한 시작은 기후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열악한 기후와 환경조건을 딛고 교역을 하고 이동을 하기 위해선 군데군데 머물 곳도 필요했을 것이고, 이곳 역시 그런 필요성에서 생겨난 석굴일 것이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위안하기 위해 종교의 힘도 필요했을 것이다. 키질가하 천불동은 열반미술의 성향이 강한 곳으로, 인도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양식을 형성했으며 장방형 형태의 내부에 기둥을 세운 방주형 석굴이 많다고 한다. 현재까지 60여개의 석굴이 확인되었고 11개의 벽화가 남아있는데, 취사를 하거나 양을 가두기도 해서 검게 그을기도 하고 오물로 더럽혀진 곳도 있다. 32굴은 정방형의 석실을 좁혀가며 모줄임을 한 말각조정 천장의 형태를 취한 것으로 종교적으로는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석굴을 조성할 때 귀족들이 많이 참여하였는데 벽화내부에는 귀족들의 모습도 남아있어 당시 생활상을 조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이 석굴에는 라피스라즈리(청금석,靑金石, lapis-lazuli)를 사용한 벽화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아프카니스탄 등지에서 들어오는 고급 안료의 원료로 몽환적인 푸른색을 나타내는데, 벽화를 그린 그 어떤 안료보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수요 때문인지 안료는 중요한 무역품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라피스라즈리를 이용한 벽화 그림은 키질석굴의 벽화에서 소개할 것이다.)

석굴이 만들어지기 위한 조건을 보면 석산과 그 앞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야 하는데, 서역북도에서만 볼 수 있고 서역남도에서는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에서 석굴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석굴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된다기보다는, 그만큼 서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우리 문화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 석굴의 벽화를 보면 내부에 진흙층을 한 겹 덧발라 벽화를 그린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불교석굴에 이슬람 벽화를 덧칠 한 것으로 후발 종교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벽화파괴의 현장임을 알 수 있다. 석굴 입구 위에 크게 장방형의 구멍이 나있는 것은 대상 석굴로 불상이 있던 자리였고, 전면에 불상을 안치했던 윗부분은 타원형으로 수미산의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곳에 비스듬한 구멍을 뚫어 나뭇가지 등을 꽂아두었다. 석굴의 벽화에는 인물이나 동물 모두 하나같이 눈동자가 훼손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밤에 찾아든 누군가가 이교도가 찬양한 대상의 눈동자에서 무섬을 느꼈던 탓인지 훼손해 버린 탓이라 한다.

석굴안의 회랑에는 돌아가면서 모두 벽화가 그려진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 빼곡 한 불상그림들은 여럿이서 나누어 그린 것이라 한다. 스승이 탱화에 한지를 대고 바늘로 찔러 자국을 낸 다음 벽에 대고 숯가루를 뿌려 윤곽을 그린 다음 중요한 곳만 선을 그어두면, 나머지 제자들이 전공에 따라 분업을 하여 그렸는데 무수한 불상이 같은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은하는 더욱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