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천산협곡을 뒤로 하고 버스는 다시 들어갔던 곳을 되돌아 나와 키질석굴을 행해 달렸다. 남쪽으로 무자르트강이 흐르는 키질석굴은 중국의 4대 석굴의 하나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독자적 화풍이 제일 잘 살아 있는 곳으로, 석굴이 조성된 시기는 3세 기에서 9세기의 일로 키질 석굴에는 독일 탐험대가 음 악동이라 일컬은 38굴이 있 고 조선족 화가 한낙연의 자취가 남아있는 10굴이 있 다. 중앙아시아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키질석굴 의 벽화는 프레스코 기법으 로 그려졌다. 벽화의 시대 편년은 탄소동위연대 측정 방식을 사용하는데, 벽화가 그려진 벽면의 짚을 떼어서 측정하며 정확한 연대측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백양나무 가로수가 시원스레 뻗은 길을 따라 들어가니 구마라즙의 동상이 석굴을 오른 편으로 두고 앉아있다. 구마라습은 일생을 불경 공부와 역경에 바쳐 현장, 법현스님과 함께 중국의 3대 역경승(譯經僧)으로 추앙받는데 그가 번역한 불경이 반야심경, 법화경, 금강경 등 35부 294책에 이른다고 한다. 죽기 직전, 구마라즙은 ‘내가 번역한 불경에 틀린 것이 없다면 나를 화장해도 혀는 타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화장한 뒤에도 과연 혀만은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비가 그쳐 시원함이 느껴지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까지 베제클릭과 키질가하를 보았는데 이곳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현지 연구원들이 설명을 하고 가이드선생이 통역을 하였는데 부족한 부분은 민박사가 보충해 주며 석굴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라피스라즈리가 많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외국 약탈자에 의한 편취와 이슬람인들의 무심한 파괴로 석굴 안은 시커멓게 그을어 벽화의 형체를 알 아 볼 수조차 없거나 양떼 우리나 감옥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그 파괴현장에서도 일부라도 남아 후세에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자료에 의하면 조선족 화가 한락연(韓樂然, 1898~1947)은 약탈당한 키질 석굴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 치유한 예술가였다. 중국의 피카소라고 불린 그의 흔적은 지금도 선방으로 쓰던 10호굴에 일부가 남아있다. 1919년 상하이의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일어났던 3.1 운동의 영향으로 항일운동에 나섰던 그는 지하 활동을 하다 192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졸업 후인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돌아와 항일투쟁에 투신하였다. 프랑스 유학 당시 중앙아시아로부터 약탈한 불교유적들을 보았던 그는 이후 키질 석굴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실크로드 미술에 대한 연구와 키질 석굴 벽화 모사, 발굴 작업 등에 선구적 업적을 보였다. 1947년 벽화 모사를 위해 방문하고 돌아가다 항공기 사고로 아까운 나이에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벽화가 없는 작은 선방인 10호 굴에는 그의 자취가 남아있다. 왜 그가 키질석굴에 매료되었으며, 어떻게 석굴의 벽화를 모사하고 정리했는지와 앞으로의 당부 글이 예서체로 각이 되어 있고, 한낙연의 자화상과 벽화 모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아까운 위대한 예술가의 자취가 아련한 그리움을 낳는다. 한국에서도 2005년에 ‘한낙연특별전’이 열렸다고 한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꼭 보고 싶은 전시다.

 예습을 많이 하기도 하고 가장 궁금했던 38호 굴은 유료 관람굴로 1인당 200위안(한화 4만원 정도)을 내야 관람이 가능한 굴이다. 과연 민박사의 설명대로 굴의 천장에는 라피스라즈리를 많이 사용해서 시원한 푸른 색채가 들이비치는 햇살을 받아 몽환지경을 느끼게 했다. 천장벽화만으로도 저러한데 벽화와 불상으로 최상의 치장을 했던 옛날 옛적의 석굴 안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바깥세상 보다 한결 시원한 석굴 안은 몸도 마음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극락이요, 서방정토였을 것이다.

 천년이 넘도록 저런 빛을 지닌 벽화는 만들어질 당시에는 얼마나 더 찬란한 빛이었을까. 모사본으로라도 한 번 완벽한 석굴의 재현은 불가능한 것일까, 여행객인 일반인들도 이렇게 아쉽고 아까운데 평생 벽화나 불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쉬움이 짙을까. 역사에서 가정이란 불필요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만이라도 온전히 남아있는 석굴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38호굴은 지금까지 본 석굴 중에서 가장 온전한 형태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데 마름모꼴의 테두리 안에 자타카(본생담, 本生談)를 그려 넣은 그림들은 석가모니가 성불하기 전에 여러 가지 동물들로 현신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을 그린 것들이다. 굶주림에 지쳐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보고 온몸을 보시하여 새끼를 구한 이야기(사신사호도), 사냥꾼에 쫓기는 원숭이를 살리기 위해 다리 역할을 하는 이야기(원왕본생도)등을 그렸는데 마름모꼴 안에 그림을 그려 넣은 이유는 클라이막스를 묘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8호굴에서 머문 시간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키질석굴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었지만 현지 연구원이 찍어 준 은하의 사진을 보면 아련한 꿈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꿈을 꾼 듯 찰나적인 그 순간 뇌리에 박혔던 강렬함을 뒤로 하고 내려와 38호 굴의 사진을 볼 수 있는 작은 책자를 한 권 사고 악수를 향해 떠났다. (벽화의 내용이나 형식 등은 은하의 메모가 있지만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

 석굴은 촬영금지구역이므로, 아래 사진은 책자의 사진을 다시 찍어서 옮긴 것이다. 아래 사진설명은 중국어로 써 있어서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못 할 것도 없다 싶었지만 그림하나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제목만 간신히 번역하는데도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 벽화도 마찬가지로 진흙세례를 받아 오염된 것을 볼 수 있다. 엔터키 하나만 치면 만물박사가 튀어 나오는 똑똑한 포털사이트에서도 알 수가 없었는데 혹시 이 그림을 보다 아는 것이 있으면 서로 교류했으면 좋을 듯하다. 검은 부분은 원래 분홍빛 안료였으나 산화가 진행되어 검게 변한 것이라고 한다. (분홍과 파란 색의 대비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해 보시길…. )

  (* photo by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