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버스는 카슈가리묘를 향해 달리고 지대가 낮아지면서 다시 햇살이 나기 시작했다. 작은 오아시스 마을을 지나는데 길가에 먹음직한 주황색 슁즈(살구의 일종)를 파는 행상이 보였다. 슁즈를 사 먹자는 임군수의 제안이 결국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버스가 길가에 멈춰 섰는데 슁즈 파는 행상은 보이지 않고 좀 덜 익은 슁즈 나무가 있는 자그마한 과수원이 눈에 띄었다. 젊은 주인 아주머니와 대충 협상을 하고 과수원으로 들어가 체험(?)을 시작하였다. 슁즈는 딱 살구와 똑같은 색과 모양, 맛을 지녔는데 우리나라 것과 비교해 껍질에 솜털이 없는 것이 달랐다. 일행 중 몇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슁즈를 따서 봉투에 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나오더니 노발대발하였다. 떠나오면서 오른 손을 배 언저리에 대고 공손하게 위구르식 인사를 하자 노인은 이가 빠져 움푹 팬 볼을 오물거리며 함빡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60위안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어드렸다고 한다.

  오후 여덟시 무렵에 들어선 도심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나귀와 자전거와 사람들이 뒤엉킨 거리는 혼란스럽기보다 경쾌하고 길가의 행상들에게서도 생활의 찌든 때보다 유쾌함이 보이는 것은 여행자의 눈으로 본 과장된 낭만주의 성향일까. 생고기를 수레에 걸어놓고 팔고, 찌든 때가 덕지덕지 붙은 화덕에서 난을 굽고, 양고기를 구워 파는 사람들. 스카프를 쓴 여성들의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씩이 들려졌다. 가방이 없는 걸 보면 멀리 나온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삶이란 이름으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 어쩐지 나는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초월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멀어져 남의 일상을 관념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여행자의 특권 임에 틀림없다. 인천공항에만 내리면 다시 동동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이런 여유로움을 즐기니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중요한 이동수단인 나귀가 이젠 웬만한 시골이 아니면 점점 사라져 간다니 아쉽기만 하다. 더 이상 변하지 말고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 구시가지, 빙천, 사막의 유적들, 모두 다 더 이상 변하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게는 같잖은 이야기겠으나, 더 이상 화려해지는 오아시스는 정말 여행자들에게는 아쉬운 이야기 아닌가.

  저명한 위구르 언어학자인 마흐무드 카슈가리의 묘는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은하는 들어가는 길에 피어있던 분홍색 무궁화꽃에 감탄을 하더니 기어코 그 옆에 김수종 선생을 모셔놓고 사진을 찍고 나서 흐뭇해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서 태어난 대한의 딸답다. 묘지 담장 밖에 있는 공동묘지가 저물어 가는 태양 빛을 받아 애잔하게 다가온다. 여기는 벽돌로 쌓은 장방형의 받침에 하단을 둥그렇게 굴린 마름모꼴의 봉분모양을 얹어 작은 집 같은 느낌을 주는 묘가 언덕을 따라 비스듬히 자리하고 있었다. 묘 크기가 다 각각인 것은 아마 안치한 시신의 키대로 만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혼자 짐작을 해본다. 아주 작은 것은 애장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무덤이 눈에 많이 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는 걸까?

 눈길이라도 강렬하게 주면 쩡~ 하고 소리가 날 듯 맑은 하늘에 걸린 구름과 키 큰 사시나무와 묘지만 바라보느라, 정작 카슈가리 묘는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와야 했다. 왜 그렇게 오나가나 묘지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혼잣말을 하니 일행 중 한 분이 힘도 안들이고 되받는다. “인구가 많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정말 그렇겠구나. ’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쉰셋에 감행한 생애 첫 실크로드의 여정도 넘어가는 태양처럼 저물어간다. 묘지 너머 펼쳐지는 땅이 일망무제하여 상념이 눈길을 따라 잡느라 바쁘다. 저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 표지판을 보니 소부계(疎附界)라는 지명이 보였다. 길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이르기까지 나머지 실크로드를 따라 다시 다른 여행을 계획 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나 꿈을 꾸어 봄직은 하다. 다음날 마지막으로 신장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이드가르모스크와 향비묘, 대 바자르 방문 일정이 남아있긴 했지만, 묘지를 따라 내려오며 그 어느 때 보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던 여행을 마음속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