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아나돌루문명 박물관에서 카파도키아까지) 

 돌아 온 다음 날 아침, 늦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날이 흐렸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손길을 필요로 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무엇부터 해야 하나 머릿속에 그려보는데 바람이 세차게 일어났다. 떠나간 주인을 기다린 듯, 떠날 때 그리도 화사했던 노란빛이 바래버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꽃잎이 떨어지고 터질 듯 말듯 한껏 부풀어 오른 금낭화 꽃술이 움츠려들고 있었다. 뽀얗게 연둣빛 새싹을 피워 올리느라 수런거리는 숲에서 나온 바람이 소나무 그늘아래 진달래를 흔들고 지나가는 사이 후드득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아! 그 곳, 그 먼 곳의 환영이 비바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빗속에 두고 떠나왔던 에페소의 잔영이 아스라하게 떠올랐다. 고작 하루가 지나 짐 정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주 오랜 일인 듯 여행은 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린 듯 했다. 어떻게 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숨 막히는 일거리를 밀어두고 훌쩍 날아갔다 돌아온 그 여정은 아득해지고 있었다. 왠지 조바심이 일어났다. 나는 다시 글자의 힘을 빌려 깊은 곳에 가라앉아버린 것을 차근차근 꺼내어 보기로 했다.

 중요일간지에 시론이나 칼럼을 쓰고 내로라하는 방송의 작가였거나, 글을 써서 문단에 등단을 하고 수상을 했던 우리 일행의 면면을 보고 여행기를 써서 나누어 보겠다고 작정했던 애초의 결심을 여행 중에 접었었다. 그러나 ‘민주정치를 움직이는 사람이 반드시 민주주의자일 필요는 없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을 들먹이면서까지 여행기를 쓰기로 한 것은 결국 이것은 자신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본 것을 표현하는 데는 자신의 내밀한 의식의 작용을 거쳐야 하므로, 결국 본 것은 같아도 느낀 것은 다 다를 터였다.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생존한다)이라는 우스개도 적잖이 위로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