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데린구유에서 파묵칼레까지)  

  봄의 여남은 날을 목장을 비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저녁 무렵 도착한 목장은 매우 낯이 설었다. 떠날 때 흔적도 없던 잡초는 키가 한 뼘은 자라서 어수선해져있고, 푸른 싹 붉은 꽃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어 맘이 급했다. 내려가는 길에 목장에 잠시 들른 언니는 바로 잔디밭에 앉아 풀을 한 짐이나 매주고 갔다. 민들레와 냉이는 씨앗을 맺어 퍼져나가기 전에 다 매주어야 하는데 참 대책이 없었다. 돌아 온지 사흘째, 일단 양재동 꽃시장에 나가 트렁크에 한가득 일년초를 사가지고 돌아와서 하루 종일 꽃을 심었다. 우선 빈 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여기저기 작은 계획을 세워가며 혼자서 꽃을 심어가는 일은 보람에 앞서 허리가 휘는 노릇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갈 때까지 꽃을 심고 부추를 잘라다 무쳐 저녁을 먹었다. 봄에 첫물로 나오는 부추는 보약이라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부추는 어찌나 들큼하고 맛이 좋은지,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볕에 데어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지며 다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 어둠속에서 지켜냈던 신앙의 증거, 데린구유  

 넷째 날, 아침에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데린구유(깊은 우물)다. 전성기에 달했을 때는 3만 명 쯤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 지하도시는 직경이 6km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들어갔다가 길을 잃으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 같이 컴컴하고 꼬불꼬불한 길이 한도 없이 이어지는데, 실제로 1975년 독일 여성 둘이 굴에 들어갔다 나오지 못한 이후로 여기저기 막아 놓았다고 한다. 지하도시 안에 유물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다만 예배를 드렸던 십자가형의 교회가 있다. 비밀유지를 위해 죄를 지은 자를 추방하지 못하고 묶어 놓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쇠고리와 안에서만 문을 닫을 수 있는 육중한 맷돌모양의 문이 여기저기 있어, 은신처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곳은 기독교의 박해시기에 여러 번에 걸쳐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괴뢰메에는 그렇게 많은 성화가 데린구유에 없는 것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신앙인들의 집단이었으므로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성화가 별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오렌지색 등불을 밝혀놓은 굴 안은 눅눅하고 답답해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빛 한줄기가 들어오지 않았을 굴 속, 그 깊은 지하 굴의 통풍을 위해 길게 뚫어 놓은 통풍구를 보며,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던 강추위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목숨 건 신앙심은 정말 위대한 것 아닌가.  

 박해시대에 이렇듯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심을 바치며 헌신하던 사람들이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 된 후에 심한 분열양상을 보였다 하니,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고난과 박해는 절대적인 신의 존재에 대한 순명과 헌신을 바치게 만드는 촉매임을 깨달았다. 밖으로 나와 흐린 하늘을 이고 앉아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소였던 카라반사라이인 술탄하느로 향했다.  

 실크로드를 이동했던 상인들의 하루 이동거리인 30-40km 정도의 거리마다 지어졌던 카라반사라이중에서 술탄하느는 가장 최대의 건물로 알려져 있는데 셀주크투르크의 지배기간인 13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술탄하느는 세월따라 비어 버려 터번을 쓴 대상도 낙타도 없이 듬성듬성 관광객들만 오갈 뿐이었다. 우리는 사진 몇 장을 찍고 버스에 올라 콘야를 향해 남서쪽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