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 붉은 꽃ㆍ하얀 꽃의 천국, 파묵칼레에 핀 웃음 꽃  

  ‘성스러운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히에라 폴리스는 기원전 190년경에 세워진 도시다. 넓은 성터 안에 온갖 풍상으로 얼룩진 석벽과 어우러진 새빨간 개양귀비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그대로 여기가 천국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에 옆에 지천으로 핀 자잘한 노란 야생화가 빨간 빛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완전한 모습의 구조물로는 도저히 전달될 것 같지 않은 그 폐허와 꽃의 절정이 이루는 절묘한 조화앞에서 아름다움의 극치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슬픔과 환희를 동시에 느꼈다. 개양귀비는 이곳에서는 파파루네스라고 부르는데 꽃 한 가운데 까만 십자가가 그려져 있어 부활절의 꽃이라고도 한다. 붉은 색은 피, 즉 생명을, 검은 십자가는 죽음과 고통(특히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상징한다고 하며 부활절 즈음인 3-4월에 걸쳐 핀다.

 ‘목화의 성’이란 뜻을 지닌 파묵칼레는 수천 년 동안 석회성분이 들어 있는 온천수가 경사면으로 흘러 내려 석회석 결정체가 흰 병풍을 둘러친 모양으로 형성되어 그 경관이 일품인 곳이다. 오로지 자연만이 세월을 벗 삼아 이룰 수 있는 장관이었다. 석회석 병풍아래 따뜻한 온천수가 신비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맨발로 노천온천 안을 돌아다니며 맘껏 웃고 사진을 찍었다. 따뜻한 온천수는 며칠 동안의 피로를 다 녹여내는 듯하였다. 옅은 물안개 속에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이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이렇게 맘껏 웃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웃음이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사람들의 웃음이 정녕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게 아닌가.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순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곡절을 넘어서 가더라도 정말 황홀한 일이 아닌가, 절경 앞에서 마주한 절정의 행복! 시각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온 정보가 삶에 지치고 다친 내 마음 깊은 곳의 순수한 어린아이를 깨우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으면서도 결코 나눌 수 없던 자기만의 질곡, 그 무게에 짓눌려 찌들어 버린 남루한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여행은 이래서 정말 고귀한 것이다.

- 세 번째 이야기(에페소스에서 이스탄불까지)  

  오월이 되었다. 오월은 잊혀져있던 생명의 기운들이 남김없이 땅위로 올라오는 모든 만물위에 고른 빛을 나누어 주며 한없는 사랑으로 여왕의 자애로움을 느끼게 한다. 순결하고 밝은 연초록나뭇잎에 이슬처럼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비가 오니 밭일은 하루를 쉬어야한다. 다시 에페소의 아쉬움이 진하게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느긋한 맘으로 음악을 듣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에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오늘 하루는 정말 제대로 한 번 쉬어 보리라 맘을 먹는다.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꿈처럼 지나가 버린 그 날들, 그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