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GS&J 회원회 회장이신 윤여임 대표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아들과 승리의 여신 ‘니케’   

  ‘세계적인 기업 나이키가 처음 세상에 나올 때 그 이름을 원래 승리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니케로 하려고 하였으나,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없다하여 의미는 그대로 하되 ’Nike‘의 영어식 발음인 ‘나이키’로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나이키는 니케여신의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로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들 녀석은 운동을 매우 좋아하는 동시에 나이키브랜드를 매우 좋아한다. 축구 할 때와 농구 할 때 입는 옷과 신는 신발이 다르고, 학교에서도 처음 만난 동료나 선후배와는 운동을 통해서 트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스에서 마지막 날 한 20분 정도 쇼핑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목이 없으면서도 선이 곱고 아름다운 니케 여신상을 샀다.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게다가 은연중에 승리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재질이 마블이라 깨질까봐 부치는 짐에 넣지 않고 손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다. 그런데 공항에서 예기치 않게 가방이 탁자에서 떨어지며 아들에게 ‘승리’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을 전하고자 했던 여신상은 4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사온 것을 알리지 않고 그냥 버려야 하나? 그리스가이드 선생에게 부탁해서 새것을 사야하나? 마음이 여러 갈래였으나 있는 그대로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다. “아! 엄마, 저한테는 참 특별한 의미인데….” 전화를 타고 탄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주세요.” ‘그래, 승리란 어차피 그런 게 아닐까, 상처 없는 영광이 어디 있고 고난 없는 승리가 어디 있을까?’ 처음 동강이 난 여신상을 봤을 때 낙담했던 맘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게다가 남편은 어느 날 여신상을 강력접착제로 붙여놓아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들도 제 어미의 속맘을 아는 듯 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게 아닌가?

영원한 터키의 연인, 유재원 교수

 유교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 본 사람들이라면 이 양반의 낭만주의적인 열정과 문학, 철학, 역사를 넘나드는 어마어마한 지식의 넓이와 깊이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 중간에 슬쩍슬쩍 끼워 넣는 시대의 화두는 그의 관심이 현실세계와도 깊이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풍류를 알고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 유교수의 매력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의 역작 [터키, 1만년의 시간 여행]을 읽어 본 사람들은 책의 말미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1976년 에페소스로 가는 길에 식당에서 찍었던 사진 한 장은 오늘 날 유교수의 면면을 보여주는 예언과도 같다. ‘글, 길, 술’의 낭만주의 철학을 가지고 30여년 간 그리스, 터키를 누비며 오늘날과 같은 대가가 될 운명을 예언하는 것 같은…. 같은 교수로서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홀딱 반했다는 우리 일행 정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밖에 없다.

 유교수의 진가는 낮에 이루어지는 답사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면을 더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밤의 세미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열정과 감동, 때로는 대중적인 이미지로 한 없이 친근하게 다가왔다가, 때로는 학문에 매료된 모습으로 다가왔던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학자적 면모와 낭만주의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늙어가는 것이 아까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분 중의 한 분인 유교수를 알게 된 것이 행복하다.

행복한 에게 해의 나그네

 근 1년을 기다림과 조바심 속에서 기다려왔던 여행은 추억이 되었고 일상의 흐름은 다시 고속 질주를 시작하였다. 주경야독의 나날이 흘러간다. 날마다 노란 꽃을 피워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줄기차게 올라오는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동시에 많은 일을 하느라 시간에 쫓기는 내게 이중고를 안겨준다. 여행지에서 보았던 노란 민들레 밭은 얼마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던가.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민들레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나, 내 정원과 텃밭의 민들레는 고달픈 일거리에 불과하니 소유란 얼마나 많은 책임과 의무를 안기는지 모른다. 그러나 땀 흘려 일한 보람이 그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밭일이다. 해가 길어지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데다 생명의 잔칫상을 벌이는 5월의 싱그러움은 그 고달픔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마음속에 또 하나의 보석을 더했다. 여행은 보석을 품는 일! 에게 해의 진주!

 일상이 힘겹고 고달플 때, 기껏해야 백년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짚어보며 나는 히타이트제국의 그 황량한 폐허를 떠올릴 것이다. 히에라폴리스의 가슴이 메어지던 붉은 양귀비, 그 바닷가의 크루즈, 디오니소스에서 바라 본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 무엇보다 함께 했던 분들의 정 깊은 웃음을 떠 올릴 것이다. 언니, 조카 은성이와 처음 함께 떠난 해외여행으로 우리는 늙어가며 공유할 추억이 훨씬 많아졌음을 감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각자의 위대함과 고귀함을 접어둔 채, 1만년의 시간여행에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마음씨로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고마운 분들. 일일이 다 부르고 또 불러야 할 소중하기만 한 사람들, 여행이 거듭될수록 우리의 사랑은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김영태 토리식품 대표님, 권혁세 대표님 사진 감사합니다.* 김영태 사진, **권혁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