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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5.06.18
제목
아내와 함께한 8박 10일의 발칸여행(7), 자다르에서 드브르브릭까지 
첨부파일
 

 이 여행기는 GS&J 허윤진 연구위원님이 쓰신 글입니다.

 

 

 

발칸여행(7), 자다르-토르기르-스플릿- 드브르브릭

 

 

 

  

 오늘은 자다르에서 출발하여 토르기르 스플릿을 거쳐 드브르브닉에서 숙박을 하는 일정이다. 드브르브닉은 ‘꽃보다 누나’로 잘 알려진 드브르브닉 성이 있는 곳이고, 토르기르 스플릿 모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선다.

 

 이 지역은 과거 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지역이고, 로마가 동·서로마로 분리될 때도 서로마에 속했던 곳이다. 서로마 이후 천년왕국 베네치아가 번성했던 시기에는 베네치아의 영향권 내에 오랫동안 있었을 게다. 그래서 종교도 이웃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와는 다르게 로만 카톨릭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고.  베네치아가 아드리아해 나아가 지중해의 제해권을 쥐고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테니까, 토르기르 스플릿 두 도시 모두 분위기가 이탈리아와 아주  비숫하다. 시가지 모양 건축물과 도시의 중심에는 광장이 있고, 큰 성당이 있고, 대리석으로 축조된 건축물. 피자와 젤라또를 판매하는 거리의 가게들.  이탈리아에 비교하여 이 도시를 보는 것은 결국 이 도시를 잘 모르기 때문일 테지만, 우리와 함께하는 여행 가이드도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짧은 시간에 어찌 이 도시가 겪어온 세월의 역사를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관광객의 관심사가 모두 서로 다를진데. 토르기르 스플릿 두 도시 모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정말 예쁘다.

 

 나의 눈을 끄는 광경 한가지, 건물의 지붕 경사면에 꺽쇠 모양의 징이 박혀져 있는데 무언가 했더니, 겨울에 눈이 와서 눈이 얼었다 녹을 때 어름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행인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는데, 언 눈이 일시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을 붙들어 두는 장치를 설치하다니 정말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얼마 전 신축된 서울시청의 지붕위에서 언 눈이 쏟아져 내려 행인이 다칠 뻔 했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었는데, 서울시청의 경우 어떻게 해결했는지. 쓸 데 없는 걱정을 해본다.

 

 토르기르 스플릿을 거쳐 드브르브릭으로 가는 길은 아드리아해를 오른편으로 끼고 달리는 해안가 길이다. 오른편으로 눈부신 아드리아해의 풍광이 펼쳐진다. 눈 앞에 바다는 호수처럼 펼쳐져 있고 빛나는 햇빛 아래 속이 훤히 비치는 아드리아해와 붉은 지붕의 그림같은 해안가 집들, 그리고 유유히 떠다니는 백색의 요트들, 멀리 보이는 섬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도로변 농경지는 온통 바윗돌 투성이고, 큰 나무들이 별로 보이지 않고, 올리브가 주 작물인 것으로 보아, 토지는 척박하고 다소 건조한 지역인 듯 하지만  버스에 탄 사람 모두 아드리아해의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문득  말을 건넨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왜 그렇게 치열하게 전쟁을 했는지라고.  글쎄,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곳이니까 이 곳을 차지하려고 더욱 전쟁을 했을까. 잠시 후 이 지역의 복잡성을 알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플릿과 드브르브닉은 모두 크로아티아에 속해있는데 스플릿에서 드브르브닉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보스니아를 거치도록 되에 있었다. 즉 드브르브닉은 크로아티아임에도 불구하고 육로로는 보스니아를 거치지 않고는 스플릿에서 드브르브닉을 갈 수 없게 크로아티아 영토가 보스니아에 의해 중간에 양분하고 있는데, 아마 보스니아로서는 이 지역이 유일하게 바다로 나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확보하고 싶었을 게다.

 

 

차창에서본 아드리아해

 

  또 우리 일행의 관심은 이 지역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여기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지’ 라고 이야기한다. 풍광이 멋진 것은 좋은데 농토도 별로 없고 어선도 별로 보이지 않아 어업이 주업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관광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일행 중 한사람이 ‘사람은 자유만 있으면 먹고 살아’ 라고 한다. ‘뭔 이야기’ 하고 모두들 약간 뜨악하고 있던 사이  그 분의 이야기는 북한과 남한의 생활수준이 현재와 같이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느냐 주지 않았느냐의 차이인데, 자유가 인간을 먹고 살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위원장도 역임한 적이 있는 분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자유라는 것이 방종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 풍요로운 정신 세계는 가능케 할 것이지만, 약육강식을 초래하여 대다수를 먹고살기 힘들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온 나로서는, 자유가 사람을 먹고 살게 만드는 근본적 요소라는 것은 신선한 이야기였다. 그렇지, 자유의 대척 개념인 평등이 먹을  밥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 아, 자유가 밥을 만드는 근본일 수 있겠구나. 그럼 자유가 밥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평등, 약육강식, 인간성 파괴는 누가 어떻게 해결하지. 개개인의 양심이, 사회적 균형감이, 국가가 해결할 수 밖에 없을 텐데.

그러면 이런 표현은 어떨까 ‘자유는 밥을 만들고 평등은 밥을 먹여준다’.

 

  다른 계절에 오더라도 아드리아해가 오늘과 같이 아름다울지는 모르겠지만, 햇빛과 바다, 바다와 어우러진 멀리보이는 섬들, 온화한 기후까지 와벽한 조화이다. 고려시대 어느 시인(인터넷에 찿아 보니 ‘김황원’이네요)이  평양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할 싯귀를 찾지 못해 ‘멀리 점 점 산’하다가 시짓기를 그만 시짓기를 중단하고 울고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이겠지. 우리나라의 남해안 다도해도 여기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다도해가 규모면에서 대중적인 관광자원으로서는 부족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도로나 관람 포인트를 더 개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차창에서 바라본 마르코 폴로의 고향. 멀리 산중턱 성이 보인다

 

 가이드가 멀리 조그만 반도 끝에 보이는 마을을 가르키면서 마르코폴로의 고향이라고 이야기한다. 베네치아의 르네상스시대, 청나라를 방문하고 쓴 ‘동방견문록’,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동방에 대한 환상을 일으키고 더욱 적극적인 동방항로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는데, 본래 베네치아 사람이 아니고 당시 베네치아의 영향권 내에 있었던 이곳 크로아티아 사람이었구나. 당시 지중해의 맹주 베네치아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육지에서 마을로 접근하는 곳에 성을 쌓아 놓았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성이 왜 있는지 모르겠단다.  육지에서 마을로 접근하는 곳에 성으로 차단되어 있는 이유는, 육지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금방 이해할 수 있는데 왜 모르겠다는 것인지. 아마 오스트리아에서 살고 있는 교민이라 그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네치아를 포함하여 제노바 피사 아말피 등 과거 이탈리아의 해양국가들은 해상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관계로 해군력은 강했지만 육군이 약해 육지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그래서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절벽을 이용하거나 성을 쌓아 외적을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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