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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5.10
제목
「임진왜란과 조ㆍ명ㆍ일의 군량미 조달체계」의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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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조ㆍ명ㆍ일의 군량미 조달체계」의 연재를 시작하며   

   

 

 

   오호성 교수(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최근「임진왜란과 조ㆍ명ㆍ일의 군수시스템」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참전 3국의 군량미 조달과 수송이라는 측면에서 연구한 책이다. 오 교수는 GS&J의 요청에 따라 이 책 가운데 일부분을 선별하여 재 구성한 다음 쉬운 말로 풀어서 약 10회에 걸쳐 연재 할 것이다.

 

  임진왜란은 16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국제전이었다. 참전국은 조선ㆍ일본ㆍ명나라의 3국이었지만 식량과 무기를 대준 나라까지 포함하면 유구ㆍ포르투갈ㆍ스페인ㆍ동남아 여러 나라가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지금까지 임진왜란에 대한 연구는 논문과 저서가 1천 편이 넘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연구의 대부분은 왜란의 전개 과정에서 본 정치적ㆍ군사적 문제점과 배경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국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인물에 대한 영웅담도 많다. 승리한 전투는 지휘관의 뛰어난 용병술과 투철한 애국심과 정신력이 승리의 원인이었다는 것이 전사(戰史)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장기화 되면 용병술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전쟁을 지배하는 힘은 군수의 조달 능력에서 나온다.

 

  동양 최고의 군사(軍師)로 받드는 제갈공명(諸葛孔明)도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건곤일척의 전쟁에서 군량을 조달할 수 없어 기산(祁山)에서 사마중달(司馬仲達)에게 패하였다.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계속 밀렸으나 소하(蕭何)가 군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뒷받침하여 주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예부터 장기전에서는 군량 조달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은 병가의 상식이었다.

 

  임란 당시 조선과 명ㆍ일본은 각기 경제발전 정도가 다르고 군사 및 정치제도가 달랐다. 임란 당시 세계적 기축통화는 은(銀)이었다. 명은 막대한 전비(戰費)의 조달과 지출을 은으로 하였다. 필요한 은은 포르투갈과 스페인과의 무역을 통하여 조달하였다. 일본도 세계적인 은 생산국이었다. 일본도 조총에 필요한 화약과 탄환의 원료를 포르투갈과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하였다. 은은 군량미와 함께 중요한 전쟁물자였다.

 

  명은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여 은본위(銀本位) 경제에 진입하였고 모든 병사는 은으로 월급을 받았다. 군량미는 시장에서 사들였다. 일본도 전국시대를 거치며 병농(兵農)이 분리(分離)된 상비군체제를 갖추었다. 군수는 각 지휘관(大名) 별로 자변(自辨)하였다. 조선은 후진적인 자급자족적 경제와 병농일치(兵農一致)의 군사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ㆍ명ㆍ일군의 군량미와 무기ㆍ탄약 등 군수물자의 조달ㆍ수송ㆍ분배 시스템에 대한 비교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 연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ㆍ명ㆍ일본이 처해 있던 정치ㆍ경제적 상황과 군사제도를 비교하여 각국의 군수조달 시스템과 능력을 평가하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3국이 군량미를 중심으로 병기와 탄약 등 군수물자를 각각 어떻게 조달하고 수송ㆍ분배 하였는지를 알아보고 이것이 전쟁의 승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평가하는데 연재의 중점을 둘 것이다. 이 연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吳浩成,『壬辰倭亂과 朝ㆍ明ㆍ日의 軍需시스템』, 경인문화사, 2017.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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