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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9.05.15
제목
문틈으로 본 조선 이야기(4), 현산의 8가지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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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틈으로 본 조선 이야기(4) 
 

현산의 8가지 폐단

 

   

 

하상(夏祥) 이두순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현산(峴山)은 강원도 양양의 옛 이름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은 현산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폐단에 대해 ‘현산의 8가지 폐단을 병풍에 써 놓고 민풍을 관찰하는 이에게 보이다’(峴山八弊. 書諸屛以示觀民風者)라는 긴 제목의 시를 읊고 있다. 8수의 시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다.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희암(希菴)이고 대사간, 병조참판, 도승지,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렸고, 특히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해남의 두륜산(頭輪山) 대화사(大花寺) 중창비(重創碑)와 대흥사(大興寺) 사적비(事蹟碑)의 비문을 찬하고 썼다. 저서로 문집인 희암집이 있고, 「소대풍요(昭代風謠)」를 편집하였다.

 

그 첫 수는 산삼 공납에 관한 것이다.

 

 <산삼 공납>

이름난 산에는 맑은 기운 상서롭게 모이고,

무수한 붉은 벼랑에 산삼이 흩어져 있다.

매년 불태워 새밭을 만들어 약초가 적어졌지만,

백성들 편의에 따라 세금 대신 받아주기도 한다네.

名山淑氣欝扶輿, 無數丹厓五葉敷. 每歲燒畬靈草少, 便隨民戶折官租. 右貢參

 

  우선 산에 들어가 캔 산삼을 공물로 바치는 심마니의 상황이다. 시에는 심마니의 삶이 평이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시인이 산삼 공납이 폐단 중의 하나라고 하였으니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 삼을 캐는 사람들은 탐관오리의 표적이 되었다. 정약용의「목민심서」에 그 실상이 잘 기록되어 있다.

  “산삼을 캐려는 자는 모두 관의 허락서[官帖]를 받고 입산한다. 그들이 산속에 들어가 한 해 가을과 겨울을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넘기면서 위험한 모든 산짐승과 함께 지내다가 구사일생으로 모든 고초를 겪고 산에서 나오게 되는데, 산에서 나오는 날이면 관에서 그 주머니와 전대를 뒤지고, 그 품안과 옷소매를 수색하여 한 조각의 산삼도 용서 없이 모두 헐값으로 강탈하여 관에 들여가는데, 나라에 바친다고 핑계하지만 실은 사복을 채우는 것이다. 간사하고 교활한 벼슬아치가 아래에서 조종하여 뇌물을 주고 서로 빠질 구멍을 뚫으니 국법은 시행되지 않고 관리의 사악(邪惡)만이 조장된다. 마침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깊은 산에서 산삼을 캐는 것은 고달프다. 게다가 화전을 하려고 산을 개간하다 보니 삼도 드물어졌다. 그래도 삼을 캐면 쌀이나 베로 바쳐야 할 세금을 삼으로 계산해서 바칠 수는 있다. 고을벼슬아치들에게도 세금을 산삼으로 받는 것이 팔아서 실제 세금과의 차액을 착복할 여지가 많아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물고기 잡이>

식량을 싸들고 험한 길 다니며 가래를 캐어 오니,

폭우로 물결일어 푸른 물굽이 넘실대네.

비 개고 날씨 들어 관가의 명령 내려오길 다시 기다리거나,

아니면 호미 쟁기 집어던지고 서쪽 산속으로 들어가던지.

贏糧歷險採楸還, 暴雨新波漲綠灣. 更待晴暄官帖下, 又抛鋤耒入西山. 右楸打

 

 약으로 잡는 물고기잡이[楸打]를 읊은 것이다. 먹을 것을 싸들고 산에 가서 가래를 캐어 왔다고 하지만, 가래를 캐어 온 이유가 불분명하다. ‘타(打)’는 주로 고기잡이 혹은 천렵을 했다는 데 쓰는 표현이다. 시인의 다른 시 ‘원일천에서 진상 은어잡이를 구경하다[元一川觀進供銀魚楸打]’에서도 ‘추타’란 표현이 나온다. 시인의 또 다른 시 ‘비가 쏟아지고 내가 넘쳐서 고기잡이를 했지만 잡지 못했다[積雨川漲, 楸打不得魚.]’에도 ‘추를 빻은 진액이 효과가 있다[楸液搗何功]’란 표현이 있다.

  시에서 말하는 ‘추타’란 일반 고기잡이가 아니라 독약을 풀어 물고기를 잡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옛글에 망초즙, 초피, 말여뀌, 황병목, 모과, 파두 등을 독약삼아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어구변증설,「오주연문장전산고」). 그러나 추(楸: 가래, 호두, 개오동나무)를 물고기 잡는 독약으로 쓴 것은 시인의 자료 3건 뿐이다. 다른 식물성 독약을 ‘추’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에서도 관가에서 시키는 진상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독약을 구해 왔지만 비가 많이 와 강물이 불어서 ‘추타’가 어려워졌고, 관가에서 다시 날짜를 잡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홧김에 ‘다 집어치우고 산속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푸념을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진상 물고기가 나는 곳에 사는 백성이 겪는 괴로움 중 한가지이다.

 

<송어와 연어의 진상>

남북으로 다녀보아도 고기 때가 맞지 않는데,

고기를 잡기로 한 모임은 정한 때가 있다네.

어디에서 어부는 살진 물고기를 구해야 하나,

푼돈[五千鵝眼]을 주고 긁어모으려 하니 걱정이라네.

來南來北不齊時, 都會惟操一定期. 何處漁郞先得雋, 五千鵝眼斂揮罹. 右進上松連魚

 

  송어와 연어와 같은 진상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백성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현산에는 회귀성 물고기인 송어와 연어가 돌아오는 하천이 있다. 송어와 연어는 진상하는 물고기로 어부들이 해마다 잡아다 바치는 양과 시기가 정해져 있다. 

  송어를 진상물로 바쳐야 할 시기는 왔는데 연어와 송어가 아직 바다에서 강으로 오르지 않아 잡을 수 없다. 진상 기한은 촉박하고 고기를 잡지 못하는 어부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진상품은 현물로 바쳐야 하기 때문에 어부가 진상할 송어, 연어를 잡지 못하면 사서라도 바쳐야 했다.

  일반 진상품에 대해서 나라에서 대금을 지불하지는 않는데 이 시에서는 진상물로 바치는 송어에 대해 관에서 돈을 지불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의 ‘5천아안(五千鵝眼)’이란 표현이 묘하다. 아안전(鵝眼錢)은 중국 남조 송나라 때 주조한 구멍 뚫린 쇠돈이다. 화폐 유통질서가 어지러워지자 사용하던 주화 1천전(錢) 한 꿰미의 길이가 3치[寸]도 안 되게 얇아졌다고 한다. 거위눈알 같이 작다고 해서 아안전(鵝眼錢)이라고 했는데, 워낙 가벼워서 물에 가라앉지 않았으며 손을 대면 부서졌다 한다(『宋書』·「顔竣傳」). 후대에 악전(惡錢)의 대명사로 쓰인다.

  옛날에 쓰던 엽전은 경화(硬貨)로 쇠의 가치가 화폐 액면 가치와 같아야 했다. 그러나 화폐제도가 문란해지자, 쇠를 적게 쓴 위조화폐인 사주전이 횡행하면서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관리들이 세금은 진짜 돈으로 받고, 백성에게 지불하는 돈은 사주전으로 지불하는 것이 수탈수단의 하나였다. 또 정화(正貨)로 세금을 걷고 나서, 중앙에는 사주전으로 바꾸어 보내는 것도 악덕관리의 치부수단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어부들이 송어 값으로 받은 돈은 명목상 금액은 정가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의 푼돈이 되는 것이다.

  시의 현산(峴山)인 오늘날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남대천과 같은 맑은 하천에는 먼 바다에서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송어와 연어가 뛰놀고 있다.

 

<도기그릇 공납>

고을 남쪽에서 나는 흑석은 백성들 고혈을 쥐어짜는 것인데,

나라의 사신이 동쪽으로 온다니 아전들이 바빠진다.

어쩐 일로 새것을 구하고 옛것을 구하지 않나,

한 번 접대하고 나면 다시 한 번 근심스럽다.

州南黑石斲民膏, 槎信東飛吏足高. 何事求新不求舊, 一回延接一回勞. 右勑需陶礶

 

 질그릇 항아리를 나라에 바치는 어려움을 읊은 것이다. 이 수는 새김이 어렵다. 우선 흑석이 지명인지 아니면 특별한 물건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백성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귀의 제목이 ‘도기 항아리’ 아니면 ‘질그릇차주전자’를 중앙에서 현산 지역에 요구하는 것이고, 그 공납과정의 문제를 쓴 시이다. 이렇게 보면 흑석은 도기를 만드는 원료일수도 있다. 칙수청(勑需廳)은 ‘나라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물품을 비축하는 것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그 관리가 현산에 오는 것이다.

  시에서의 사신은 엄청난 국가 간의 사신이 아니라 중앙관리를 말하는 것이다. ‘웬 일로 새것을 구하고 옛것을 구하지 않나’는 구절도 시인이 중앙에서 온 칙수(勑需) 관리를 비꼬는 말이다. “사람은 옛사람을 구하고, 그릇은 옛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새 그릇을 쓰라[人惟求舊, 器非求舊惟新.].”는 옛 말이 있다. 즉 중앙관리가 현산에 와서 인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공납 그릇만을 챙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관리가 오면 접대하는 것이 커다란 일거리이고, 또 다음에 올 것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공납하는 매>

설악산 꼭대기엔 매가 오지 않으니,

어느 때에나 정한대로 매를 바치게 되나.

해마다 누에치는 농가를 점검하는데,

그나마 누구 집에서 술대접 하는가.

雪岳山頭鷹不來, 何時著令與東萊. 年年再括耕桑戶, 一半誰家當酒杯. 右東萊鷹連

 

  매를 잡아다 바침을 읊고 있다. 매는 사냥을 하는 도구이자 중국에 보내는 공물의 하나였다. 시에서는 매를 응련(鷹連)이라고 하였다.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에서 매에 대해, “지금 세속에는 매를 반드시 응련(鷹連)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매라는 새는 하나가 혹 병들어 죽으면 뭇 매가 잇따라 죽어 한 시렁이 모두 비워지게 되는 까닭에 응련이라고 일컫는다.’고 한다.”고 하였다 또 외국사신에게 주는 매의 조달은 강원도 감사와 동래부 부사가 담당하였다(『歲船鷹連謄錄』, 조선후기 외국에 보내는 매의 조달에 관한 기록을 엮은 책).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인 동래의 응련은 ‘공납되는 매’란 의미이다.

  설악산에는 매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매를 제대로 바치게 되는 때가 언제인가라며 한탄한다. 없는 매를 바치라고 하는 그 관리들을 어찌 대접해야 할지, 그리고 그들의 횡포를 걱정하는 것이다.

 

<남여승의 어려움>

서쪽으로 가면 장안이고 남쪽으로 가면 군영인데,

중간은 험한 벼랑길이어서 말이 갈 수 없다네.

승려의 어깨는 가마아래서 멍들어 가고,

낭떠러지에 매달려 넘어질 듯 오르는 길 이백 마장이란다.

西走長安南走營, 中間棧道馬難行. 僧肩頳盡藍輿底, 登頓懸厓二百程. 右藍輿僧

 

 가마로 손님들을 태워다 주는 남여승(藍輿僧)을 읊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선비, 사족들의 산수 유람이 크게 유행하였다. 백두산, 금강산과 같은 명산, 고산을 찾은 등산도 유행해서 당시의 등산기가 오늘에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고관, 선비들이 등산을 하는 것이 등산객 본인이 짐을 지고 산길을 걸어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유명한 산이 있는 곳의 산중의 절은 산수 유람의 거점이 되어 유람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유람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했다. 절에서는 고위층의 유람객들에게 숙소를 제공함은 물론 유람을 위한 노동력도 제공하였다. 선비들이 산행을 할 때 승려들은 길을 안내해야 했으며, 험한 산행에서는 가마에 태워 데려다주어야 했다. 길을 안내하는 승려들은 지로승(指路僧)이라고 부르고, 가마를 메는 승여들은 남여승(藍輿僧)이라 불렀다.

  현산, 지금의 양양지역에도 설악산과 같은 유명한 산이 있었으니, 설악산을 찾는 유람객들을 중들이 가마에 태워 등산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조선의 유명한 문장가들의 백두산 기행문이나, 금강산 기행문 등은 많은 부분이 승려의 멍든 어깨를 빌려 읊어진 것들이다.

 

<나루의 어가들>

어가의 생사는 외론 배에 달렸는데,

큰 물결 속에 오가며 몇 날이나 쉬어 봤나.

임금님께 바치는 공물장부가 있는데도,

정한 것 외에도 가외로 쥐어짜니 견딜 길이 없구나.

漁家生死倚孤舟, 出沒濤淵幾日休. 御貢官征經簿在, 不堪科外別誅求. 右津戶

 

 어부의 생활을 읊고 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어부들은 바다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다. 파도를 헤치며 쉬지 않고 일해도 목구멍에 풀칠하기는 어려운 것이 어부의 생활이다. 어부들도 세금을 낸다. 그러나 법에 정한 세금 외에도 여러 가지 구실을 걸어 어민을 착취를 하였다. 임금에게 바치는 수산물의 진상, 현지 수령과 군영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이 모두 어촌의 어부들에게서 받아낸 것이다.

 

 <황장산의 폐단>

바다의 장사치들이 산에 싹 트기를 밤낮으로 살피고,

나무에 표시하는 관리들이 실처럼 이어진다.

이르는 곳마다 돈 될 물건만 챙기고,

황장목에 마땅한지 아닌지는 묻지 않는다.

海賈山萌晝夜窺, 環標官吏絡如絲. 到頭但有通神物, 莫問黃膓宜不宜. 右黃膓山

 

  황장(黃膓)의 폐단을 읊은 것이다. 황장은 황장목(黃膓木)의 준말로 나무 속고갱이가 노랗게 된 연륜이 오랜 소나무이다. 황장목은 왕실의 관곽(棺槨), 군대의 군함을 만드는 데 적합한 목재이어서 소나무가 많은 산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특별히 관리하였다. 이러한 산을 황장산이라고 하고 무단 벌목을 금하는 황장금표비(黃膓禁標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일반인이 황장금표 안에 들어가 농사짓는 것은 엄금되었고, 백성들이 사는 인근 산이 황장산으로 지정되면, 고을주민들은 산을 관리하는 노역을 부담하여야했다. 황장산을 읊은 8수에서는 황장산이 아무렇게나 지정되고 관리들이 드나들면서 백성들이 힘들게 됨을 풍자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짓고 ‘현산의 8가지 폐단, 병풍에 써 놓고 민풍을 관찰하는 이에게 보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에서 지적한 8가지 폐단은 비단 현산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여러 곳에서 백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송어와 연어 진상의 폐단과 관련된 다른 시인의 시를 더해본다. 송어와 연어는 회귀성 어류로 우리 강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내려갔다가 다 자라서 성어가 되면 번식을 위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온다. 송어의 산지인 북녘 땅의 풍물을 읊은 시이다.

 

<두만강>

 두만강엔 사월이 되어야 얼음이 녹고,

송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오른다네.

강변의 어부들은 집집마다 큰 그물을 짜서,

그물 들고 벌거벗은 채 강물로 뛰어 드네.

<豆江> 洪良浩(1724~1802, 耳溪集卷二)

豆江四月氷雪消, 松魚始自瑟海至. 江邊家家結大網, 持網赤身入江水.

 

  시인은 함경도 북관(北關)에서 송어 철이 온 두만강 풍경을 읊고 있다. 추운 고장이라서 음력 4월이 되어야 두만강에 눈과 얼음이 녹아 없어진다. 송어를 잡기 위해 그 추운 강에 벌거벗은 채 들어서야 하는 어부의 처절한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풍물시이다. 시인은 시에 ‘어부들이여 고기를 쫓아 강의 반을 넘어가지 말라, 강의 반 너머는 우리 땅이 아니다.’라고 부기하고 있다. 국경지대라서 두만강의 저쪽은 청나라 영토인 것이다. 물고기를 잡기위해 국경을 넘는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시 그곳 어부의 사는 모습이었다.

  차가운 두만강에서 어부들이 벌거벗은 채 그물질을 하는 것은 돈벌이도 될 것이나, 다른 이유는 제철의 공물, 진상물로 나라에 바치는 송어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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