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연구위원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

   설마 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정부도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TPP 가입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 한다. 결국 시간 문제겠지만 우리나라의 TPP가입은 기정사실화된 것 같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TPP 가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상품 생산은 여러 나라에 걸쳐 이뤄지고 이들 생산 네트워크에 있는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거대 FTA가 향후 국제무역질서의 중심이 될 것이라서 TPP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TPP 가입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TPP 가입이 몰고 올 쌀 추가 개방 가능성 때문이다.

　TPP 가입으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품목은 쌀이다. 다른 품목은 사실 그동안 양자 FTA를 통해 대부분 개방됐다. 따라서 TPP 가입으로 인한 추가적인 개방 확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쌀은 이제껏 FTA를 통해 한번도 개방한 적이 없다. 그러니 TPP 상대국은 전략적으로라도 우리에게 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쌀 수출능력이 없어도 쌀을 지렛대로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TPP 가입 시 쌀을 예외로 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의 예를 보건대 과연 우리나라가 TPP 가입에서 쌀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도 쌀을 예외로 하려 했지만 결국 미국과 호주에 약 8만t의 무관세쿼터를 허용했다. 그나마 일본은 TPP 참여국으로 형식상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했으나 우리는 TPP 가입을 요청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협상 입지도 일본보다 나쁘다. 이러니 농민들이 TPP 가입이란 소리에 혹 쌀시장이 추가로 개방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TPP에 가입하지 않으면 쌀의 추가 개방을 막을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올해부터 관세화한 쌀은 아직 관세화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관세화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쌀 관세율이 낮아지거나 무관세쿼터가 늘어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도하개발아젠다(DDA)는 더 큰 개방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은 쌀을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관세도 깎지 않고 무관세쿼터도 허용하지 않는 길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를 전제로 하고 있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이로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앞두고 선진국들이 지금까지 협상한 결과는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고 새롭게 협상을 시작하자고 하고 있다. 또한 개도국도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의무부담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우리의 쌀 보호엔 치명적인 얘기들이다. 협상을 새로 한다는 것은 종전에 우리가 이용하고자 했던 특별품목이 없어져 새로 만들어야 하다는 것을 뜻한다. 협상을 잘해 새로 만들어 낸다고 해도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의무분담을 달리 한다면 우리나라가 특별품목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다자협상의 속성상 우리가 끝까지 버티면 아마도 한두품목쯤은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짜는 없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쌀 관세화 유예처럼 추가 무관세쿼터로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쌀이 TPP와 관세화, DDA에 의해 추가 개방할 수밖에 없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런데 국내적으론 구조적 과잉 공급에 재고 누증으로 쌀 산지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관세화유예 20년간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