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연구위원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위해 여야정협의체가 발표한 ‘농어촌상생기금’을 둘러싸고 후폭풍이 거세다. FTA로 인한 농어업 지원에 대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은 2012년 한·미 FTA 국회통과 과정에서도 발생했다. 이렇게 농업부문에 대한 지원방식과 규모에 대한 논란이 매번 되풀이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먼저 이번에 정부와 국회가 발표한 농어촌상생기금에 대해 알아보자. 상생기금은 정부재정으로 지원되는 것이 아니고, 민간기업과 공기업, 농·수협 등의 자발적인 기부로 조성된다.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 규모로 조성해 농어촌 자녀를 위한 장학사업, 농어촌 의료·문화지원 사업, 주거생활 개선사업 등에 쓰일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이 발표되자마자 중앙 언론과 재계, 그리고 비농업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1조 준조세’ ‘농업 퍼주기의 나쁜 선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의 악순환’ 등이 바로 비판적 시각의 단적인 예다. 반대로 농업계도 상생기금이 당초 요구하던 재정지원을 전제로 한 ‘무역이득공유제’에 비해 구속력이 떨어지고, 규모면에서도 터무니없는 생색내기용 면피성 대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실제 기금의 성격상 매년 1000억원씩을 조성한다 해도 현재 1~2%대의 낮은 금리를 감안하면 당장 운용할 수 있는 연간 지원예산은 많아야 2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주요 기부예정자로 거명된 농·수협이 현재도 1000억원 이상을 농어촌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에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생기금은 허울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업들이 기존에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수행하던 농어촌 지원활동을 상생기금 출연으로 변경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사실상 지원 증가 효과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기금 조성액이 목표인 1조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정으로 충당한다는 당초 입장에서 후퇴해 “정부의 추가 재정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잖아도 울고 싶던 농업계의 뺨을 때린 격이다. 그럼에도 여론을 주도하는 대부분의 중앙 언론들이 FTA 최대 피해산업인 우리 농어업부문을 피해보다 더 많은 지원만 요구하는 무분별하고, 몰염치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를 사실인 양 믿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농업 지원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상당부문은 농업 지원정책의 실질적 성과가 농업의 구조적 특성상 중장기적 관점에서 평가돼야 한다는 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예컨대 이미 반세기 전부터 미국·유럽연합(EU)·일본·스위스 등 선진국은 농업에 대한 지속적이고 막대한 지원을 통해 구조조정을 완성하고,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비해 왔다. 반면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 타결 직전인 1992년에서야 처음으로 개방에 대비한 42조원의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을 마련했고, 이제 겨우 20여년 남짓 지원이 이뤄져 왔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지원예산은 농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하부구조 개선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사용했다. 농업인에게 직접 지원되는 돈은 전체 투융자의 35%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약 70%는 빌려주는 돈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 농업·농촌 전반에 걸쳐 기본적으로 정비하고, 구축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국익 차원에서 우리보다 농업이 강한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다면 손해를 보는 취약산업에 대해 재정을 부담해 경쟁력 강화와 소득안정 대책을 빠르게 추진하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 재정여건이 허락된다면 오히려 우리 농업에 대한 재정 지원폭을 더욱 늘려 나가야 한다.

　특히 농업경쟁력과 농가의 소득 및 경영안정망을 강화하는 내실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농업계도 농업·농촌 지원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보다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농업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귀중한 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농업 지원에 대한 무용성 혹은 퍼붓기 논란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동시다발적 FTA 체결로 상실감에 빠져 있는 우리 농업의 체질 강화를 위한 합리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국민적 지혜가 모아져야 할 때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농업 달래기성 미봉책 마련을 지양하고, 선진국처럼 국가 농정 비전과 목표에 부합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FTA 체결 때마다 농업 피해지원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