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연구위원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

   지난 연말 세계무역기구(WTO)의 제10차 각료회의가 아프리카 대륙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개최됐다. 열띤 논의 끝에 농산물 수출보조 철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각료선언이 채택됐다. 정작 국내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각료선언에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추구해온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은 DDA가 지금까지의 모습(DDA 1.0)을 완전히 바꿔 전혀 새로운 모습(DDA 2.0)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번 각료회의의 최대 쟁점은 과거와 같이 시장개방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2001년에 출범해 14년을 끌어온 DDA 협상을 앞으로 계속할지 여부에 관한 결정이 이번 나이로비 각료회의의 최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각료선언은 서로 다른 의미의 내용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개도국들의 주장대로 ‘DDA 출범과 그 이후 각료회의에서 채택된 선언과 결정에 근거해 DDA 종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 있는 반면, 선진국의 주장을 반영해 ‘기존의 도하지침(Doha mandate)에 구속되지 않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특히 DDA의 잔여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존의 협상방식에 기초해야 한다’는 내용과 ‘새로운 구조(new architecture)를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 같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접근방식과 새로운 구조라는 용어다. 새로운 접근방식이 의미하는 것은 향후 DDA협상이 계속될 경우 기존 일괄타결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일부 관심 국가들만이 참여해 합의를 도출하는 복수국 간 협상 방식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협상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그동안 우리나라가 의지해왔던 농업분야 4차 의장수정안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새로운 구조가 의미하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개도국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DDA 출범의 근본정신이 녹아 있는 도하지침에 관계없이 필요하면 새로운 협상의제를 추가할 수도 있고, 특히 개도국 우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새로운 구조라는 용어 이면에 녹아 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새로운 접근방식과 새로운 구조의 DDA가 아니면 향후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물론 개도국들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DDA 지속을 원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결국 선진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DDA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재개된 DDA는 기존 DDA와 성격이 다른 ‘DDA 2.0’이 될 것이다. 　

 DDA 2.0에서는 WTO 회원국 모두가 아닌 관심 있는 일부 회원국만 참여해 그 혜택이 참여국에게 한정되는 복수국 간 협상이 새롭게 나타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DDA 농업협상 대책의 근간이었던 개도국 특별품목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개발 정도에 따라 차별적인 개도국 우대조치가 구체화될 수도 있다. 모두가 우리 농업부문에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은 사안들이다. 글로벌 통상질서도 점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선진국 주도의 거대 FTA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이다.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WTO 다자통상체제 안에서 새롭게 나타날 DDA 2.0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스마트폰 시대에 아날로그폰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