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4 농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의 글입니다.

새 농협호(號)에 바란다

 
GS&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250만 농민의 자조적 운동체인 농협호(號)의 선장이 8년 만에 바뀌었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선장 앞에 놓인 과제는 막중하고도 지난해 보인다. 　

 전임 회장 재임 8년은 사업구조개편을 통한 중앙회 개혁의 시기였다. 농협중앙회의 신용과 경제사업 부문을 분리해 지주회사 형태로 재편하고, 경제지주 산하의 자회사를 통해 판매농협으로 거듭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정권의 정치적 성과와 농협 길들이기에 중점을 둔 본질을 벗어난 개편으로 볼 수 있다. 중앙회의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하고 경제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 몇개를 두는 방식으로는 벼랑 끝에 선 농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 　

 농협의 진정한 개혁은 농민조합원과 가장 접점에 있는 회원조합의 구조와 사업방식의 변화를 통해 대외경쟁력과 시장지배력을 높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회원조합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쌀을 비롯해 모든 농산물이 완전 개방돼 전 세계 농업과 무한경쟁에 돌입하고, 인구구조의 변화와 만성적 경기침체로 농산물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 에서 농협의 규모화와 전문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주로 부실조합을 합병하는 방식으로는 구조조정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회원조합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협 스스로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회원조합에 대한 정밀한 경영평가를 통해 각 조합의 체질과 체력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형태는 필요할 경우 행정구역을 뛰어넘거나 품목 간 합병도 가능하도록 열린 상태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농협 구성원이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이해하고 원점에서 새로운 판을 짜는 데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농협호의 또 다른 과제는 급속하게 약화되는 농업의 정치력을 회복하는 데 있다. 농업예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정에서 농업계의 입장이 무시되는 것은 농업의 정치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수가 줄어든 것도 향후 농업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농업회의소 등 농업대의기구의 설립이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농업의 정치력을 복원하는데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 농민들의 자조 조직이면서도 공공기관으로서 관리되는 모순적 상황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농협이 지도·감독의 대상이 아니라 농정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때 비로소 농협의 자생력과 창의력이 발휘되고 농업의 정치력도 강해질 수 있다. 회장의 직선제 선출을 비롯한 지배구조의 합리화는 이런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안이다. 　

 지역과 품목별 조직을 바탕으로 하는 농협의 특성상 인사에 있어서 지연과 배경 등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명실공히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된 농협의 인력운영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능력 있고 사명감이 투철한 인재를 중용하고, 전문성과 농업에 대한 철학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외부 인사를 적극 영입하여 창조적이고 활기찬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들은 매우 어렵고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그러나 농협이 실질적인 변화를 통해 농업 회생의 기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들이다. 새 농협호의 성공적인 항해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