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8  농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이선철 감자꽃 스튜디오 대표의 글입니다.

[사시사철-이선철] 카라반과 폐교가 만든 창의캠프

 
GS&J 연구위원 이선철

 (감자꽃 스튜디오 대표/숙명여대 대학원 교수)

  지난 겨울방학 기간 중 활기차고 건강한 도시의 10대 청소년들이 강원도 평창의 산골을 찾아왔다. 마을의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에서 연극·영화·사진·미술·뮤지컬에 항공우주 분야까지 다양한 영역의 예술창작 과정을 체험하는 캠프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고 운영한 단체는 젊은 청년 예술가들이 뭉쳐 만든 극단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3박4일 동안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표현하고, 만들고, 연습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멋진 작품으로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창작의 어려움과 함께 성취감도 느끼며,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협동심과 배려심도 두루 배우게 됐다. 항공우주에 관한 강의를 듣고 직접 야외에서 모형비행기를 날려보기도 했다. 또한 젊은 요리사가 캠프기간 내내 붙어 지역에서 직접 장을 봐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학생들은 집 못지않은 음식 호사도 누렸다.

　이들은 실내 공간에서만 머물지 않고 마을의 자연과 마침 열린 5일장도 탐방했다. 마을 숲을 걷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생태의 소중함과 풍성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시골의 5일장은 마트나 백화점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는 이색적인 체험이었을 것이다.

　또한 지역 청년이 특산물을 활용, 재래시장 안에 창업을 준비 중인 빵집도 방문해 로컬 베이커리의 꿈과 함께 독특하면서도 맛있는 빵과 과자도 맛보았다. 주민의 배려로 겨울밤 바비큐를 즐기며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는 체험은 백미였다.

　운동장에 모닥불을 피우고 아쉬운 뒤풀이도 가졌다. 청년 예술가들도 산골의 자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들에게도 힐링(자연치유)이 됐고, 이들은 자연과 농촌이 가진 교육적 환경을 활용한 사업의 가능성에도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데 이번 캠프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카라반(캠핑카)을 활용해 참가자들의 숙박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스튜디오는 문화예술과 교육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고, 숙박과 생활은 카라반을 활용함으로써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카라반은 이렇게 레저 목적으로만이 아니라 농촌의 생태적 환경과 창의적인 프로그램과 만나면 더욱 효율적인 모바일 농촌관광 인프라가 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서, 그 역할과 가치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농촌 입장에서 볼 때에도 관광 편의를 위한 대규모 시설 투자를 하지 않고도 카라반을 활용하면 농촌관광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캠프기간 동안 주요 방송매체에서도 이러한 가능성과 효과를 높이 평가해 일부러 취재를 오기도 했다.

　농촌은 그 자체가 훌륭한 자원의 보고다. 산과 강, 숲과 호수 등의 스몰 네이처(small nature)는 소박하지만 효율적인 생태적 환경을 제공한다. 농촌마을이나 주민들과의 만남은 정서적 측면의 자원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천적 형태의 자원 상태나 천편일률적이고 진부한 체험과 이벤트로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농촌의 환경적·정서적 요소에 문화예술·레저·스포츠 또는 드론 같은 첨단 기기나 기술 트렌드 등과의 결합은 농촌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주민들의 소득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콘텐츠를 농촌이 다 기획·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문 단체나 기관과의 호혜적인 협력이나 교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의적인 농촌은 열린 마음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