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30  농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송양훈 충북대 교수의 글입니다.

아우토반과 정량적 규제

GS&J 연구위원 송양훈 (충북대 교수)

 몇년 전 우리나라 농촌관광의 발전방안을 연구하고자 유럽의 선진 농촌관광지를 둘러본 적이 있다.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에서 차를 빌린 후 직접 운전해 네덜란드·독일·스위스·이탈리아·몬테카를로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독일의 연방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달릴 때 운전자들의 행태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차들이 추월차선으로 나왔다가 다시 주행차선으로 들락거리는 것을 반복했다. 일행이 빌린 차는 12인승 밴이었고, 5명이 타고 있었으므로 고속에서도 꽤 안정감 있게 달리고 있었다. 놀란 것은 시속 150㎞로 달리는 우리 차를 추월하는 차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우토반에서 달리는 차의 평균 속도가 시속 142㎞라니, 사망사고가 많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2012년 기준 선진국의 10억㎞ 주행당 사망자수를 보면 덴마크 0.72명, 영국 1.16명, 프랑스 1.7명, 오스트리아 1.73명, 독일 1.74명, 핀란드 1.94명, 벨기에 2.07명, 체코 2.85명, 스위스 2.9명, 슬로베니아 3.17명, 미국 3.38명이다. 독일 내 도로 형태별 사망률을 보면 아우토반 1.6명, 도시도로 4.9명, 농촌도로 6.5명으로 아우토반의 사망률이 단연 낮다. 급한 사람은 빨리 가게 놔둬도 사망사고율이 높아진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아우토반에서도 속도 제한을 두는 구간이 존재하는 등 정량적(定量的) 규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규제는 추월차선에서 주행하면 안 된다는 것과 추월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이상 왼쪽에서만 가능하다는 정성적(定性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시속 100~110㎞이고, 추월차선에서 계속 정속주행하거나 저속주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툼이 가끔 일어난다. 추월차선에서 규정속도로 정속주행하면 속도제한을 위반하지 않고는 자신을 추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일부 얌체 운전자들 또는 무지한 운전자들은 추월차선을 주행차선으로 애용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이러한 ‘추월차선 주행’을 ‘법규위반’ 또는 ‘무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규제는 최적화 문제의 제약(Constraints)이며, 포락선 정리(Envelope Theorem)에 의하면 규제가 적을수록 개별 복지함수가 증대된다. 문제는 사회복지함수의 경우 공공재 소비를 고려해야 하며, 이에 대한 규제가 없으면 흔히 알려진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가장 대표적 공공재인 공기 소비에 대해 적절한 규제를 하지 않을 경우 공해 문제가 발생해 사회복지가 감소하게 된다. 고속도로도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므로 규제가 있어야 ‘남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규제를 정량적으로 할 것인지, 정성적으로 할 것인지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정량적으로 유해가 측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량적 규제는 대부분 단속 및 법적 판단의 편이성 때문에 도입된다. 최근 논란이 된 김영란법을 거꾸로 얘기하면,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에게서 3만원 미만의 식사대접이나 5만원 미만의 선물, 10만원 미만의 경조사비를 받아도 직무와 관련 없이 주고받은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특정 액수 이상이면 뇌물이라는 것은 건네진 금품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 자체를 판단하는 어려움만큼 판가름하기 힘든 문제다. 액수의 크기와 관계없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관의 판단에 맡기면 될 일이지, 입법부에서 특정 금액을 법에 못 박아 놓는 것이 적절한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