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30  농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송양훈 충북대 교수의 글입니다.

[시론-송양훈]탈(脫)세방화 시대의 연해주 농업개발

GS&J 연구위원 송양훈 (충북대 교수)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저서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라고 했다. 즉 인간은 의사결정에 있어 이성과 정념이 충돌할 때 정념적 판단에 의지한다는 의미다. 최근 브렉시트 등은 이러한 정념적 판단에 기인한 탈세방화(脫世方化) 추세의 일각으로 보인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세계화는 ‘국제사회에서 상호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가 단일한 체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로, ‘각 민족국가의 경계가 약화되고 세계사회가 경제를 중심으로 통합해 가는 현상’이며,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그 속에서 상호 의존성이 심화됨’을 의미한다. 세계화가 더 진행되면 세방화(Glocalization·‘세계화’와 ‘지방화’의 합성어)로 진화하는데, 이는 과거 중앙정부 및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됐던 세계화가 지방문화 존중에 입각해 지방정부 및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식민지 쟁탈전과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국가들이 핵전쟁과 인류 종말을 막고, 인류 공존의 길로 나아가려는 유럽통합은 이런 세방화의 시금석이다. 즉 진정한 이웃이 돼 정치·경제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다 보면 전쟁보다는 대화로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이질적인 문화와 사람들이 가까워질수록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모양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국 대선주자들의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운운, 북핵·사드 배치로 이어지는 한·미·일과 북·중·러 대결구도의 재등장 가능성 등 세계 및 한반도에서 반(反)세방화·탈세방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또 연일 들려오는 소프트타깃(군이나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취약한 사람이나 장소)을 겨냥한 테러는 탈세방화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국내시장이 협소하고 무역의존도가 높아 ‘우리민족끼리’만 살 수 없는 우리나라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가 정권 초기에 내세웠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사업 중 하나는 연해주 농업개발이었다. 그런데 최근 사드 배치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어 연해주 농업개발사업 추진에 변수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연해주 농업개발사업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까. 핵심은 ‘민간주도’ 해외농업 개발에 있다.

　현재 연해주에 진출한 우리나라 농기업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본 부족이다. 정부가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저금리로 사업자금을 융자해주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내 자산만 담보로 인정하므로 자본을 연해주사업에 올인한 진취적 중소규모 농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융자보다는 민간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농식품모태펀드와 농식품투자조합을 이용하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하며 규모도 키울 수 있다.

　6월 농림축산식품부는 ‘한·러 연해주 농업개발 공동연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를 토대로 농산업 복합단지 조성 등 중장기 발전전략과 농업개발 10개년 실행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려되는 점은 탈세방화로 한·러 정부 간 관계가 틀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농식품부·농어촌공사·농경연 등 공공기관이 연해주 농업개발을 주도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해주 농업개발에서 정부 등 공공기관은 후방에서 예산 등 간접지원만 하고 민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개발 전략이 추구돼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청일전쟁에서 패한 이후로 연해주에 일본 깃발이 날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지만 대한민국 국기가 꽂히는 것도 환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