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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2.20
제목
혁신농업 단상 / 양승룡 
첨부파일
 

2019. 2. 15  농민신문에 실린 GS&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의 글입니다.

 

 

 

 혁신농업 단상

 

 

 
GS&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때 시중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각,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새 정치,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한반도 3대 불가사의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 세가지 모두 정체가 밝혀졌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라고는 하지만 한 정권의 국정운영 키워드인 창조경제가 개그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현 정부정책의 두가지 키워드 중 하나인 혁신경제(Innovative economy)가 창조경제(Creative economy)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창조경제라는 매력적이고 진취적으로 들리는 모토가 왜 우스갯거리가 되었을까?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우리 인류는 근본적으로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45억년 역사의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지 않을 200만년의 역사를 가진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생물체와 달리 창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불이나 문자·바퀴·엔진·인터넷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조적 생각들이 찬란한 인류문명의 근간이다. 창조경제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창조적인 발명과 혁신적인 개발로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국정운영의 키워드로 등장한 것이 우리 민족이 특히 창조적이지 못하고 모방적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좀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고무하자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관료사회에까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창조’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성 또는 구체성의 결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 창조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또는 ‘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 따위를 이룩함’으로 정의되고 있다. 창조경제는 새마을운동의 ‘잘살아보세’나 심지어 군부정권의 ‘정의로운 사회건설’ 등이 가지는 함축적 구체성도 결여하고 있다. 창조경제라는 단어는 일반 관료나 기업은 물론 새로운 지식이나 개념을 창출하는 학자들에게도 너무 크고 무거운 단어다.

 

창조경제가 지닌 문제는 당연한 것을 강조함으로써 실제로 추구해야 할 실천과제가 됐다는 데 있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것이 창조경제가 3대 불가사의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현 정부의 혁신경제는 창조경제와 다른 것일까? 혁신(革新)의 사전적 의미는 ‘가죽을 벗겨 새것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기존의 것을 파괴적 방법을 써서 새로이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경제나 사회도 혁신이 없이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혁신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피로감과 사회적 갈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에서 파생된 창조농업이 그랬듯이, 혁신경제에서 파생된 혁신농업도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농업생산을 비롯해 유통·가공 등 모든 단계의 참여자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생각과 도전의식으로 생업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은 수단이며 과정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 경제사회의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창조와 혁신성을 정책화하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내부적 갈등과 정책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의 몫이 된다. 최근 스마트팜을 둘러싼 갈등이 하나의 사례다. 농정의 목표나 비전은 훨씬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할 것이다.

 

[출처: 농민신문] 원문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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