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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8.19
제목
최저임금 차등화해야 한다 / 박병원 
첨부파일
 

2019. 5. 8  디지털타임스에 실린 GS&J 이사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의 글입니다.

 

 

최저임금 차등화해야 한다  

 

 

GS&J 이사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후에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어 백인 노동자들보다 싼 임금에도 기꺼이 일을 하려고 하자 이런 흑인들과의 경쟁으로부터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생겨난 제도이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를 규제하는 노동법 상의 모든 제도들이 그렇듯이, 최저임금도 사용자만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도 구속하고, 저임금 취업자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미취업자까지 구속한다. 결국 최저임금은 사회적 약자인 미취업자가 낮은 임금에라도 취업을 하고자 하는 자유를 박탈하는 제도다.

 

사용자가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은 규제하되 노동자 쪽에서 진정으로 더 낮은 임금에라도 취직하기를 원할 때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정의가 아닐까?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대학생을 생각해 보자. 쉴 새 없이 고객이 밀어닥치고 잠시 의자에 걸터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바쁜 명동 한복판에 있는 가게에서 일하는 경우와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그냥 가게를 지키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할 수도 있는 경우에 같은 임금을 꼭 주어야 할까? 또 양자간에는 가게 주인의 소득과 임금지불능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고, 주거비를 필두로 생계비도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자신의 근로조건이나 노동 강도에 비추어, 그리고 뻔히 아는 가게 주인의 지불능력 등에 비추어 임금을 더 받으려고 하다가는 일자리를 잃을 것을 뻔히 아는 사람에게 암암리에 서울이나 대도시를 상정하고 정해진 최저임금을 굳이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최저임금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어떤 업종에서나 꼭 반드시 주어야 할 '최저' 임금이어야 한다. 전국적으로 하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보는 노동강도와 생계비 수준과 임금지불능력을 암암리에 전제로 하고 정해진 것으로 너무 높다. 더구나 두 해에 29.1%나 올린 끝에 올해는 중위소득의 62% 수준에 이르러 프랑스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며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최저임금이 중위소득의 50%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너무 높다.

 

 따라서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지켜야 할 정말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하고(현실적으로 깎을 수는 없을 터이니 당분간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각 시군별로 그 보다 높게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역간의 위화감 등 여러 가지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이 없지 않겠지만,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이를 감안하여 정할 것이니 남들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조금 낮은 임금에라도 취업을 원하는지, 아니면 서울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정해서 자존심을 과시할 것인지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는 두었다 어디에 쓸 것인가?

 

다른 차등화도 마찬가지다. 연령별 차등화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청소년과 노인들의 취업기회를 조금이라도 열어 주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이것도 지방별로 정하게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업종별 차등화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사실은 감당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올라가 실직의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는 근로자도 많겠지만 사용자 쪽에서 너무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서 사용자를 위한 것으로 인식이 돼있다. 사용자를 위하는 것이 노동자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설득할 의사와 능력이 정부에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근로자 쪽에서 원하는 지역별 차등화라도 허용되면 상당 부분 같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사용자를 위해서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들에게, 특히 미취업 청년들과 은퇴 노인들에게 취업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좀 적게 받더라도 일단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경험을 쌓고 싶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권한이 정부에게 있는가?

 

일자리 정부라면 이미 취직해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의 말을 듣지 말고 아직 취직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에서 본 바와 같이 지방의 젊은이들은 보다 낮은 임금에라도 취직하기를 원한다. 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이들에게 이익인지를 내가 더 잘 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말아야 한다. 낮은 임금에라도 일을 할지 말지 결정을 근로자 스스로가 하도록 해도 되지 않을까?  

 

 [출처: 디지털타임스] 원문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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