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2차대전 이후 세계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 인력의 자유이동이라는 이상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국경이 폐쇄됐다. 1달러에 불과한 마스크 수출이 금지되고 정부가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다.

우리가 먹고사는 농식품 역시 글로벌 가치사슬에 의존한다. 만약 농산물 문제가 마스크 사태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어떻게 될까? 자유무역은 물론 국내 농업 보조금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수용할 수 있을까? 모든 국가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런 위험을 최소화할 전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WTO가 통제력을 잃고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흘러 농산물 무역질서에 혼란이 온다면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농지·노동력·유통 등 위협요인 있지만 새 기회도 생겨

코로나 사태 이후 자급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은 100평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에 속한다. 현재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농식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생산과 수입, 상품별 수입국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아마 WTO는 자유화와 식량안보의 균형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식량안보를 위해 국내생산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식량안보를 위해 무역자유화가 필수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떤 주장을 할 것인가?

또 다른 위협은 농업노동력 문제다. 고추 마늘 등 양념채소와 시설농업은 대부분 값싼 동남아 노동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출입국이 통제되면서 그런 생산방식은 한계가 분명해졌다. 농식품을 글로벌 가치사슬에 의존하는 방식과 국내 생산이 안고 있는 위험성이 적지 않음을 절감했다. 고추 마늘 벼를 포함한 모든 노지 농업의 전반적 스마트화가 대안이 될 텐데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농산물 유통혁명도 위협이다. 온라인 유통은 이미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코로나로 이 흐름은 더 빨라질 것이다. 농업 분야에도 농장과 소비자 현관을 직접 연결하는 온라인 유통혁명이 다가올 것이다. 농협은 유력 온라인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농산물 도매시장도 온라인 유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기존 시설은 물류기지로 전환하는 혁신을 검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첫째, 수입 중심 농식품 조달체계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국내 농업생산에 대한 필요가 늘 수밖에 없다. 둘째, 품질과 안전성(safe), 공급의 안정성(secure)이 가장 중요한 농식품 시장에서 한국산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상당히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한국의 기술력과 투명성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셋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도시와 실내문화 중심의 생활에서 자연과 야외활동 중심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농촌 공간과 지역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될 것이다.

농업·농촌이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새로운 인적자원의 유입으로 다시 고용이 창출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반면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는 저성장 구조에 빠지고 경제성장률도 낮아지는 데다 디지털화가 가속되어 도시 부문의 고용문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농업·농촌이 돛을 올릴 기회다.

농식품부와 산하 기관 전면적 조정과 개편 준비해야

농업·농촌이 위협에 대응하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농정조직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 농정의 핵심 부분으로 부상한 공익형직불제는 농가등록 및 이행의무 준수실태를 현장에서 점검하는 조직과 인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농림식품부 조직을 통상, 경영위험, 안전성, 농촌 공간, 직불제 중심으로 조정해야 한다. 1960년대에 설립되어 그간 기능 조정에 머물러 온 농진청 농어촌공사 농수산식품유통공사, 그리고 새롭게 설립된 농기평과 농정원 등에 대한 전면적 조정과 개편을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제는 농업과 농정에 코로나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선택과 결단을 요구할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출처: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