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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05.10
제목
[산골여행 6] 2월 17일, 실망스러운 소설 ‘아웃오브아프리카’, 그러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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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이사장이 지난 겨울 다녀온 산골여행 여섯번째 글입니다. 

 

 

 

「산골여행 6」

2월 17일, 실망스러운 소설 ‘아웃오브아프리카’, 그러나!

   

 

GS&J 이사장 이정환

 

 

아침 기온은 영하 15도. 아무리 입춘 추위라는 말이 있지만 이제 사흘 있으면 우수인데 영하 15도라니! 추위에 아침 산책은 빼먹고 따뜻한 방에서 덴마크 작가 카렌 브릭센이 쓴 자전적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마저 읽었다. 펜션 주인이 특별히 마련해준 작은 책상에 앉으면 계곡 건너에 빽빽이 늘어선 나무가 바로 앞 창문을 가득히 채운다. 책을 읽다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꽃보다 아름답다.

헤밍웨이, 카뮈와 노벨문학상을 다퉜다는 이 소설은 영화로 제작되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단성사에서 개봉하였을 때 너무 보고 싶어서 네 살쯤 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아내와 번갈아 아이를 데리고 들락날락하며 어렵게 본 영화다. 영화는 1910년대에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에 온 한 강인한 여인의 슬픈 러브스토리였다. 남편을 따라왔지만 사랑 없는 불성실한 남편과 결국 이혼하고 혼자서 커피농장을 경영한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냥꾼 남자 테니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 그는 결혼이라는 속박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곧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다. 두 연인이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르고 아래에는 아름다운 아프리카 산천이 끝없이 펼쳐지며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영화. 그 음악을 좋아하여 지금도 자주 듣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eWZ2adCaKo4).

나는 주인공이자 저자인 카렌이 남편과 겪는 갈등, 그 갈등 속에서 카렌이 생각하고 느끼는 심리가 영화에서와 달리 소설에서는 얼마나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새로운 연인 테니스와 사랑에 빠지는 심리, 기쁨과 갈등은 어떤 것이었을까? 자전적 소설이므로 주인공의 생각과 심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기술했을까. 얼마나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내가 ‘동안거’에 이 책을 들고 온 이유는 나도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데 대한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책을 펼쳐 든 이후 줄곧 그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국 남편 이야기는 거의 없고 연인 테니스와의 이야기도 무미건조한 몇가지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었다. 사랑이 없어 보이는 남편에 대한 실망감과 심리적 갈등, 테니스의 존재에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 어떤 것도 없었다. 테니스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 카렌의 농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묻히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연인의 뜻밖의 죽음에 대한 놀람, 슬픔, 미련, 회한의 심정에 관한 기술도 별로 없었다. 너무나 큰 실망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큰 감동으로 남는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여러 가지 심리 - 연민, 애착, 희열, 갈등, 긍지, 고집, 거짓, 실망, 좌절, 무지를 아프리카 점령자 백인과 식민지 원주민 사이, 또 그곳에서의 백인 사이라는 특별한 관계에서 관찰하고 느낀 대로 세심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기에 헤밍웨이, 카뮈와 노벨문학상을 다투었던 것이리라.

 

아프리카는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다르지 않다.

1910-20년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백인 여주인공이 하인, 소작인들과 함께 농장을 꾸려 나가며 백인 주인으로 느끼는 그들에 대한 연민과 자연에 대한 애착; 백인 주인을, 바라다보면 죄를 사해준다는 구약성서의 ‘놋쇠 뱀’이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는 무력한 원주민의 심정과 처지; 그러면서도 백인의 무지를 비웃으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자존감과 긍지를 내세우는 원주민의 모습; 백인이지만 아프리카를 떠돌며 농장을 찾아오는 처량한 백인들; 아프리카 오지 커피농장에까지 미치는 1차 세계대전의 파도, 그토록 사랑하는 농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하는 자연재해와 세계 대공황; 파산한 농장은 도시개발로 넘어가고 원주민 소작인은 대대로 살아온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새로운 정착지로 이주하는 애처로움, 그러면서도 끝까지 백인 주인에게 충성하는 그들. 이야기 자체로 흥미진진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확 철에는 커피 열매를 건조실로 옮기는 소달구지가 분주히 들락거린다. 원주민 아이들은 이 달구지를 타고 싶어서 못 견딘다. 달구지 뒤끝에 올라타면 그렇게 즐거워한다. 카렌은 위험하므로 아이들을 태우지 말도록 엄명을 내렸으나 여자아이가 떨어져 다쳤다. 떨어지며 바퀴에 치여 부상이 컸다. 그들 사이에서 카렌은 아이들을 절대 태우지 말라고 했으므로 달구지꾼의 책임이라는 결론이 났다. 아이의 부모는 딸이 결혼할 때 신랑집에서 받을 수 있는 암소 한 마리를 못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고 달구지꾼은 타지 말라는데 탄 아이가 잘못이라고 반론. 그러나 논란 끝에 원로들이 모여 결국 송아지 한 마리로 낙착되었다. 원주민 사회에서는 잘잘못보다 손해를 본 쪽에 동물로 배상하는 문화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교수로 있는 한 친구의 어릴 적 이야기가 기억났다. 그가 놀다가 이웃집 아이를 다치게 하여 시끄럽게 되자 염소 새끼 한 마리 주기로 합의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날 저녁, 그를 데리고 염소 우리 앞에 서서 어미 염소에 ‘내 새끼 살리려고 네 새끼 뺏어간다’라고 고한 후 염소 새끼를 끌어다 주었던 기억이 항상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나의 어린 시절 모습도 아스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등하굣길 마차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뒤쫓아가 서로 올라타려고 하였고, 잽싸게 올라탄 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달구지 아저씨가 야단치면 황급히 뛰어내리다 넘어져 손목이나 무릎이 까지기도 하면서. 용감하고 잘 뛰는 아이들은 트럭이 비포장 신작로를 지나가면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으로 뛰어들어 매달리고 환호하였다. 얼마나 많은 흙먼지를 마셨을까. 카렌 이야기 속의 아이들이나 나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나 ‘무언가 타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유모차와 자전거를 타고 승용차가 필수품이 된 시대의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카렌은 원주민들의 편지에는 내용은 없고 정해진 틀만 있다고 했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 카마우. 자네에게 편지를 쓰려고 오랫동안 벼르다가 이제야 펜을 드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자네도 신의 은총으로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네. ----우리 어머니는 좀 편치 않으시지만 자네 어머니는 강건하시기 바라며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주게---.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쯤에서 펜을 놓겠네.”

 

카렌은 그녀가 어렸을 때 덴마크 어른들도 ‘펜을 들고 놓고, 잘 있느냐 잘 있다’는 의례적 안부가 전부인 편지를 주고받았다며 신기해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은 대개 이런 투의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읍내 학교에 미군 부대가 일시 주둔하였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빼내 온 갖가지 물품이 귀한 상품으로 거래되었고, 그런 것을 매일 먹고 쓰고 사는 미군은 하늘 같은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미군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일화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틀림없이 미군들도 카렌과 같이 원주민, 당시 한국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한탄이 교차했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일본놈들’이 얼마나 나빴는지 분노하기도 했지만 “일제시대가 좋았다. 일본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정확했다.”라는 존경 어린 추억이 더 흔했다. 식민지 시대에 조선사람과 일본인도 상대에 대한 연민, 조롱, 분노, 존경이 뒤엉켜 아프리카 식민지 원주민과 지배자 백인 사이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사람이나 유럽 사람도 마찬가지리라. 북한 사람들도. 발전단계가 다르고 처한 상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물복지의 싹, 이미 100년 전에

카렌은 몇 가지 생각을 짧지만 독립된 절(section)을 할애하여 강하게 말하고 있다. 그 태도가 인상적이고 그 생각에 공감한다. 그중에 황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적고 있는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황소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매일 무거운 짐을 끈다. 너무 힘들어 분노한 듯 풀풀 뜨거운 콧김을 내뿜는다. 무거운 짐을 싣고 언덕을 내려올 때는 짐이 황소를 언덕 아래로 미는 힘이 점점 더 커진다. 황소는 이 힘에 견디기 위해 뿔이 등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옆구리는 풀무처럼 접힌다. 그러다 견디지 못하여 쓰러져 죽음을 맞기도 한다. 주인이 브레이크 비용을 아끼려 했거나 달구지꾼이 브레이크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황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모든 것을 빼앗으며 당연하게 생각한다."

카렌은 황소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분노한다. 비록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야만이 행해지고 있던 시대였지만 이미 100년 전에 동물에 대한 그런 생각이 유럽 지성인들에게 있었기에 동물복지가 세계적인 규범이 되고 동물을 깊이 배려하는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타인의 긍지를 부정하는 것, 배려심이 부족한 것은 야만

잊히지 않는 주장 중 하나는 긍지에 관한 예찬이다.

“자신의 긍지는 사랑하고 타인의 긍지를 증오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야만인이다. 나는 문명인이고자 하며 나의 적과 하인들, 연인의 긍지를 사랑하려 한다.”

적의 긍지까지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나는 하나 덧붙이고 싶다. ‘동물까지 배려하는 세상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야만이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이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거나 불편, 분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생각하려 한다. 심지어 적이라도.’라고.

오래전 친구들 카톡방 공지란에 ‘새로 개정된 형법’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또 무슨 가짜 뉴스려니 하고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최근 읽어보고 그가 왜 모임에 안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존심 손상죄’란 게 생겼다는데요, 그 종류와 형량이 아래와 같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친구 앞에서 왜 골프 안 치냐고 묻는 죄: 징역 1년,

왜 좀 큰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느냐고 묻는 죄: 징역 3년,

아들이 취직은 했느냐고 묻는 죄: 징역 7년,

 -----”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그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음을 나타내는 글이다. 어느 친구가 보내온 ‘피해야 할 말’이라는 글도 공감이 간다.

“결혼할 아들 집 장만 못 해주어서 가슴 아픈 친구 앞에서 자기 아들 집 자랑하는 일, 나이 든 딸이 결혼 안 하여 속 끓이고 있는 친구에게 손주 자랑 늘어놓는 일, 친구 모임 카톡방에 정파적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실어날라 생각이 다른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

배려심이 부족한 말과 행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길을 걸을 때, 운전할 때, 밥을 먹을 때 같은 일상에서부터 사업과 정치, 외교에 이르기까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필요하다. 타인의 긍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윤리적 명제이기도 하지만 타인과 편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한,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찍이 역지사지의 덕을 배웠던 것 아닌가!

 

깨달음의 환희와 버들강아지의 지혜

카렌이 지진을 난생처음 경험하며 느낀 감정도 인상 깊다. 지진으로 집 전체가 크게 요동친 첫 순간에는 ‘표범 떼가 지붕 위에 올라탄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말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지진이라는 생각에 미치는 순간 갑자기 철저하게 환희에 젖었다. 케플러가 지구를 포함한 천체가 움직인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 빠졌다는 황홀경과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말한다. 케플러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온몸이 떨리고 피가 들끓는다. 신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작품의 구경꾼을 6천 년이나 기다리셨다.” (당시는 6천 년 전쯤 전에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지금이라면 ‘신은 150억 년을 기다리셨다’라고 했을 것이다). 카렌은 이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확고히 믿었던 물체가 움직인다는 깨달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순간의 환희라고 했다. 많은 데이터를 붙잡고 그 데이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씨름하는 나의 일도 비록 작지만 그런 깨달음의 환희가 보람이리라.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여운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오후 산책에 나섰다. 낮인데도 기온은 영하 7도여서 단단히 껴입었지만, 왠지 카렌의 아프리카 농장 산책길에 나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휴양림 휴양관 중간까지만 갔다 올 생각으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겨울 산과 하늘은 오늘도 정말 아름답다.

 

그때 계곡 속 잔가지에 하얀 것이 많이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버들강아지였다. 맙소사! 아침에는 영하 15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버들강아지는 우수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추위는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입니다. 해는 길어졌고 이미 햇볕은 따스해졌어요. 추워두 이제 꽃을 피울 준비를 해야 제철에 씨를 맺지요. 바빠요 바빠!”

자연은 신비다. 버들강아지가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다. 날씨는 한겨울만큼 춥지만 이제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을 준비를 해야 할 시기임을 안다. 그래서 자연은 유지되고 우리는 삶을 누린다.

  

 

tang7  [date : 2022-05-10]
책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얼마나 건성으로 책을 읽는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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