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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2022.05.23
제목
[산골여행 7] 2월 20일, 세상사 알 수가 없다./ 이정환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이 지난 겨울 다녀온 산골여행 일곱번째 글입니다. (ver.0607)

 

 

 

「산골여행 7」

2월 20일, 세상사 알 수가 없다.

   

 

GS&J 이사장 이정환

 

 

오늘 두타산 계곡을 터나 영월 삼방산 기슭의 또 다른 황토방으로 간다. 어떤 곳이 기다리고 있을까? 새로운 곳, 새로운 체험에 대한 기대에 가슴이 살짝 부푼다. 처음에는 안반데기에서 3주간 있을 생각이었지만 어찌어찌하여 할 수 없이 두타산과 삼방산 자락으로 나누어 가게 되었는데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있어 좋다. 세상사 알 수가 없다.

두타산 계곡 마지막 아침 산책길, 산봉우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 정상의 나무들은 비록 춥지만, 계곡의 버들강아지처럼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며 물을 퍼 올리고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머지않아 새싹은 돋고 저 산은 연녹색으로 물들 것이다. 그리고 갈비뼈처럼 드러나 조각처럼 아름답던 작은 산등성이는 감추어지리라. 세상은 조화와 신비에 차 있다.

펜션 주인과 따스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떠나오는 길목 차창 밖, 산과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진 풍경,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차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되찾은 하늘과 채소 가꾸는 즐거움

작년은 대기가 관측 사상 최고로 좋았다고 하던데 그 탓이었을까. 맑은 날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정말 어릴 때 보았던 막 핀 솜같이 희고 아름답다. 그리고 구름은 시시각각 변하여 때로는 수채화같이 부드럽고 때로는 유화의 붓텃치 같이 힘이 느껴진다. 아침에는 눈부시게 밝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저녁에는 석양을 받아 옅은 붉은색으로 물든다. 한낮에 초승달이 하얀 구름과 같이 중천에  떠 있기도 하고 어느 날 저녁에는 동쪽 산 위로 정말 쟁반 같은 보름달이 떠오른다. 저녁나절 샛별이 놀랄 만큼 밝게 빛나기도 하고 목성과 나란히 뜨는 경이를 보이기도 한다. 밤에는 북두칠성이 보이고 큰 곰인지 작은 곰인지도 밝게 빛난다. 하늘은 미술관이다. 매일, 매시간 전시품이 바뀌는! 하늘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고 그런 사이 ‘하늘 보기’ ‘사진 찍기’ 습관이 생겼다.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도심은 물론 아파트에서도 창밖을 보면 하늘은 옆 건물에 가려 손바닥만 하다. 베란다에 나와 봐도 양팔 벌린 넓이나 될까. 그러니 별다른 느낌이 없고 별다른 느낌이 없으니 볼 생각이 없다. 하늘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주말농장 마당에서는 드넓은 하늘이 그냥 보인다. 하늘을 되찾았다. 그러나 고백컨데 이런 미술관을 마당에 두고 있음을 깨달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세상사 늘 그렇다. 주변에 좋은 것이 지천인데 모르고 산다. 아쉽지만 이제라도 발견하고 즐길 수 있다니 다행이다.

 

주말농장에서는 하늘을 되찾기도 했지만, 채소 가꾸는 일이 정말 즐겁고 숯불 피워 고기 구워 먹는 재미가 진짜 좋다. 숯불에 막 구워낸 고기에 소주 한잔을 걸치면 더 좋고,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까지 흐르면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런데 두 가지 즐거움과 재미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채소 가꾸는 즐거움을 선택할 것 같다. 씨를 뿌리고 다음 주에 가면 떡잎이 벌어져 있다. 그다음 주에 가면 이파리가 나와 있다. 그다음에 가면 벌써 따 먹는다. 나는 씨를 뿌린 것 외에 한 것이 없다. 혼자 싹이 나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태양에너지를 농축하여 무럭무럭 자란다. 자연의 신비 중의 최고의 신비다. 그 신비 덕분에 우리는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부지하고 또 생명을 잉태한다. 그게 농사다.

59번 국도에 들어서 영월 쪽으로 조금 가자마자, 이건 뭐야! 자작나무 숲이다. 가파른 산자락을 하얀 자작나무가 덮고 있다. 자작나무 숲이라니! 자작나무 숲을 보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달리던 기억이 새롭다. 자작나무 숲 너머로 해가 뜨고 졌는데---, 기차는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노을을 잡으려는 듯 석양을 향해 달리고 노을은 오래오래 머물렀는데---(시베리아 여행기 8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갓길에 차를 세우고 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 하얀 나무껍질 기둥이 빽빽이 늘어선 모습, 너무 아름답다. 이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각도를 찾아 사진을 찍으려고 해보지만, 항상 그렇듯 카메라 렌즈는 사람 눈만 못하다는 것을 다시 절실히 느낀다.

 

아! 이 절경을

31번 국도에서 영월읍 가기 전에 공기리 쪽으로 꺽어들어서자 삼방산길이다. 산수유 가로수가 늘어섰다. 3월이 되면 아마도 노란 산수유꽃이 이 길을 뒤덮으리라. ‘효자열녀촌’이라는 간판을 지나 차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산골길을 조심조심 가다 보니 황토방 검색창에 떴던 ‘수월산방’이 보인다. 다시 더 좁은 진동계곡 길을 2킬로는 갔을까, 이제나저제나 하는데 ‘산골흙집’이라는 화살 표시가 나타났다. 드디어! 반가웠다. 그러나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은 급커브에 깎아지른 계곡 너머로 이어졌다. 아니, 이 길로 오라는 거야? 이 길이 맞는지 전화해 볼까? 하다가 일단 내려 지형을 살펴보니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갈 수 있으니 오라고 했겠지, 용기를 내어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으며 움켜잡은 핸들을 왼편으로 바짝 꺾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을 조심조심, 그리고 골짜기를 건너자마자 엑셀레이터를 밟아 치고 오른 후 우측으로 돌았다. 아, 드디어 ‘산골흙집’ 작은 간판이 보인다. ‘동안거’를 계획할 때는 눈에 파묻힌 산골을 기대하였기에 눈 없는 안반데기나 두타산이 실망이었지만, 만약 이 길이 눈에 덮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차를 중간 어디에 세우고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했을지도 모른다(실제로 ‘산골흙집’ 홈페이지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쓰여있었다). 이 가파른 골짜기 길을 넘자 뭔가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을 준다. ‘동안거’ 답게.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주인의 안내를 따라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자 ‘산마루’라고 이름 붙인 황토방이 나타났다. ‘산마루’ 앞에 서자 와! 움직일 수가 없다. 산과 산이 발 앞에서 끝없이 펼쳐지고 푸르디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서 광활하게 이어진다. 바로 아래 산 능선 너머에 능선과 능선이 이어지고 또 능선이---아스라이 십여 개가 이어졌을까, 하늘과 닿았다. 옛날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평양 대동강 부벽루에 온 문필가가 그 절경에 감탄하여 “아, 강 건너 저 멀리 산과 산이 점, 점, 점---‘ 더 말을 잊지 못하고 떠났다는 구절을 읽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이런 절경 앞에서 이런 심경이었으려나.

황토방은 정남향이고 널찍한 통창을 통해 겨울 햇살이 창 앞에 놓인 통나무 책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책상에 앉으면 겹겹이 펼쳐진 능선이 창문 가득히 한눈에 들어온다. 영월 태화산과 단양 소백산까지 보이는 것일까. 아니 문경 영주까지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책 쓸 구상을 한다고! 경치에 홀려 일이 손에 잡힐까? 짐을 풀기도 전에 와인부터 찾았다. 한잔의 욕망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했다.

 

와인 한잔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여 황토방 안팎을 이리저리 탐색, 창문도 멋있고 굴뚝은 더 멋있다. 투박한 툇마루에 황토방 끄트머리 경사지에는 전망대, 널찍한 난간을 만들고 벤치를 놓아 더 넓은 경관을 즐기며 차 한잔할 수 있을 것 같다. 멀찍이 또 한 채 황토방 ’별마루‘가 보인다. 그저 즐겁다. 와, 이런 행운을 만나다니!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예의 보따리 보따리 짐을 풀어 정돈하고 나니 저녁 무렵. 오른편 산과 산이 만나는 그 사이로 해가 서서히 지고, 앞에 펼쳐진 광활한 능선과 하늘은 옅은 붉은색으로 변한다. 매혹적이다. 내일 아침에는 왼편 산에서 해가 솟아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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