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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6.13
제목
[산골여행 8] 2월 21일, 하현달의 슬픔? / 이정환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이 지난 겨울 다녀온 산골여행 여덟번째 글입니다.

 

 

 

「산골여행 8」

2월 21일, 하현달의 슬픔?

   

 

GS&J 이사장 이정환

 

 

어제 절경에 취하여 조금 흥분하였는지 새벽 2시 가까이 감동의 일기를 길게 쓴 후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 감동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기보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못 견디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이번 ‘동안거’ 두 번째 독서 목표인 ‘죄와 벌’을 읽기 시작했다. 학생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영어판을 구해 싸들고 다니던 기억이 있지만, 영어 독해에 매몰되었던 탓일까,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일까, 명작 중 명작이라지만 별다른 느낌은 남은 것이 없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영어판을 구해 사전 찾아가며 읽은 ‘전쟁과 평화’는 ‘죄와 벌’과 달리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3학년 때 열을 올리던 여학생과의 첫 번째 데이트, 단성사에서 봤던 영화 ‘전쟁과 평화’의 장면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암튼 주인공 안드레이 공작이 나폴레옹 전쟁에 출정하면서 약혼자 나타샤에게 ‘당신에게 자유를 준다. 마음이 변해도 좋다’라고 하는 문제의 장면이 있다. 50여 년 전 내가 일본으로 공부한다고 떠나기 전에 지금의 아내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데이트 코스로 인기 있던 인천행 고속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갔다. 그때 월미도는 좁은 바닷길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인천 외곽의 한적한 섬이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해변의 바위에 앉아 이 문제의 장면을 내 딴엔 멋있게 써먹었다.

 “안드레이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데 무조건 기다리라고 해야지 자유라니, 그건 아니죠. 나는 꼭 기다리라고 할 겁니다.”

내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들먹이며 비장하게 그러나 한껏 멋있게 말한 것이 사귀기 시작한 지 반년밖에 안 되던 그녀가 결혼하기까지 2년이나 나를 기다리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어요?” 금시초문이란다. “아, 그 이야기요. 그때 꼭 기다리라는 당신의 진심이 참 멋지게 전해졌어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던 터라 실망스럽달까 맥이 풀리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남자들의 그런 정도 연기는 많이 들어봐서 특별히 기억에 남을 일도 아니었기 때문일까?’ 하며 은근히 화가 났던 기억도.

‘죄와 벌’은 소설가의 길을 걷던 동생이 요절하기 전 무교동 막걸리집에서 만났을 때 했던 말이 생생하다. 내가 예의 ‘전쟁과 평화’를 말하며 문학에 대해 아는 체하자,

 “톨스토이가 앞산이라면 도스토옙스키는 그 뒤의 높은 산인 것 같아요.”

나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지만 이번 ‘동안거’ 독서 목록에 이 책을 넣는 데는 그 기억이 일조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어 그의 작품, 특히 ‘죄와 벌’에 관한 기사를 보며 제대로 읽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어깨 통증에 눈을 떴다. 4시였다. 좀 더 자려고 소염제를 먹고 애를 쓴 것 같은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창문이 밝았다. 해돋이를 볼 수 있으려나? 어떤 장관일까, 안반데기의 감동을 뛰어넘을까? 날씨를 검색하니 영하 14도란다. 잠옷 위에 바지와 오리털 잠바를 껴입은 후 러시아식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묵직한 방문을 떼밀고 나갔다. 그러나 바로 옆 동쪽 산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떠오르는 아침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반대편 서쪽 산봉우리가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 위 푸른 하늘에 하현달이 아직 떠 있는 것이 아닌가. 햇빛에 밀려 점점 흐려져 서산으로 지기도 전에 스러져 비릴 것 같다. 문득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진즉 서산으로 넘어가지! 자신의 빛으로 겨우 모습을 보이던 산봉우리가 밝게 빛나, 이제는 도리어 자신의 사라짐을 재촉하고 있는데--. 그러나 동쪽에서 솟아오른 태양에 자리를 넘기며 서서히 서쪽으로 스러져 가는 그 모습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너무 나무라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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