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한우, 전환점 접근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최초의 길' 걷는 남자 피
성공적 국제 통상협정? …
범부처적인 협력적 농촌공
中, 20년째 ‘삼농(三農)
농정, 이제 시스템을 고민
‘빈손농사’ ‘빚농사’
[94] 의성군 쌀산업 정책
아름다운 자연 느끼기
GS&J 감성교차
 
Home > GS&J논단 >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3.14
제목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3] 곰배령 정상 앞에서 돌아서는 그 마음이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의 겨울 산골 살기 세번째 에세이입니다.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3」

곰배령 정상 앞에서 돌아서는 그 마음이

   

 

GS&J 이사장 이정환

 

 

곰배령의 설경!

 

눈이 이틀 연속 내렸다. 내일 곰배령에 가면 아주 좋을 것이라고 황토방 주인이 입산 신청을 해주었다. 곰배령은 생태보호구역이라 입산 인원을 제한하므로 미리 허가를 받은 사람만 입산할 수 있단다. 등산은 생각도 하지 않았으므로 아무 장비 없이 왔으나‘경사가 완만하여 할머니들도 콩 자루를 이고 장 보러 넘어 다니던 길이다.’라기에 산책 삼아 중턱까지만 다녀오리라며 아이젠만 빌려 차고 나섰다.

여기 올 때까지 곰배령이 이렇게 유명한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산골 외딴 황토방’을 여기저기 검색하다가‘관광지 모습은 질색이라 산골다움을 지키려고 한다’라는 소개말에 꽂혀서 왔다. 와서 보니 2킬로 가면 곰배령 등산로 입구란다. 네이버에는 곰배령이‘천상의 화원’‘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등 극찬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이어서‘곰배령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벌렁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1,100미터 고지에 약 5만 평의 평원이 형성되어 있다.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만발하여 마치 고산 화원을 방불케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임영웅이 곰배령을 넘어 떠나는 임을 향해 부르는‘곰배령’이란 노래도 있다. 아마도 그 옛날 양양과 인제를 잊는 산길 고갯마루였으리라. 점봉산에서 단목령을 넘어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바로 아래 길이기도 하다. 어릴 적 겨울이면 방송에서 점봉산과 향로봉의 추위를 전하곤 하여 혹한의 대명사로 알고 있던 그 점봉산 아래다. 알지도 못했던 이 유명한 곰배령을 어쩌다 눈 온 뒷날 산책하는 행운이 굴러들어왔을까. 인생이 이렇다. 생각하지 않은 행운이 오기도 하고 간절히 원해도 잡히지 않는 것도 많다. 어머니는 이를 두고‘운명이 앞서간다’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아침에 일어나시면‘감사합니다’라고 동쪽 하늘을 향해 절을 하신다고. 정말 감사하다.  

점봉산생태관리센터란 간판이 붙은 입구에서 입산 등록을 확인하고 허가 패를 받았다. 5.5킬로라는 표시가 있다. 논 덮인 산비탈과 계곡의 물소리가 자꾸 발길을 잡는다. 오늘 아침도 영하 13도였지만 계곡에는 여기저기 얼음이 녹아 물웅덩이가 생겼다. 그중에는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곡선이 감탄스럽고 물 흐르는 소리는 아름답다. 때론 속삭이듯, 때론 노래하듯. 봄을 알리는 소리일까, 봄을 반기는 소리일까. 암튼 듣기 너무 좋아 웅크리고 앉자 한참이나 스마트폰에 그 모습과 소리를 담는다.

 

 

 

곰배령까지 2.5킬로라는 표시판이 나왔다. 조금 더 갈까? 산길은 힘들지 않았으나 물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다. 그런데 이미 12시를 지났다. 등산지팡이도 없어 온전히 두 다리로 눈 덮인 산비탈 길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만 돌아갈까. 그러나 점점 신비감을 더하는 설경이 저만치서 자꾸 나를 부른다. 조금만 더 오라고. 조금 더! 그 부르는 소리에 한 걸음 한 걸음 더 걸었다.

정말 잘했다. 1킬로 정도 더 올라오니 어제 내린 눈이 나무 가지가지마다 얼어붙어 장관, 정말 장관이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자연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왜 인공적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이고 자연을 훼손할까. 아름다운 것이 목마르면 자연을 보라. 인공적인 것은 편리성과 기능성만을 보고 최소화(minimal)하라. 물론 누추해서 우리 시선을 괴롭혀서는 안 되지만’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로 된 옷을 입었으니

 

이제 1.5킬로만 가면 눈 덮인 5만 평 곰배령 정상이다.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냥 올라갈까”하는 유혹과 잠시 다투었다. 그러나 물리치고 돌아섰다. 처음부터 중간까지만‘산책’한다는 생각이었으니까 라며. 그리고 눈꽃 핀 경치를 정성 들여 사진 찍었다. 그렇지만 생각한다. 아무 준비 없이 산책 삼아 나온 길이었다 하더라도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기회를 거부하고 여기서 돌아서는 나는 신중한 것일까? 겁이 많은 것일까? 여기로 떠나오던 즈음 동안거를 포기할까 라던 생각, 미국 누님 방문을 포기할까 하던 생각, 상가 건물 공실 걱정으로 잠을 설치던 일, 너무 멘탈이 약하다! 너무 인생을 평탄하게 살아온 탓일까? 그러나 온 가족을 데리고 보스턴에서 LA까지 한달 동안 캠핑하며 미 대륙을 횡단하지 않았던가. 러시아 치안이 불안하기 그지없던 시절 아내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3주간의 여행도 했는데. 역시 늙어서일까?

아버님은 늙는다는 건 용기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하셨다. 젊어서는 아침에 일어나면‘무엇을 어떻게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늙으면서 점점 이렇게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앞서더라고. 수십 년도 전 젊은 나이에 아버님 말씀을 흘려들었겠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요즈음 아버님 말씀이 자꾸 생각난다. 자신감이 넘치던, 항상 다 가장 잘 할 수 있을 것 같던 마음이 최근 몇 년 사이‘할 수 있을까, 이 정도로 해둘까, 공연히 욕심부리는 건 아닐까, 분수를 모르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전같이 잘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앞서서 인터넷을 활용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게, 잘 안되는 게 너무 많다. 스마트폰은 더 하다. 때로 어제 일이 몽롱하고 뻔히 앞에 있는 것도 못 본다. 시야가 좁아졌다. 사람과의 관계도 너무 어렵다 (젊어서도 그러긴 했지만). 영화‘은교’에서 노시인은 말한다. ‘늙는다는 것은 나무로 된 옷을 입고 있는 듯이 불편한 것이다’라고.

지난번 일본에 딸네와 같이 갔을 땐 일본 공항에서 스마트폰에 저장해간 입국 QR코드가 안 떠서 그 많은 입국자 중 나 혼자 쩔쩔맸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라는 안내 팻말이 있었는데 무시하고 혼자 잘난 듯 앞장서 걸었던 것이다. 사위가 뛰어와 해결해 주었을 때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았다. 이번에 미국에 갈 때는 ESTA 신청이 잘 안 되어 애를 태웠다. 알고 보니 아주 간단한 일인데. 그뿐이 아니다. 출국하는 날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 앞에 긴 줄을 서야 하고, 검색을 위해 외투와 구두까지 벗고 x선 검사대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어야 한다. 검색대를 통과한 옷과 구두를 허겁지겁 찾아 입고 신고 가방을 챙기면 지문 확인과 사진 찍기로 이어지는 출국심사를 받는다. 번번이 여권을 보여주고 받아 넣어야 한다. 떨어뜨리지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너무 번잡하고 힘들었다. 비즈니스를 탔음에도 그 긴 비행시간은 지루하고 편하지 않았다. ESTA에 입국에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방역과 통관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인지 입국 심사 자체는 1분도 안 걸렸다. 그러나 심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왠지 불안하고 힘들었다. 앞뒤로 서 있는 젊은이들은 기다리는 일조차도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인데. 이래서야 코로나로 몇 년 전부터 벼르고만 있는 10일간의 아이슬란드 오로라 단독 여행을 해낼 수 있을까?

연구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것이 많고 일 속도도 느려졌다. 오기 전날 겨우 끝낸 쌀 과제, 야심 차게 출발했으나 데이터 작업과 모형작업이 기대했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시간에 쫓기며 지쳤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며서 점점 더 두려움과 무력감. 콤플렉스에 휘둘린다. 이것이 나를 우울하게 하고 민감하게 한다.

 

평탄한 인생, 넘치던 자신감은 가고

 

나는 어려서 나이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모두 걱정했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초등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잘했다. 그 후에도 대체로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것 같다. 아버님 뒤를 이어 농사를 짓는다며 농과대학을 들어가 학과를 가리지 않고 영농에 필요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시었다. 내가 결정한 일, 하겠다는 일에 토를 달지 않으셨다. 대학교 3학년 4학년 여름방학 한 달을 여수 앞바다 금오도와 연도에서 혼자 보냈다. 농장 일이 정신없이 바쁠 때다. 매일 새벽 4시면 오이 호박 등을 수확하는 일을 할 일꾼들이 오고, 그 일이 다 끝나야 아침을 드셨다. 그런데 나는 공부한답시고 한가롭게 남해 섬으로 갔다. 부모님은 언짢은 내색을 하시기는커녕 그 바쁜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소포로 보내주셨다. 필시 영등포시장을 휘 더듬어 사다가 힘들여 포장하고, 2킬로나 떨어진 우체국에 걸어가셔서 보내셨을 것이다. 그렇게 평탄하게 자라났다.

일본에서의 박사학위 과정은 즐거웠고 논문은 순조로웠다. 국제 유명저널에 연이어 실렸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연구하는 일은 늘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러기에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나는 만족했다. 아내도 나를 신뢰했기에 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거나 바가지긁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생활비가 적다.’‘그러니 어쩌란 말이냐’고 말씨름을 하기는 했지만. 아이들도 내 말에 귀 기울였고 잘 커 주었다. 나는 자신감이 있었고,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감은 줄어들고 매사가 두렵다.

 

남아있는 것에서 힘을 찾아야 한다.

 

역시 늙은 것이다. 아버님 말씀이 옳았다.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능력은 풍화되고 용기는 희석되고 있다. 심리적 위축과 이를 부정하려는 마음이 갈등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능력이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 별안간 나타난 것이 아니다. 느끼고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했을 뿐이다. 이 상황을 수용하고 극복해서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가야 한다. ‘초원의 빛’에서 말하듯 초원의 빛도 꽃의 화려함도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것에서 새로운 힘을 발견한다는 것이 작년‘동안거’의 다짐 아니었던가. 다시 한번 ‘초원의 빛’을 되뇐다.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s,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한때 그토록 눈부시던 광채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나니,

초원의 빛도 꽃의 광채도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남아있는 것에서 도리어 힘을 찾으리니;

 

늦어지고 있는 책, ‘농업과 정부’쓰는 일에 속도를 내자. 그리고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천천히 그러나 심혈을 기울여서 해내자. 일을 해야 두려움과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내가 주야장천 말하지 않았던가!

 

(2023. 02. 15) 

 

댓글
아이디 비밀번호

다음글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4] ‘고메똥골’에서 ‘소똥령이야기’로
이전글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2] ‘고메똥골’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