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GS&J 이사 서진교(KIEP 선임연구위원)

지금 세계는 새로운 통상질서를 향해 고심하며 여러 가지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 그보다 우리나라가 이 변혁에 어떻게 참여하고 대응할 것인가는 국가 운명과 연결된 중차대한 문제이다. 농업계는 이 변혁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략적 선택을 해야 최선의 방어를 하고 변혁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GS&J는 이를 위해 ‘WTO의 미래’, ‘CPTPP에 가입할 것인가’, ‘IPEF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 세 개 기둥으로 나누어 변화의 실체를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농업계의 슬기로운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이번에는 그 두 번째로 CPTPP에 대해 논의한다.

우리나라는 CPTPP 가입에 소극적이었다.

WTO 다자체제가 위력을 상실하자 많은 나라가 FTA, 특히 메가 FTA를 통해 자유무역의 이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였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이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구조이므로 수출시장을 넓힐 수 있는 곳에는 어디라도 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17개의 FTA를 체결한 것은 그러한 전략의 결과이다. 그러나 일본 등 태평양 11개 국가가 참여한 CPTPP 가입에는 소극적이었다. 일본 이외에 다른 CPTPP 국가와는 이미 대부분 FTA를 체결했고, 또한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어 CPTPP 가입의 이득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계, 부품, 화학, 자동차 등 제조업 강국 일본과의 시장개방 협상을 우리나라 제조업계가 우려한 것도 CPTPP 가입을 주저했던 이유이다.

CPTPP 가입에 소극적이었던 우리나라가 2021년 가입을 서둘렀던 것은 바이든 정부가 CPTPP에 복귀하리라고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CPTPP 복귀에 나서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CPTPP에 복귀할 가능성은 작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미국은 상품과 저임금에 기반하는 서비스의 시장접근 확대를 통한 이익이 크지 않으므로 CPTPP 가입의 이득도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의회도 시장개방을 통해 미국의 수출이 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수입이 늘어 중산층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가입을 전제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2021년 9월 전격적으로 CPTPP 가입을 신청하였다. 중국은 경제발전단계 상 국제사회로 나와 자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높이고, 팽창하는 제조업 수출시장도 넓혀야 할 단계이므로 앞마당의 CPTPP 가입은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일본 등이 중국의 가입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미국이 이를 부추길 수 있으나 거대한 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의 가입이 CPTPP의 가치를 한껏 높일 것이므로 결국 중국의 가입을 반대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하듯이 결국 경제적 이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는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이유로 극렬히 비난하던 사우디를 자존심을 접고 방문하여 치솟는 기름값을 낮추는 노력에 협력하기를 요청하였다. 유럽은 정치적으로 러시아를 맹비난하지만, 여론은 가치 추구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조기 종결하여 에너지 가격 급등에 의한 어려움이 빨리 끝나기를 원하고 있고, 결국 정치는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경제적 이득이 결국 사태를 지배하므로 일본, 호주 등도 종국에 가서는 중국의 CPTPP 가입에 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보다 중국이 먼저 CPTPP에 가입하면 일본 등이 중국 시장을 선점하게 될 것임은 물론 우리나라가 가입하려 할 때 가입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가입을 서두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나라 모든 농산물과 거의 유사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어 우리 농업이 어떤 가입비용을 치러야 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의 가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중국보다 먼저 CPTPP 가입을 서두르는 전략적 선택하는 것이 우리 농업으로서 최상의 방어 전략이 된다.

일본의 협상전략을 따르고, 피해보전방식의 대책은 접어야 한다.

CPTPP 가입시 핵심은 결국 협상조건이 될 것이다. CPTPP의 농산물 관세철폐율이 96.4%나 되지만 일본은 예외적으로 76.6%라는 낮은 양허를 확보하였다. 일본은 필경 수출경쟁력이 높은 공산품 분야에서 상대국에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였을 것이므로 우리나라도 국가별로 제공할 수 있는 반대급부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에 실패하면 농업에 주는 충격 물론 정치적 부담도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요는 일본에 버금가는 농업분야 양허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대책이다. 지금까지 FTA 대책은 피해를 예측하거나 사후에 피해를 추정하여 그에 상당하는 지원을 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농산물에 얼마의 피해가 나타날 것인가?

일본 이외의 국가와는 이미 FTA가 발효 중이어서 협상 결과에 따라서 추가적인 시장개방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가장 민감한 부분이 쌀인데, 호주는 쌀 관세화 과정에서 이미 수출 여력을 초과하는 국별 쿼터를 받은 상태라 추가개방으로 인한 이득이 작을 것이다. 쇠고기는 기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의 FTA에 의해 관세가 2025년에 10% 수준이 되고, 2029년에는 철폐되므로 추가 인하 요구의 실익이 작아 쟁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무역전환효과(예를 들면, 동남아산 돼지고기 수입이 늘어나면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이 감소하여 전체 돼지고기 수입은 크게 변하지 않는)가 있어 실제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CPTPP는 시장접근뿐만 아니라 검역 등 규범분야에서 WTO보다 높은 수준의 신속성과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과일 부문에 피해가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다만 검역의 경우 그 영향이 실제 어떻게 나타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이 어렵게 일본의 사과 시장을 뚫었지만, 아직도 미국의 대일 사과 수출실적은 미미하듯이 과일은 품질과 기호에 따라 선호에 차이가 크고 안전성을 중시하므로 수입품과 국내산과의 대체성이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농산물은 모든 농산물을 대체하고(예를 들면 닭고기 수입이 증가하면 쌀 소비도 감소), 한 품목에 대한 영향이 또 다른 품목의 영향을 촉발시킬 수 있으므로(예를 들면 양파 수입 증가로 양파가격이 하락하면 다음 해 마늘 면적이 증가하여 마늘 가격이 폭락하는) 피해를 계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같이 품목별 피해 추정은 불확실성이 크므로 이에 근거하여 지원하는 방식은 피해와 대책이 어긋나거나 도리어 시장을 교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불확실한 피해 예상액을 기초로 이를 보상하는 방식의 대책을 접어야 한다. 사후 피해 추정도 부정확하므로 피해보전직불제 중심의 대책에 의존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더욱이 FTA 피해대책 예산이 결국 기존 예산의 명칭을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아 총농업예산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추정에 의존하는 대책에 대해 농가의 불신이 매우 크다.

농업계의 선택: 근본적 농정 전환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