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이정환

윤석열정부 농정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처음부터 분명하지 않았지만, 올해 쌀값이 작년보다 무려 25%나 하락하자 쌀값 대책에 모두가 매몰됐다. 정치권은 자동격리제, 정부는 대체작물 지원을 대책으로 꺼내 들었다. 이런 대안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바른 답이 나오려면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렇다면 불편한 현실은 무엇일까?

쌀값 작년보다 25% 하락하자 정치권·정부 모두 쌀값대책에 매몰돼

첫째, 소비 감소로 쌀값 하락추세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쌀 소비정책에 공을 들인 일본도 이를 피하지 못해 2005년 이후에만도 1인당 소비량이 14%나 감소했다. 소비가 감소하면 생산이 줄어야 하고 생산이 감소하면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억제하려는 정책은 비용만 들고 결국 실패한다. 정부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2005년 이후 공공비축용 이외에 모두 350만톤을 매입했다. 이를 사료용 주정용으로 처분하며 방대한 재정부담을 감수했다.

벼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대체작물 지원 정책에도 수천억원을 들였다. 이런 노력과 재정부담에도 2005년 이후 수확기 실질가격은 23%나 하락했다. 일본도 사료용 벼와 대두 등 전략작물 50만ha에 연간 3조원 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쌀 실질가격은 2005년 이후 24% 하락했다.

둘째, 정부의 시장개입은 쌀가격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2005년 이후 2년에 한번꼴로 시장격리를 단행했으나 역계절진폭은 늘어나고 가격변동성은 두배 이상 증폭돼 농가와 미곡종합처리장 경영을 위협했다.

이제 수급 조절로 가격을 조정하려는 정책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문제는 농가가 감당해야 하는 가격변동 위험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평년 수준의 수취액을 보장하는 가격위험 완충장치를 확립해야 한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주요 농산물에 대해 기준가격과 당년 가격과의 차액을 보전하는 제도가 농정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일본도 2000년대부터 쌀 맥류 대두 등에 대해 평년 수입액과 당년 수입액의 차이를 보전해주는 제도를 시행한다. 주요 채소에 대해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이런 제도를 시행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가격변동 위험을 농가가 고스란히 감당하는 선진국은 없다.

문제는 쌀 소득감소를 상쇄할 수단이 있는가이다. 우선 벼 재배지에 다른 작물을 재배해 소득을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콩이나 밀을 대체작물로 정해 보조금을 주는 정책은 효과도 문제지만 계속 재정부담이 늘어나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대체작물이 반드시 정부가 지정한 몇개 특정 작목일 이유가 없다. 2005년 이후 논 29만ha가 밭으로 전환돼 채소 과일 등이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도 논 8만ha에 벼 이외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몇몇 특정 작물에 보조금을 주어 재배를 늘리려고 하기보다 주요 농산물에 폭넓은 가격위험 완충장치를 도입하자. 배수 개선 등 경지 여건을 정비하고 가공 유통업체와 계약재배도 유도하자. 그렇게 여건만 개선하면 정부가 말하지 않아도 농가가 각각 최선의 대체작물을 선택할 것이다.

생태환경을 보존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활동이 농가의 추가소득 기회가 되도록 하고 이를 계속 늘려야 한다. 농가는 농산물생산과 동시에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활동으로 추가소득을 얻고, 생태환경이 보전된 농촌 공간에서 국민의 삶의 질은 높아진다. 이것이 진정한 공익형 직불이고 도농상생이다.

국민밥상 지키면서 생태환경도 지키는 포괄적 농정계획 나와야

정부의 쌀가격 조정 시도 중단, 폭넓은 농산물 가격위험 완충장치 도입, 선택형 공익직불제 확대를 연계해 국민 밥상을 지키면서 생태환경을 지키는 포괄적 농정계획이 나와야 하고 이를 법률로 보장하는 신농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위원회(농특위) 위원장이 새로 임명됐다. 농업기본법에 규정된 '농업 농촌 식품산업 기본계획'을 내년 초에는 발표해야 한다. 농식품부 기재부 대통령실 농업계가 지혜를 모아 함께 '새 술'을 담을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