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원장 서진교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쌀 의무수입 물량의 축소 조정 가능성을 놓고 국회에서 여러 발언이 나오고 있다. 발단은 일본의 에토 다쿠 농림수산상(장관)의 기자회견 발언으로 보인다. 에토 장관은 1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쌀 최소시장접근(MMA·Minimum Market Access) 물량 77만t(현미 기준) 수입에 따른 재정 부담을 관련 국가에 설명했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상황을 이해하는 국가도 일부 있었으나, 결론은 현 수준의 수입 물량을 유지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에토 장관은 험준한 장애물이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했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를 향후 과제로 삼고 계속 도전해보겠다는 포부를 정치인답게 드러냈다.

에토 장관의 이러한 발언 배경에는 일본의 지속적인 쌀 소비감소가 있다. 일본의 MMA 쌀 77만t은 WTO 협상 당시 소비량인 1065만t(1986∼1988년 평균)의 7.2%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관세화 전환에 따라 설정된 것이다. 이후 쌀 소비가 감소하면서 2023년 기준 쌀 총수요는 804만t으로 협상 당시의 75% 수준이다. 쌀 소비가 줄었는데도 수입은 과거 기준에 따라 계속되니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MMA 쌀은 일부를 제외하고 사료나 가공용으로 판매돼 매매에 따른 손해가 계속 증가한다. 보관료를 포함한 MMA 쌀 운용에 따른 재정 부담은 2022년 기준 674억엔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무수입 물량을 설정할 당시 우리나라의 밥쌀용 쌀 소비량은 513만t이었다. 2023년 기준 밥쌀용 소비량은 290만t으로, 기준연도 소비량의 57%에 불과해 일본보다 쌀 소비 감소폭이 훨씬 크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관세화를 20년 유예하면서 연간 의무수입 물량이 초기 20만5000t(2004년 기준)에서 40만8700t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그에 따른 재정 부담도 일본에 못지않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WTO 쌀 의무수입 물량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다만 쌀 의무수입 물량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이는 의무수입 물량을 줄이는 협상에 상당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 말고도 시기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라 한국의 움직임이 자칫 미국의 농산물 개방 압력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의무수입 물량 재협상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이미 수입하기로 약속한 물량을 한국의 사정을 이유로 바꾸는 것이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 원칙적으로 WTO의 모든 회원국과 양자협상을 해서 서로 만족할 만한 합의에 도달해야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협상 과정에서 쌀 의무수입 물량을 줄이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상대방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그 내용이 어떻게 될지는 협상 전에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 쌀을 수출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한국이 어렵게 확보한 높은 쌀 관세를 대폭 낮춰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쌀시장에 관심이 없는 국가라도 이를 기회로 그들에게 수출 여력이 있는 쌀 외에 다른 농산물의 관세를 낮추든지 아니면 무관세 물량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대응하기 쉽지 않다. 쌀 의무수입 물량을 줄이는 대신 쌀의 관세를 낮추는 것이 벼농가에 이익이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쌀 의무수입량을 줄이고 대신 다른 농산물 관세를 낮추거나 무관세 물량을 늘리는 것이 한국 농업 전체에 이익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협상 이전에 쌀을 포함한 한국 농업 전체의 이해득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품목간 이해가 갈리는 상황에서 과연 벼농가와 다른 농가 간 개방에 대한 타협과 합의 도출이 가능할지도 난제다. 결국 쌀 의무수입 물량 재협상은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농업계 내부의 합의가 없다면 재협상 이야기는 이해 당사국에 꺼낼 수조차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쌀과 관련된 이슈 제기는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특히 앞으로 6개월 정도는 상호주의 관세를 부과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한국의 통상이익을 보호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일단 농업부문은 상호관세에 대해 비교적 탄탄한 대응 논리가 있다. 농산물에 관해서는 한국이 미국에 무역 적자국이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농산물 교역은 미국이 한국에 75억달러의 흑자를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한 관세 부과는 한국 농산물에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실제 농산물 수입 관세를 보더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대부분의 관세가 거의 철폐돼 미국과 비교해볼 때 특별히 관세가 높은 품목은 없다. 일부 계절관세를 유지하는 과일류도 5년 후인 2031년부터 철폐된다.

약점은 한·미 FTA에서 예외였던 쌀이다. 따라서 미국이 쌀을 이용해 다른 농산물의 무관세 쿼터를 요구할 수 있고, 특히 비농산물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협상용 카드로 쌀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국내에서 쌀을 이슈화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국익은 물론 농업부문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 부담이 막대한 쌀 의무수입량 이슈가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쌀 이슈는 큰 틀에서 국익과 시기를 저울질하며 전략적으로 신중히 다뤄야 한다. 일본도 재협상을 한 것이 아니라 MMA 쌀 수입에 따른 재정 부담을 이해 당사국에 설명한 것뿐이다. 특히 에토 장관의 기자회견 이후 관련 보도가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고 언론도 더이상 다루지 않는 점을 보면 일본도 앞으로 있을 미국과의 협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쌀농가를 위한다면서 정치적으로 섣불리 결정한 정책 오류들을 오늘날 또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이 진정 한국 농업을 위한 길인지 치밀하게 따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