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이사 배종하 (전 FAO 베트남사무소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하나 쌓아온 국제 무역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룰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관세 수준을 약속하고 그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예측 가능한 무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WTO 회원국들은 다자 무역협상을 통해 관세를 계속 내려왔으며, 그 결과 선진국들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사실상 관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오래전에 평균 관세율이 10% 이하로 내려갔다. 농산물은 공산품에 비해 관세가 높지만 이 또한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점진적으로 낮춰왔다. 지난 80년 동안 많은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가고자 노력해왔고 실제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이유는 자유무역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 후생을 최대화하기 때문이다.

2일 내놓은 미국의 관세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관세와 관련된 정책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바꾸니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정책을 바꿀 때에는 충분한 검토를 하고, 바뀌는 정책들에 대해서는 미리 알려 상대방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게 당연한데 내일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니 감당을 할 수 없다.

9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관세 인상을 90일 유예하며 이 기간 동안 각국과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제조업체들은 관세가 올라 수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 생산을 줄이려는 계획을 세우다가 90일 동안 유예된다고 하니 이 기간 동안 수출을 최대로 하기 위해서 오히려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일인가?

90일 동안 많은 국가들과 협상을 완료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협상 타결을 위해서는 여러차례 만나야 하는데 어떻게 90일 동안 많은 국가와 협상을 끝낼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미국과 협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고, 상대국은 이 거대한 시장을 잃을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기 어렵다. 식당 주인이 매상을 가장 많이 올려주는 손님이 음식에 불만을 늘어놓으면 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지구상 어떤 국가도 미국과 협상을 할 때에는 기울어진 테이블에서 협상을 하게 된다.

둘째로 미국의 정보력은 엄청나다. 미국은 상대방의 약점, 민감한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협상에서 최대한 이용한다.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 당시 우리 내부 극히 소수만이 공유한 정보를 미국이 알고 있어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끝으로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USTR은 소수 조직이지만 그들은 직업이 협상인 사람들이다.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조직으로 그들은 전술과 전략이 뛰어나고 노회하다. 그리고 협상에 앞서 우리가 섣불리 미국이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 떠드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의 카드를 미리 보여줘 협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우리의 민감한 부분을 자극해 다른 것을 크게 얻으려 하는 전략에 역이용당한다. 우리가 가진 카드를 노출하지 않고 상대방의 노회한 전략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협상의 기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