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nJ 이사 배종하 (전 FAO 베트남사무소장)

미국이 주요 국가들과의 무역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인 상호관세는 기존의 무역관행을 벗어나는 부당한 것이지만 미국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많은 국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협상을 타결했다. 그런데 협상 시한을 넘기면서 기본 골격에도 합의하지 못한 국가가 있으니 인도와 중국이다.

중국의 경우 이미 수년째 미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어 합의가 쉽게 이뤄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양측은 지금도 협상을 계속하고 있으며 다행히 최근에는 진전이 있었다는 언론보도가 있다. 하지만 인도와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2월 모디 인도 총리가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훌륭한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인도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고 실제로 7월초까지만 해도 양국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하면서 미국은 일방적으로 인도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에다 러시아 원유 수입 등 악재가 겹치면서 상호관세는 50%로 뛰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첨단 제조업을 일으켜 인도를 미국·중국 다음의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만든다는 모디 총리의 원대한 계획은 위기를 맞고 인도 루피화의 가치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과 인도의 관세협상이 난항을 겪은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가 농산물, 그중에서도 유제품이다. 미국은 모든 미국 상품을 무관세로 수입할 것을 주장하며 농산물과 유제품도 개방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인도는 농민의 생계와 직결된 농산물과 유제품 개방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종교적 이유로 육류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 인도에서는 달걀과 유제품이 중요한 단백질원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우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국가다. 하지만 인도의 낙농은 농가당 겨우 젖소 2∼3마리를 키우고 있으며 가축 구입과 사육은 정부 보조에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낙농품을 무관세로 개방하면 영세한 인도의 낙농업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빈곤 인구 비율이 높은 인도의 농민들은 정부의 보조와 가격지지 요구가 강하며 이를 위해 단체 행동도 마다 않고 있다. 2020년 농민 수백만명이 농산물 마케팅 및 가격제도를 개혁하려는 정부의 농업법안에 반대해 법안을 폐지했고, 2024년에도 북부지역 농민들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부채 탕감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같은 현실 속에 힌두교도와 농촌이 지지 기반인 모디 총리는 미국의 농산물 개방 요구에 반발하며 농민들의 이익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 결과 8월말 예정됐던 협상은 무기한 연기됐고 상호관세는 50%까지 인상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인도로서는 엄청난 고난과 희생이 따르지만 농산물 개방 요구는 정치적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기에 모디 총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인도의 반발이 워낙 커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인도를 무시할 수 없어 타결책을 찾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국가와 크게 차별되는 결과를 내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과연 인도가 미국의 개방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지, 미국이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인지 모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래저래 인도에게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