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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3.04.11
제목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5] 지금 내가 안반데기에 살고 있을지도 
첨부파일
 

* 이정환 이사장의 겨울 산골 살기 다섯번째 에세이입니다.

 

 

「이정환의 겨울산골 살기 5」

지금 내가 안반데기에 살고 있을지도

    

 

GS&J 이사장 이정환

 

 

‘나이가 들어서요’

 

이번 ‘동안거’에서도 안반데기를 지나칠 수 없다. 마지막 3박은 안반데기다. ‘소똥령이야기’주인과 차 한잔을 마시고 안반데기로 달렸다. 일단 고성 쪽으로 가서 동해안을 따라 7번 국도 거리 풍경을 구경하며 강릉까지 내려왔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달리는 게 구경거리가 많아 좋다. 강릉에서 백두대간로를 거쳐 왕산로를 따라 성산면에 오면 잊을 수 없는 그 맛집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대학 동기들 부부가 용평에서 안반데기를 거쳐 속초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들려 점심을 먹은 곳이 어떤 우체국 바로 앞에 있는 밥집이었다. 모두 이구동성 ‘정말 맛있다’였다. 그 생각이 나서 오늘 점심은 그 밥집에서 먹기로 작정하였으나 상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찾을 수 있을까? 천천히 운전하며 두리번두리번, 그런데 어느덧 ‘안반데기길’이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지나친 것이다. 차를 돌려 네이버 지도에 우체국을 찍으니 ‘구산우체국’이 나온다. 15분쯤 왔을까 우체국이 나타나고 앗사! 바로 앞에 ‘늘푸른쌈밥’이란 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현수막! ‘그동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년 12월 30일로 문을 닫습니다.’아이구, 왜 문을 닫았지. 몇 년을 벼르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그나저나 어쩌나, 무얼 먹지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건너편에 보리밥집이 보였다. 젊은 부부로 보이는 사람 둘이서 하는 집인데 나름 깔끔하고 맛도 나쁘지 않다. 밥값을 계산하며 ‘늘푸른쌈밥집’이 왜 문을 닫았느냐고 묻자 그 집 주인 할머니가 나이가 많이 들어 접었다고 한다.‘아, 나이가 들어서요’ 남의 일 같지 않다.

 

안반데기에서 꿈을 꾼다.

 

안반데기 하늘펜션의 모습은 여전하고 작년 묵었던 방을 잡으니 모든 게 친숙했다. 작년에는 눈이 없는 황토 밭이랑이 하늘을 향해 뻗어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었지. 그리고 불현듯 아버지 생각에 왈칵했었지(산골여행 1부 링크). 올해는 눈 덮인 밭이 넓게 펼쳐져 아름다웠다. 그러나 넓은 밭이랑은 역시 나를 잔잔한 감상에 젖게 한다.

 

 

낙산사가 어머니를 추억하게 한다면 안반데기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아버지는 더위를 엄청 힘들어 하셔서 더운 여름날에 밭에 나가셨다 오시면 ‘아이고 덥다’를 연발하시며 쩔쩔매곤 하셨다. 에어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강원도 시원한 곳에 땅을 사서 내가 대학 졸업하면 당신은 거기서 농사짓고 시흥 농장은 내가 맡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 기억컨데 정선 평창 부근을 표시해 놓은 지도책을 펴놓고 여기가 어떻겠냐고 하셨다. 평창 정선을 가려면 꼬박 하루를 잡아야 할 만큼 아득한 곳이던 시절, 나는 꿈같은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하며 그냥 흘려들었다. 그때는 아버님이 꿈을 꾸셨겠지만, 이번엔 내가 꿈을 꾼다. ‘만약 내가 흘려듣지 않고 반색하며 달려들었다면? 여름 채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그때까지 화전민 밭이었던 안반데기에 고랭지 채소가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채소 농사가 특기셨고 여름 더위를 질색하시던 아버님이 1,000미터 고지 여기를 아셨다면 꽂히셨음에 틀림없다. 채소 농사 실력과 장사수완을 갖추셨으니 대박이 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나는 안반데기에 살고 있던지, 적어도 여기에 큰 농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해돋이와 석양, 그리고 개성공단, 감동에 젖는다.

 

해 뜨는 시각은 7시 30분. 도착 다음 날 아침 이에 맞추어 일어나 강릉시와 평창군을 가르는 피덕령 쪽으로 서둘러 걸었다. 피덕령 꼭대기로 올라오면 카페 와우안반데기가 있고, 그 앞을 지나자마자 해돋이 전망대 가는 길이 보였다. 동쪽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길에 눈이 쌓여 조심조심 동쪽 하늘과 눈길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참이나 걸었다. 해돋이 전망대는 보이지 않고 해는 곧 솟아오를 듯. 그런대로 조망이 좋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눈밭 너머 넓게 펼쳐진 능선과 그 위에 수많은 붉은색이 수놓은 망망한 하늘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작년 보았던 능선의 모습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장관이다.

 

 

 해돋이의 감동을 안고 ‘개성 1,200일 그 빛과 그림자’를 펴들었다. 농림부 차관을 역임하고 개성공단 초대 이사장이었던 김동근씨가 쓴 책이다. 그는 대학 학과 동기여서 진즉 한 권 받았지만 끼고만 있다 이번에 챙겨왔다. ‘개성공단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표지 타이틀이 말해 주듯 그 당시 남북이 엄청난 일을 해낸 역사였다. 수백만 명이 죽는 참혹한 전쟁과 50여 년 정말 수많은 다툼과 갈등을 넘어 북한 땅 깊숙한 곳에 공단을 건설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한다.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을 해낸 것이다. 상호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장 터를 잡고 사무실을 짓는 일부터 물을 공급하고 오폐수를 처리하는 일까지 남북이 서로 눈치를 보고 경계하며 합의해야 한다. 더욱이 남한의 인력과 물자가 휴전선을 수시로 넘나들어야 하고 전기를 끌어들이고 자유로운 통신선을 열어야 한다. 인력관리, 임금지급 방식 등 예민한 문제가 한두 가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다 합의한다. 전혀 생소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는 북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밥 먹는 사이 경계심이 풀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는 과정은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앞으로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몇 편이라도 나올 것 같다.

이 일을 해내고 그 역사를 담담히 풀어낸 동근이가 너무 자랑스럽다. 그는 일 처리 능력도 뛰어나지만, 평소 온화하고 매사 절제하며 대인관계가 스마트하다. 내가 대학교 1학년 여름 앞서 말한 무전여행으로 화진포에서 부산까지 가서 당시 부산 살던 동근이를 만났다. 그는 그때 이미 그저 미소로 반가움을 표하며 절제하는 사나이였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그가 개성공단 이사장을 맡게 된 연유를 설명하면서 “인간관계가 얽혀 살다 보니 인연이 관계를 만들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열매를 맺는다”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제목을‘그중에 그대를 만나’로 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비록 지금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으나 개성공단이 남북에 신뢰의 씨앗을 심었고 그 씨앗은 지금 휴면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힘차게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해돋이 모습은 보았지만 높은 산중에서 보는 해지는 모습은 어떨까. 오늘 날씨도 맑다. 해지는 시각이 6시 30분이라고 한다. 역시 해돋이 전망대를 향해 나섰다. 근데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내가 아침에 갔던 길 바로 위쪽으로 해돋이 전망대 가는 길 이란 표시가 있는 것 아닌가! 그 길은 눈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내가 아침에 갔던 길은 고랭지 밭 가운데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전망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구나. 맙소사 두 번이나 갔던 길인데!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이다. 변명하자면 안반데기 펜션에서 피덕령에 오면 보이는 첫 번째 길이 오늘 아침 간 길이고 그 위쪽 길이 해돋이 전망대 길인데 어두워서 두 번째 길을 보지 못한 것이다. 순간의 부주의로 눈 덮인 위험한 길을 어기적거리며 걸어서 엉뚱한 데서 해돋이를 본 것이다. 사는 게 그렇다. 순간의 생각, 인지, 선택에 따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잘 안 난다. 이를 피하려면 모든 것을 넓게 보아야 한다. 공간의 폭이든 사고의 폭이든. 그러나 이미 3편에서 고백했듯이 나이 들수록 시각이 좁아진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래도 오늘 아침 해돋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위로하며 석양을 보기 위해 달렸다. 해는 용평 발왕산 너머로 진다. 저녁노을은 구름이 적당히 있어야 제맛, 오늘도 화가가 붓으로 텃치하는 방식으로 그린 듯 구름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펼쳐있다. 그 구름이 석양을 받아 서쪽 하늘이 형형색색, 커다란 화폭을 이루었다. 해돋이와 같이 화려하지 않으나 해돋이에서 느낄 수 없는 정취가 그만이다. 안반데기에서는 이렇게 해돋이와 석양을 모두 볼 수 있어 좋다. 오늘 밤에는 별도 보자.  

 

 

꿈을 꾸는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

 

다음 날 펜션 주인 남자가 찾아왔다. 내가 5년 전 처음 왔을 때 지금은 없어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막걸리 한잔을 한 게 인연이 되었다. 작년에 왔을 때도 엄청 반겨주었다. 아들이 아버지 영농법인에 합류하여 사업은 잘하고 있지만 체험농장을 꾸며 나가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집 주변 밭이랑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고 과실 나무도 심어 경관 있는 농장을 만들려고 한다. 농산물도 판매하는 다각화 경영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빌며 내가 여기에 오면 농사를 좋아하시고 나에게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으라고 하셨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하자, 그는 더욱 신이 나서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농사짓는 일이 물론 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만 그 생각만으로는 못해요. 몇 해 전 배추를 심고 가물어 애를 때우다 지하수 물을 퍼올려 흠뻑 주었죠.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문을 열고 배추밭을 바라본 순간 깜짝 놀랐어요. 푸른 금빛 물결이 넓은 배추밭을 일렁이며 흐르는데 그 장관은 정말 황홀했어요.”

 “언젠가 봄에는 아직 배추를 심기 전 황토밭이었는데 이른 아침 밭을 정리하러 문을 나서자 황토 밭이랑에 황금빛 물결이 흐르더라고요. 순간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죠. 농사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런 환상까지 보이나 봐요.”

 “몇 년 전 여기서 좀 떨어진 배추밭에서 종일 일하다 너무 피곤해서 저녁나절 밭 구석에 있는 농막 야전침대에 누었어요. 차로 5분이면 집에 올 수 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더라구요. 개구리가 소리가 정말 시끄러운데 그 소리가 얼마나 평안함을 주는지 말할 수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잔 일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편안함이 신기해요”

그런 경지에 턱도 없지만 나도 주말농장에 배추를 심고 다음 주 갔을 때 일주 사이에 몰라보게 자라나 땅을 덮고 있는 모습에 감격이랄까 뭐 그런 것이 밀려오곤 한다. 햇빛의 힘, 땅의 기적이다. 우리는 그 기적을 먹고 산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의기투합하여 내년에 다시 올 것을 약속했다. 잔설이 수놓은 황토밭을 떠나며 아버지와의 오랜 믿음을 배신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다시 밀려온다. 1월에 뉴욕으로 달려가 만난 누님은 내가 아버지가 바라시던 대로 농장을 물려받지 않았지만, 농업을 연구하는 길을 걸어온 나의 선택을 지지하고 만족하셨을 것이라고 위로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슬프다(시베리 아여행기 12부 링크).

(2023.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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