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은 쟁점을 바꾸고 정부는 관점을 바꾸자

GSnJ 이사장 이 정 환

   이제 고통스러웠던 한해를 접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렇게 값비싼 비용이 농업인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었는가? 냉철히 따져보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인가? 깊이 고뇌해 보자. 그리고 정부는 왜 사태가 여기에 이르렀는가? 성찰해 보자.

   먼저 농업인은, WTO와 FTA에 정면으로 저항하면 실익은 적고 높은 비용만 치르게 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농산물 무역의 자유화는 지금 어느 나라도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대세가 농산물 교역이 완전 자유화되는 세상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20세기 100여년에 걸친 보호주의의 실험 끝에 농산물 무역도 자유화가 불가피하다는 합의에 도달한지 이제 10여년이 지났을 뿐이다. 따라서 앞으로 상당 기간 농산물 무역의 자유화는 세계적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세계화는 국제적 대세임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무역에 의해 국부를 창출하였고, 앞으로 자유무역을 통해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선진통상국가’ 비전이 국가 생존전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DDA는 큰 폭의 관세 감축에 합의할 것이고, 거대 경제권과의 FTA도 체결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려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기 위한 조건과 새로운 농업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조건과 비전에 관해 정부와 논의하고 다툼해야 실익이 있고 일반 국민의 이해와 지지도 받을 수 있다.

   한편, 정부는 경쟁력 있는 농산물과 농업인을 선택적으로 지원하면 빠른 시간에 구조조정을 이루어 농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대다수 농업인은 농사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고 그래서 강인하게 농업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무역 자유화의 최대 이해 당사자는 농업인이며 그래서 그들이 이에 저항하는 것은 자연스런 선택이므로 농업인의 이해와 동의 없이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동반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무역 자유화의 필연과 농업인의 현실을 조화시키려면 ‘구조조정을 파는 농정’에서 ‘농가소득안정을 파는 농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쌀 농업에 도입된 소득보전제도에 비록 문제점이 있지만 앞으로 보전 작목, 보전 대상, 보전 방법, 보전 수준에 관해 충분히 논의하여 적정한 소득안정 기반위에서 지역간 농가간 경쟁을 통해 서서히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물론 쌀 등 몇 가지 매우 민감한 농산물에 대해서는 WTO와 FTA에서 예외적 조치를 반드시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제 농업과 농촌은 ‘건강을 파는 산업’, ‘시간을 파는 산업’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건강을 지키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건강과 시간을 파는 산업이 첨단산업 못지않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이 건강한 식생활을 보장하는 산업으로 소비자의 확실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수입농산물은 물론 의료·건강 용품 산업과 경쟁하는 산업이 될 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 수확 후 처리, 유통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농촌과 농업이, 도시민이 즐겁게 찾아오는 공간이 된다면 수입농산물은 물론 레저·스포츠산업과 경쟁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책은 농촌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가꾸는데 초점을 맞추도록 개혁되어야 한다.

   새해부터 농업인은 쟁점을 바꾸고 정부는 관점을 바꾸자. 그래야 비용을 적게 치르면서 모두가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