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문제, 이제 근본적 해법 찾아야

GSnJ 이사장 이정환

  이번 쌀협상비준 후속 대책에도 어김없이 부채대책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농가 부채대책은 1987년 ‘농어가부채경감대책’이 발표된 이래 중요한 고비마다 시행되어 지금까지 줄잡아 10번의 부채대책이 추진되었다. 이제까지 부채대책에 수십조 원이 투입되었고 이차보상 등에 매년 5-6천억 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의 농가 부채문제는 급격한 시장개방과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대책 자체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문제는 왜 부채대책이 연례행사처럼 반복 되는가? 이런 부책대책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이제까지의 부채대책은 이자율 감면과 원금 상환연기를 골자로 하였으므로 부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잠복할 뿐이었다. 따라서 상환유예기간이 끝나면 다시 더 큰 문제로 되살아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채문제의 핵심은 부채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능력이 없는 농가의 문제이다. 이런 농가들은 희망을 잃고 절망하여 몸부림칠 수밖에 없으므로 치열한 정치문제화 된다. 이러한 농가들에게 이자율을 낮추고 상환을 연기하여 주면 당장의 부담은 다소 줄어들지만 문제의 근본적 해결엔 큰 도움이 안 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데 모든 농가에게 이자를 감면하고 상환을 연기하여 주기 위해 거액의 재정자금은 계속 들어간다. 과연 부채대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연이은 이자율 감축으로 금리의 가격기능이 거의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정책자금의 금리는 1.5%로 떨어졌고 상호금융 대출금의 이자율도 3%까지 떨어졌다. 최근 상호저축은행에서는 이율이 6%를 넘는 예금상품을 선보이고 있고 일반 은행권에서도 5%를 넘는 상품을 앞 다투어 내놓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누가 원금을 상환하려 하겠는가? 상환기피를 막기 위하여 원금의 일부를 상환해야 유예해 준다든지 조기 상환에 대해서는 이자를 더 깎아 주기로 하는 등의 고육지책을 쓰고 있으나, 결국 자금 능력 있는 농가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뿐이다.

  농가부채 대책은 상환 능력이 없는 농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상환능력이 없는 농가 중에는 뜻밖의 시장개방과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상환할 수 없을 만큼 부채가 늘어났지만 이 굴레만 벗어나면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는 농가도 있고, 경영 정상화를 포기한 농가도 있을 것이다. 이런 농가들에 대해서는 원금의 탕감까지를 포함하는 과감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도저히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농가는 그 부채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에 앞서 해당 농가는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처분한다는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 경영정상화를 원하는 농가라면 농지은행에 재구입 조건부 농지양도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자율은 시장 금리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높여 가격기능을 회복하도록 하고 더 이상 일률적인 상환 유예는 하지 말자. 이 때 뉴질랜드와 같이 이자율을 높이는 만큼 원금 규모를 감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가의 이자 부담은 변하지 않고 이자율 상승으로 원금 상환이 촉진되면서 부채 규모의 감소로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농가 경영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개방으로 인한 충격은 소득보전제도로 대응하고 경쟁력은, 이자율을 포함한 모든 가격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조건 아래서 농가의 창의적 노력과 지혜에 의해 향상될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짊어지고 있는 부채문제를 근본적으로 털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부채문제가 또다시 정치문제화 되고 재정자금을 빨아먹으며 우리 농업을 병들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