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액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GSnJ 이사장 이 정 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어 농업계는 유례없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그러나 불안감을 딛고 서서 매우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여 현명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우선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나라 농업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집중되면서, ‘피해가 많다고 하는 사람은 우리 편이고 적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적’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피해 규모가 크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따져 보자. 첫째, 사람들은 농업의 피해가 많다고 해야 협정체결을 저지하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업의 피해가 많다고 주장을 하더라도 비농업 부문이 얻는 이득보다 크다고 이야기 하기는 힘들다. 물론 쌀의 관세를 철폐하는 경우에는 농업의 피해규모가 너무 커지므로 정부도 당연히 협정 체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쌀을 예외로 하는 한, 설사 현재 회자되고 있는 피해액 추정치가 상당 폭 수정되더라도 국가발전 전략의 차원에서 추진되는 협상의 필요성을 뒤집는 근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총 피해 규모가 국내대책의 규모를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총 농업예산 규모에 비례하여 농업문제가 해결되는가? 예산은 계산방식에 따라 증액 규모가 달라 보이고 사용방법에 따라 효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잘 말해 주고 있다. 농업계는 ‘농촌에 백조 원이 넘는 예산을 퍼 부었는데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비판에 얼마나 시달려 왔던가. 총액을 얼마나 증액하느냐보다 피해를 본 농가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곳에 쓰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특정 품목을 생산하는 농가 입장에서는 그 품목의 피해 규모가 크다고 해야 관세 철폐에서 예외 혹은 유예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 규모에 관한 정보는 그 농사를 계속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정보가 되므로 피해가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지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2000년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앞두고 암소를 앞 다퉈 도축하여 사육농가의 피해는 물론 한우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졌던 것은 좋은 사례일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농산물별 생산 규모가 명백히 밝혀져 있으므로 특정 품목의 피해액을 상당 폭 늘리려 해도 피해의 순서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품목단체는 소관 품목의 피해를 크게 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피해의 추정규모에 따라 지원대책이 결정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액에 집착하다보면 결국 단체간의 갈등 요인으로 발전할 우려도 있다.     

  여기서 정부는 먼저, 예외조치를 받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와 그렇지 않은 품목을 생산하는 농가에 돌아가는 혜택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즉, 예외조치로 국경보호의 혜택을 받는 품목은 그만큼 국내 대책의 혜택이 적어지게 해야 한다. 동시에 품목별 지원규모가 피해 추정규모에 따라 사전에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액의 추정은 많은 불확실성과 오차를 내포할 뿐만 아니라 피해액 늘리기 경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농가단위의 소득보전직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품목별로 균형 잡힌 소득보전제도를 폭 넓게 도입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오랫동안 이 방법에 의존하여 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농가는 피해액 집착에서 벗어나 생산물의 품질과 안전성, 그리고 유통에서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