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갈 길 먼 양정, 원칙으로 돌아가야

GSnJ 이사장 이 정 환

  고슴도치와 여우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고슴도치가 이긴단다. 왜냐하면 고슴도치는 싸움의 원칙에 따라 철저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때를 기다리는데 여우는 가진 꾀를 다 쓰다가 제 꾀에 넘어가 쓰러져 버리기 때문이란다. 물론 썰렁한 개그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고 꼬여 있을 때 이를 이런 저런 꾀로 풀려고 하지 말고 원칙으로 돌아가 해법을 구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의 양정제도 개편은 ‘혁신’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고, 소득문제는 직접지불로 해결하며, 600만석을 비축하되 시가로 사들여 시장의 가격결정을 왜곡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혁신을 통해 첫째, 쌀 가격도 수급에 따라 결정됨으로서 생산과잉이 시장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고, 둘째, 과거에는 대외협상과 정책변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가격하락의 피해가 고스란히 농가에 귀속되었으나 이제는 정부와 농가가 분담하게 되었다. 이것은 쌀 산업의 논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양정개편에 대한 비난과 불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어떻게 고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  

  첫 번째 혼란은, 공공비축미 중 포대벼는 전국 평균가격으로 사들이고 산물벼는 그 지역 시가로 매입한 결과 정부 매입가격이 같은 지역에서 이원화 되었던데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대안을 이야기가 있지만 ‘공공비축미는 비축하기 위해 사들이는 것’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면 해답은 포대수매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임이 자명해진다. 산물수매는 다음 해 그 지역조합에 곧바로 양도되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비축미 확보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농가가 산물수매를 필요로 한다든지 산물수매가 품질향상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것은 공공비축제의 입장에서 보면 부수적인 사안이다.

  두 번째 혼란은 포대벼를 전국 평균가격으로 정산한 결과 지역에 따라서는 시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매입한 것이 되었다는데 있다. 정부가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인다는 점에서 과거 수매제와 같아져 버린 것이다. 그러자 우선지급금을 높여서 시장가격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공공비축제의 목적을 완전히 뒤엎는 발상이다. 이 문제도 ‘매입가격은 시가로 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방법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세 번째 논란은 현재의 변동직불제가 현장의 가격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 있다. 정부는 작년 가을에 쌀값이 13% 이상 떨어졌지만 농가 수취액은 거의 감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역별로 가격 하락률에 차이가 크므로 일부 지역의 수취액은 소득보전직불을 합하여도 전년 대비 9%나 하락하여 소득안정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반면 어떤 지역은 직불금을 합하면 농가 수취액이 도리어 증가하는 모순이 나타났다. 이 문제 역시 ‘소득보전직불제는 가격하락의 충격을 정부가 흡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당초의 목적으로 돌아가면 정답은 목표가격과 당년가격에 지역별 가격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임이 자명하다. 물론 현재는 이미 목표가격이 정해져 있고 신뢰할만한 지역별 가격 조사치가 없기 때문에 당장 지역별 가격 차이를 반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적 문제를 인정하고 당초의 목적에 맞는 개선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변동직불제의 더 큰 문제는, 벼를 재배한 면적에 대해서만 직불금을 지급하므로 결국 벼 생산 장려금이 되었다는데 있다. 쌀값은 시장에 맡겨 떨어뜨리고 한편에서는 생산보조금을 주어 생산을 장려하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생산 장려로 공급과잉문제가 나타날 우려가 있자 이번에는 휴경이나 타 작물 재배를 장려하는 보조금을 주어 쌀 생산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한 쪽에서는 벼에 생산보조금을 주고 한편에서는 벼를 심지 말라고 다시 보조금을 주는 또 다른 모순에 빠져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소득보전직불은 쌀 가격하락에 대응한 소득보전’일 뿐 생산 장려금이 아니라는 원칙에 충실하도록 지급방법을 바꾸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제일 큰 비판은 작년 수확기 쌀값이 대폭 하락한데 있다. 수확기 수요와 공급은 단경기 기대가격에 따라 결정되므로 가격이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풍흉에 따라 쌀 가격이 20% 이상 등락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데 현재의 제도에는 이에 대한 대책도 없다. 요컨대 앞으로 쌀 가격이 해에 따라 크게 등락하고 수확기 가격은 더 큰 폭으로 변동할 우려가 있다. 가격이 급등락하면 모든 양정대책이 무력해지고 의미를 잃게 되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논의하여야 한다.

  ‘05년 양정제도 개편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었고 나름대로 큰 성과를 나타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험할수록 당초의 목적을 되새기고 원칙으로 돌아가 판단해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