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미곡종합처리장의 구조조정

GSnJ 이사장 이 정 환

  쌀의 브랜드 수가 무려 1,900여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소비자의 42퍼센트는 같은 브랜드이더라도 구입할 때마다 밥맛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브랜드의 표시 내용을 완전히 신뢰한다는 소비자는 10퍼센트가 안 된다. 즉 소비자는 브랜드를 별로 믿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주목할 것은 브랜드 간에 밥맛 차이가 소비자가 인식할 만큼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 같이 밥을 지어 어떤 브랜드인지를 알려 주지 않고 밥맛을 평가하게 하면 평점에 큰 차이가 없고, 각각의 쌀을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를 물으면 최대 차이가 2-3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소비자의 90퍼센트가 압력 밥솥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쌀의 품질 차이가 밥맛 차이로 이어지기가 더욱 어렵다. 이것은 밥맛 좋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면 소비자가 밥맛 차이를 세밀하게 인식하여 더 비싼 값에 사주리라는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소비자가 인식할 수 있을 만큼 밥맛 차이가 나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브랜드가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영세한 미곡종합처리장(RPC)이 300여개나 난립한데 있다.

  처리규모가 4,000톤 이하인 미곡종합처리장은 8,000톤 이상 규모에 비해 가공비용이 2.5배나 되고 특히 인건비는 3배가 넘을 만큼 규모의 경제가 크다. 그런데 현재 미곡종합처리장의 평균 규모는 5,200톤에 지나지 않으므로 가공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세한 미곡종합처리장들이 판매경쟁을 하다 보니 대형 슈퍼가 제시하는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수익성은 나빠진다. 이런 구조상의 문제를 밥맛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 극복하려는 전략을 택한 결과 브랜드 숫자만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밥맛 좋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산･가공비용을 상승시키므로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의 밥맛 차이를 인지하고 비용 상승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새로운 브랜드는 도리어 경쟁력을 떨어트리게 된다. 그러나 경쟁력을 높이려면 밥맛 좋은 새로운 브랜드를 또 다시 만들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미곡종합처리장이 대대적인 합병(M&A)을 이루어 대형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경쟁을 통해 합병(M&A)이 이루어지도록 하되 통합을 위한 금융자금 지원과 법률상의 제약 요인을 해소시키는 특별법 제정도 검토해야 한다. 시설 갱신기에 접어든 미곡종합처리장에 대한 일률적 자금지원은 통합을 저해한다. 도리어 이 시기를 통합의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대형 미곡처리장은 지나친 밥맛 경쟁보다는 중간 수준의 품질을 목표로 설정하고 일 년 내내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브랜드를 대량 생산하는데 주력해야한다. 소비자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밥맛 경쟁에 치닫다 보면 불가피하게 자꾸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게 되어 브랜드가 소규모화 되고 밥맛의 균일성을 유지하기도 더 힘들어지는 반면, 균일성 유지에 주력하면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곡종합처리장이 대형화되고 무리한 밥맛 향상을 위한 비용이 감소하면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브랜드가 대형화되고 균일성이 유지되면 소비자 신뢰가 높아져 비가격 경쟁력도 상승할 것이다. 그래서 미곡종합처리장의 대대적 구조조정은 쌀 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다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