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없는 여인의 교훈

GSnJ 이사장 이 정 환

 집안에 담석증이 심한데다 담낭암(쓸개암)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는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가 최근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불과 일주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현대의학의 힘에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신을 마취하여 오장육부가 가사상태에 빠지게 한 후 배를 뚫어 장기의 하나를 떼어냈는데도 그렇게 빨리 건강을 회복한 것은, 현대의학의 힘도 컸겠지만 그 환자의 몸이 스스로 조절, 적응,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의술은 수술 부위를 작게 하고 항생제를 투여하여 스스로의 치유능력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 환자는 심한 담석증으로 쓸개가 이미 별 기능을 하지 못하여 다른 기관이 그 역할을 대체하여 왔으므로 이를 제거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으로 꽤나 망설였지만 이제 담석통의 두려움은 물론 담낭암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어 이 환자의 표정이 언제보다 밝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농업인들은 두려움에 빠져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딛고 현실을 정확히 보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먼저, 관세가 우리 농산물을 보호하는데 실제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따져보아야 한다. 많은 경우 관세의 힘보다 소비자의 입맛과 신뢰가 우리 농산물을 보호하는 힘이란 사실은 수입이 자유화된 일부 과일, 쇠고기, 그리고 최근의 쌀에서 경험하는 바와 같다.

  또한 농업도 우리 몸과 같이 외부의 충격에 스스로 적응하여 극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세가 감축되어도 단순한 예측모델이 추정하는 바와 같이 수입이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힘은 1980년대 말부터 농산물 시장이 급속히 자유화되었으나 사료곡물을 제외하면 지금 우리가 매일 먹고 사는 농산물의 대부분은 우리 농업인의 손을 거친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파급 영향이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변수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관세감축을 저지하는 데만 매몰해서는 안 된다. 혹시 관세감축을 막기 위해 의무수입물량을 받아 준다든지, 특별긴급관세(Special Safeguard)를 양보한다던지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관세감축의 예외 혹은 유예보다 쌀소득보전직불제도와 같은 소득안정장치를 요구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실리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요컨대 현실을 냉철히 따져본 후 관세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협상조건이나 국내대책을 제시하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품목단체들이 전문가를 찾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해당 품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을 의뢰하는 등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다. 사실 각 품목의 현실과 문제에 대해서는 생산 농업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협상안과 국내대책 방안이 기본적으로 농업인들의 의견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농민단체들은 매우 분명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을 주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