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낙농에 미래가 있는가?

GSnJ 이사장 이 정 환

 한국 낙농에 미래가 있는가? 낙농에 관심을 기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이 질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 질문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낙농업이 반드시 국경보호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관세율이 176퍼센트인 분유와 89퍼센트인 버터를 제외하면 시유를 포함한 모든 유제품은 관세율이 36-50퍼센트 수준이다. 버터의 관세가 비교적 높지만 낙농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으므로 버터의 관세가 높아서 낙농업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유는 고관세이지만 조제분유의 관세가 36퍼센트여서 사실상 국경보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관세율이 36-50퍼센트인 나머지 유제품은 관세 철폐시 수입원가가 27-33퍼센트 낮아지는 효과를 나타내지만 이 정도의 원가 하락은 지난 몇 년 사이 환율하락으로 이미 경험한 수준이고, 수입품의 국내 판매가격은 브랜드에 따라 그리고 수입상의 마진율 변화로 이보다 더 큰 변화가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관세 때문에 낙농업이 유지되고 있고, 관세가 대폭 낮아지거나 철폐되면 그 것 때문에 낙농업이 곧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유는, 관세 36퍼센트 때문이 아니라 수입이 어려운 제품의 특성 때문에 수입이 안 되고 있음으로 관세철폐의 의미가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낙농산업은 국경보호에 의해 유지 발전된 것이 아니라, 비약적 소비 증가와 농업부문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구조조정과 기술발전에 의해 달성된 것임을 인식하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 낙농산업의 미래는 관세율보다 한국의 낙농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산업 존망의 결판은 슈퍼마켓의 진열대에서 결정되며, 진열대에 선 소비자의 선택기준은 단순한 가격 차이가 아니라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소비자가 우유를 마시며 무엇이 불만이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는가? 그들이 왜 우유를 마시는지, 왜 유제품을 사 먹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우유는 최고의 식품이므로 건강을 위해 당연히 마셔야 하는 식품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급식을 해서라도 먹게 해야 한다.’ 정도의 생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블루우션 전략’의 저자 김위찬 등은 새로운 시장과 상품의 출현은 반드시 새로운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때때로 소비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던 바람을 찾아내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기존 상품의 내용이나 형태를 바꾸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높이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것을 소비자가 기꺼이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가격에 공급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이른바 가치혁신이고, 그렇게 이룩된 신시장과 신상품이 바로 경쟁 없는 불루오션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제까지 포도주가 품종, 산지, 연산, 양조자, 병입자 등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표시로 비용은 상승하고 보통 소비자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한 호주의 포도주업자가 아주 알기 쉬운 포도주 브랜드를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사례를 소개한다.

  일단 상품을 생산한 후 어떻게 팔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 맞도록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상품은 반드시 새로운 제품일 필요가 없다. 상품의 본질은 그대로이지만 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정보를 표시해 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새 상품이 될 수 있고, 소비자가 새로운 감성과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함으로서 신상품이 될 수도 있다.

  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말하는 안전성이다. 소비자는 항생제, 고름, 호르몬 등등 우유를 마시며 불안을 느낀다. 과연 소비자의 이런 불안을 말끔히 씻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불안이 있는 한 우유소비는 늘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으므로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낙농가와 유제품 업체가 살을 베이는 아픔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엄격한 리콜제와 손해보상 제도를 도입하여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고 보험제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과잉 섭취와 비만이 누구나의 관심인 지금, 영양분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멋과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우유를 마시게 할 방법은 없는가? 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버터, 치즈,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식품인가? 누가 왜 먹는가? 양식당과 패스트푸드 점의 식자재로서 치열한 가격경쟁을 할 것인가, 국내산 우유로 만든 의미 있는 명품 브랜드를 지향할 것인가?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한편, 낙농산업은 더 나아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낙농업의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농촌의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깨끗한 농촌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환경은 모든 것에 우선하여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는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농업, 특히 축산업은 자원순환 속에 이루어져 환경부하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의 차원을 넘어 축산인 스스로 주도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 나섬으로서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이므로 보호되고 용인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주해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축산업의 위기는 밖에서보다 안에서 국민과 지역의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낙농업의 위기는 내부적인 수급조정 능력을 상실하는데서 올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유는 송아지 입식에서부터 생산까지의 긴 시차, 생산과 소비의 계절성 때문에 항상 수급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급의 불균형은 낙농경영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요인이다. 따라서 어떻게 수급불균형을 방지하고 조정하여 낙농 경영을 안정시킬 것인가? 이 문제를 낙농인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방도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의 낙농은 수급문제를 조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낙농산업이 유지될 수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낙농업에 미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낙농인들의 치열한 연구와 주도적 노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그에 비해 매우 적고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