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사업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자

GSnJ 이사장 이 정 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응하여 119조원의 ‘농업·농촌종합대책’을 수정한 새로운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119조원에 모든 자유화 대책이 포함된 것이므로 그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변화가 일어난 이 시점에서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예산을 새롭게 짜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예산을 말하기 전에 1990년 이후 42조, 15조, 24조, 그리고 51조원 등 이제까지의 특별대책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들 계획의 정확한 액수에는 논란이 있지만 방대한 국민의 세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된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과연 이제까지의 농업예산이 얼마나 효과를 나타냈는지, 역효과는 없었는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비판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정부는 구조개선과 경쟁력 향상에 중점적으로 예산을 투입하였고, 그 간 경영규모가 늘어나고 생산성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나 농가간의 소득 격차는 늘어만 가고 농가부채문제는 시한폭탄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외국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싼 농산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농촌 환경을 어지럽히고 하천과 연근해를 오염시키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대책을 만들기 전에 농업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를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겠다고 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예산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역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부는 현재의 농업구조문제와 경쟁력 문제의 근원은 40여년 사이에 1인당 국민생산이 120배나 늘어난 세계사상 유례없는 고도·압축성장의 문제가 농업부문에 퇴적된 결과이지 정부의 잘못만도 아니고 농민들의 잘못만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정책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정부가 경쟁력 있다고 판단하는 품목, 시설, 농가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농업구조와 경쟁력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구조변화와 경쟁력 향상은 시장경쟁을 통해 경쟁력 있는 품목과 농가가 시장에서 선택되는 과정이 반복되어 이루어지는 것이지 정부의 지원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한미자유무역협정 같은 세계화의 충격으로 이러한 시장주도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판이 깨지게 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개방의 충격으로 경영이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그 충격을 완충해 주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하고, 그것의 핵심은 소득보전대책이다. 정부가 시장개방의 피해를 보전하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분명하게 줄여주고 경영을 안정시키면 그러한 안정조건 아래서 민간의 창의적 노력이 시장경쟁을 통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10여년 전보다 농가의 경영규모가 커지고 시설농업이 발전하여 훨씬 다양하고 질 좋은 농산물을 일년 내내 먹게 된 것도 대부분 농가의 주도적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책에서는 이제까지의 모든 구조개선 및 경쟁력향상 지원사업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자.

  그리고 우리 농산물은 절대로 안전함을 보장하는 시스템과 우리 농업은 농촌 환경과 경관을 분명히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전하고 있음을 보장하는 체제를 확립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자. 지금은 ‘정책대상의 선택과 집중’보다 ‘정책의 선택과 집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