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고령농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GSnJ 이사장 이 정 환

  산업정책으로서의 농업정책과 사회정책으로서의 농민정책을 명확히 구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업정책으로서의 농업정책은 효율성 기준에 따라 대농과 전업농을 집중 지원하고, 사회정책으로서의 농민정책은 소득이 낮고 어려운 농가를 대상으로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농가를 다 끌고 갈수 없으므로 영세소농과 고령 농가는 털어내고 소수 정예 농가 중심으로 가야 우리나라 농업이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자연스럽게 산업정책의 대상이 되는 농가와 사회정책의 대상이 되는 농가를 구분해야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되고, 맞춤형농정은 바로 이런 생각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거론되는 노령농업인에 대한 특별소득보전제도는 맞춤형 농정의 구체적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영세농가이거나 고령농가일지라도 영농을 지속하는 것이 가령 임대를 주는 것보다 월등히 소득이 많으므로 소득 감소를 보충해 줄 수 있는 다른 일자리가 없는 한 영농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최근 65세 이상의 경영주가 5년 후에도 영농을 계속하는 경우가 64퍼센트나 되고 배우자가 영농을 계속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그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현재 60세가 넘은 경영주가 60퍼센트가 넘으므로 10년 이내에 대량 은퇴가 이루어져 농업구조에 빅뱅이 올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기대로 끝날 것이다.

  만일 정부가 소득감소를 보조금으로 보전하여 은퇴를 촉진하려면 현재 지급하는 경영이양직불금의 10배는 될 만 한 돈을 복지제도라는 이름아래 쏟아 부어야 할 것이나, 일하던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놀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복지정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정부는 예산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세·고령 농가의 탈락은 농업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0.5헥타르 이하의 영세소농이 숫자로는 44퍼센트나 되지만 영농면적으로는 14퍼센트가 안되고, 따라서 그들이 지금 당장 다 농사를 그만 두더라도 나머지 농가의 영농규모가 500평정도 늘어나는데 지나지 않는데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높아질 것인가? 농업정책의 대상자 수는 줄겠지만 복지정책의 대상은 그만큼 늘어나는데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요컨대 영세소농의 존재가 농업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오해다. 농업의 발전과 진정한 구조개선은 영세농이 그만두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고 의욕 있는 농가들이 중심이 되어 품목별로, 지역별로 농작업을 분업화함으로서 생산과정이 효율화 되고, 전문 유통조직을 만들어 마케팅 능력이 향상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농작업의 분업화와 유통의 조직화에 영세농과 고령농가는 걸림돌이 아니라 도리어 훌륭한 인력자원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겸업소득이나 이전소득에 주로 의존하지만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영세소농이 그 나라 농가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농사지어 번 돈이 전체 농가소득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소농이 전체 농가의 80퍼센트에 이른다는 사실, 그러나 그들의 생산비중은 13퍼센트밖에 안된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